[조광수 교수의 중국이란 코끼리 다루기] 중국 이해가 어려운 두 번째 이유는 '체제'

'흑묘백묘론'으로 대변되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
경제적 성과의 이면에 사회계층별 불평등 문제 드리워

▶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

중국인들은 원래 말 만들어내는 데 선수입니다. 문자도 뜻글자이다보니 말 만들기 작업에 한몫을 더 하지요.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컴퓨터를 전자두뇌라는 뜻으로 전뇌(電腦)라고 하고, 블랙 프라이데이를 외로운 싱글들의 날이란 뜻으로 ‘광군제(光棍節)’라고 명명하여 변용합니다. 매년 11월 11일입니다. 1이 4개나 있는 모습이 짝 없는 총각처녀처럼 외로워 보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6.25 한국전쟁을 중국에선 항미원조(抗美援朝)의 의거라고 포장합니다. 6.25라고 하면 그냥 전쟁 개시 일을 표현할 뿐이고, 한국전쟁이라 하면 남침 여부가 드러나지 않는 중립적인 표현일 따름입니다. 하지만 항미원조라 하면 미국에 대항해서 조선을 도왔다는 뜻이니 전쟁의 성격이 용어 자체에 분명히 내포되어 있지요.

예를 하나만 더 들자면, 흑묘백묘론이란 용어가 있습니다. 쥐만 잘 잡으면 고양이 색깔이 검든 희든 무슨 상관이냐는 뜻으로,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지휘하면서 인용한 고향 쓰촨의 속담입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든 자본주의 시장경제든 인민의 생활을 풍요롭게 할 수만 있다면 뭐든 다 시행한다는 실용주의적 태도의 표현이지요. 실사구시를 흑묘백묘 보다 더 적절하게 묘사할 방법이 있을까요. 이렇듯 한편으론 현란하고 다른 한편으론 함축적인 용어들을 접할 때마다 중국인의 조어 감각에 감탄하게 됩니다.

▶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그런 맥락에서 중국은 당금(當今) 자신의 체제를 다양한 명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란 용어를 주로 씁니다만,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표현도 사용하고 있고, 그 전엔 ‘사회주의 초급 단계론’이란 표현도 썼습니다. 다만 뭐라고 부르건 과도기적이고 또 요령부득입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란 북미나 서유럽식의 다원적이고 개방적인 정당 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무한정의 언론 자유와 시민사회 활동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경제만큼은 시장 경쟁 체제를 수용하고, 내부적으로 개혁 대외적으로 개방해서 생산성을 높입니다.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조건. 자유와 경쟁이지요. 그렇게 해서 ‘안정적인 정치사회적 기조 위에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경제 성장이 정권의 권력 독점을 위협하지 않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표현을 아무리 우아하게 해도 결국 중국식 개발독재에 다름 아닙니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가 최종 목표인 공산사회로 가는 과정에 자본주의가 극성으로 발달하고 그 결과 온갖 모순들이 폭발하는 대목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른바 사회주의 초급 단계론입니다. 중국은 바로 그 사회주의 초급 단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상당 기간 자본주의적 발달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지요. 과도기 상황을 보다 근사하게 포장하려고 내세운 이론적 근거입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란 게 얼마나 요령부득인지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2000년 당시 당 총서기이자 국가주석이었던 장쩌민은 ‘7.1 강화(講話)’를 합니다. ‘7월 1일에 최고지도자께서 역사적인 발언을 하셨다.’는 뜻으로, ‘3개 대표론’이라고도 부르지요. 중국 공산당이 변화한 현실을 반영하고 정체성을 고민한 결과 채택한 결론입니다.

안정적인 정치사회적 기반 위에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한 결과 부유한 기업가와 자본가 등 새로운 계층이 생겨났습니다. 중산층도 상당히 두터워졌지요. 보통의 경우라면 당연히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만들어지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다원적 정당을 허용할 의사가 없는 공산당으로선 당의 문호를 넓혀 새로 생긴 부유한 집단의 이익까지 대변하기로 한 겁니다. 중국 공산당은 광대한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는데 그 광대한 인민의 범주에 자본가와 기업가 그리고 중산층이 포함되는 것이지요.

▶ 농민‧노동자 당의 모순

중국 공산당은 농민과 노동자의 정당입니다. 오랫동안 당의 1호 문건은 삼농 문제였을 정도로 농민을 우선하는 당이지요. 삼농(三農)이란 농민과 농업 농촌을 말하는데, 농민 문제가 단순히 농민만이 아닌 농업 나아가서는 농촌 문제라는 심각성과 엄중함의 표현입니다. 2억 명이 넘는 농민공이 엄존하는 현실이니까요. 농민공은 농촌에서 농업을 할 수 없어 도시의 건설 현장이나 서비스업 일자리를 찾아 떠다니는 농민 출신 노동자를 말합니다. 그래서 유민(流民)이라고도 부르지요. 어느 나라나 산업화 초기엔 ‘무작정 상경’ 러시가 있게 마련이지만, 중국처럼 규모가 크고 기간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농민을 기반으로 건국한 중화인민공화국이 농민 문제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이제 거기에 더해 새로운 계급의 이해까지 챙겨주겠다고 하니 어불성설이란 겁니다. 세상에 자본가 이익도 대변하고 노동자 이익도 대변해 주는 그런 정당이 가능한가요. 우리를 예로 들자면, 정의당이 노조 이익도 대변하고 아울러 재벌 이익도 대변해주겠다고 하면 지지를 받겠습니까. 자유한국당이 전교조도 편들고 전경련도 편들겠다고 하면 유권자들이 잘한다고 박수 치겠습니까.

▶ 개혁개방 40년의 성과

그러면 여기서 개혁개방 40년의 명암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성과만 보면 화려하기 그지없지요. 수치로나 쇼잉으로나 중국의 성장과 발전은 대단합니다. 그런 긍정적인 면을 크게 보고 낙관적 태도를 취하면 중국 위협론으로 이어집니다. 한편 성과 뒤에 가려진 어두운 면 또한 엄청납니다. 덩치가 커지면 그림자도 덩달아 커지지요.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문제들이 정신없이 드러납니다. 그런 부정적인 면을 크게 보고 비관적 태도를 취하면 중국 붕괴론으로 이어집니다. 아주 거칠게 구분하면, 경제 쪽을 중시하면 대체로 낙관적인 편이고 정치사회 쪽을 중시하면 대체로 비관적인 편입니다.

먼저, 성과부터 정리해 볼까요. 가장 큰 성과라면 GDP 규모가 커진 것입니다. 40년 동안 연평균 9%씩 증가하여 2019년에 드디어 1인당 1만 달러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인구 14억 5만 명에 1만 276달러를 곱하면 14조 4천억 달러가 되지요. 글로벌 비중 15%, 미국의 65%입니다. 1992년 한중 수교 때만해도 양국의 GDP 규모가 비슷했었는데, 27년 만에 9배 차이가 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대단한 성과입니까. 세계은행은 평균 소득이 1만 2376달러 이상이면 고소득 국가로 분류합니다. 성장률 6.1%의 현 추세를 유지한다면 14차 5개년 경제 규획 기간의 마지막 해인 2025년에 그 수준에 이르게 될 겁니다.

개혁개방 40년 동안 여러 굴곡이 있었지만 성장세만큼은 견지해왔습니다. 6.4 텐안먼 사태 다음 해인 1990년에 3.9% 성장했던 것을 제외하면 꽤 오랫동안 두 자리 수 고속 성장을 기록했었지요. 특히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이후 몇 년은 중국의 성장이 글로벌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2015년부터는 6% 대로 낮춰졌고, 금년엔 5%대로 더 낮아질 수도 있습니다만, 중속 성장은 한동안 계속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그런 성장이 지속되면서 14억 인구 중 동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적어도 2억 명의 중산층이 생겨났습니다. 2억 명은 한국 인구의 4배에 해당합니다. 자산 규모 3천만 달러 이상을 보유한 슈퍼 리치 수가 미국에 이어 2등이고, 10억 달러 이상 보유한 억만장자 수도 미국과 어금버금합니다. ‘후룬(胡潤) 리포트 2018’에 의하면 1조원 자산가가 696명으로, 베이징이 뉴욕을 제치고 글로벌 억만장자 도시 1위랍니다. 홍콩이 80명 그리고 서울엔 27명이라고 하네요.

그 부유층과 중산층이 세계 명품시장의 근 30%를 소비하고, 미국의 1.5배 자동차를 구매하며, 글로벌 관광지를 석권하고 있지요. 규모와 소비력 덕에 중국 관광객은 중국의 신종 무기이기도 합니다. 한국이 마음에 안 들면 단체 관광을 줄여 명동 상인들과 호텔업계를 울상지게하고, 타이완이 반중 정서를 보이면 하루 1만 명씩 가던 숫자를 순식간에 제한하여 위협합니다. 돈 자랑을 하는 것이고, 또 유세를 부릴 만도 하지요.

그런가 하면 3조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를 기반으로 국가 펀드가 앞장서고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기업들도 합세하여 선진 기업들을 인수 합병하거나 지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후발 주자의 이점은 선택과 집중을 해서 빠르게 따라 잡는 것 아니겠습니까. 원하는 첨단 기술을 가진 기업들을 인수 합병하면 추격자로선 그게 바로 지름길인 셈이지요. 미국과 독일 핀란드 스페인 등에서 2016년 한해에만 2천2백억 달러를 들여 기업을 사들였는데, 로봇 생산 유럽 1위 기업인 독일 쿠카가 대표적입니다.

30여 년 전 IBM의 하청업체로 시작한 레노버는 모기업이었던 IBM의 컴퓨터 부문을 인수했고, 구글에게서 모토롤라를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BMW의 상당 지분을 중국 부호가 매입하기도 했고, 한 때 상하이 자동차가 우리 쌍용차를 인수 경영했던 적도 있지요. 이탈리아의 요트 제조업체, 프랑스의 와이너리 등 거침이 없습니다. 그런 위협적인 기업 헌팅의 결과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리지만, 활발한 M&A만큼은 인정해줄 대목입니다.

▶ 새로 등장한 불평등 문제

다음, 성과 이면의 그림자도 살펴볼까요. 무엇보다 가장 큰 어두움은 격차 문제입니다. 사회의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표로 지니계수라는 게 있습니다.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한데, 중국은 2017년 기준 0.467입니다. 한국은 0.34 미국은 0.38이고, OECD 평균이 0.33 정도입니다. 보통 0.4가 넘으면 불평등 정도가 심각하다고 간주하고, 0.45가 넘으면 폭동이 날 상황이라고 하지요.

소득 분포를 5분위로 나누어 비교하면, 상위 20%와 하위 20%의 차이가 미국은 9.4배, 한국은 프랑스 독일과 비슷한 수준인 5.3배,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28배입니다. 중국은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의 차이가 21배 납니다. 사회주의 중국이 자유주의 자본주의 한국과 미국보다 불평등이 심하다면 그건 정체성 위기 아니겠습니까.

지역 간 격차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2019년 1인당 평균 가처분 소득은 3만 위안을 돌파했습니다. 한화로 520만 원 정도 되지요. 가처분 소득이란 소득 중에서 소비든 저축이든 자유롭게 마음껏 할 수 있는 소득을 말하는데요, 가장 많은 곳은 상하이로 1180만 원 정도, 2위는 베이징으로 1140원 정도입니다. 동부에서 중부 내륙으로 가면 그 수준이 반으로 줄고, 서부로 가면 다시 반으로 줍니다. 소득이 가장 적은 서북부는 마침 소수민족이 사는 자치 지역이어서, 다민족국가의 허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거야말로 중국 정치경제의 최대 딜레마입니다. 경제적 성취의 직접 동인은 정치가 경제에게 자유를 주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자유화가 경제발전의 비결임은 중국 이전에 이미 증명된 사실입니다. 그리고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정치에도 질적인 변화가 생긴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걸 ‘경제 성장과 정치 민주화의 친화성’이라고 표현하지요.

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그래도 이만큼 부강해진 건 당의 유능함 덕이 큽니다. 장기 집권의 일당 독재는 선거로 선출되는 정부보다 파퓰리즘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장기적인 구상에 따라 정책을 펴나갈 수 있습니다. 세상에 어느 나라가 ‘두 개의 100년’이란 구호를 외며, 2021년까진 어떻고 2049년엔 어떻게 될 것이라고 비전을 내보일 수 있겠습니까. 30년 뒤까지야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년까지의 목표는 충분히 달성하리라 봅니다. 그게 바로 개발독재의 장점이라면 장점이지요.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확실히 능력 있고 또 계획적입니다. 다만 이제 그 성과가 제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는 게 딜레마일 따름입니다.

▶ 독재정권의 한계

미국 최초의 전문 경영인이었던 제너럴 모터스의 알프레드 슬론이 한 말입니다. “독재자가 다스리는 기업은 성공하기 어렵다. 독재자가 모든 문제의 해답을 알고 있다면 독재 제도가 가장 효율적인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독재자는 지금껏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하물며 기업 운영에도 그런 이치가 적용된다면 나라 운영은 과연 어떻겠습니까. ‘우한 코로나’ 경우도 위만 바라보는 독재의 한계이고 경직된 정치의 폐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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