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천마총(天馬冢)

대릉원의 겨울.

겨울 경주는 언제 찾아가도 포근하다. 대릉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담장 밖 시가(詩歌)의 거리를 걸었다. 달 다듬어진 화강석 담장이 정갈하다. 심신을 수련하던 왕족들의 바둑판이 저랬던가. 담벽에 걸린 시편들이 눈길을 멎게 한다. 한용운도 만나고 김소월도 만나본다. 목월의 술익는 마을을 찾아가는 ‘나그네’의 여정은 동리의 ‘갈대밭’에서 잠시 쉬어간다. 담장너머 기와집들이 더없이 단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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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의 자궁, 천마총

입춘의 계절이라지만 숲은 아직 잠 속에 있다. 천년을 말없이 누워있는 무덤들을 호위하며. 포르락포르락 나뭇가지를 타고 놀던 멧새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을 안내했다. 고분과 고분사이 풍만한 곡선 길을 따라 10여분, 느린 걸음은 신라의 자궁 천마총으로 데려갔다.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속까지 까맣게 타버린 고목들, 그 겨울 숲에서 자작나무를 생각했다. 천마총에서 가장 유명한 천마도(天馬圖)가 자작나무 껍질에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얀 살결의 수피를 입은 숲의 여왕, 언젠가 여행길에서 만났던 눈 덮인 자작나무숲이 떠올랐다.

핀란드 국경을 넘던 날 폭설이 쏟아졌다 /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출발한 시빌리우스 열차는 / 뱀처럼 눈 속을 파고 들었다 / 철길 따라 하얗게 도열한 나무들이 하얀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 중략~ 사우나에도 낯선 안개는 자욱하다 / 자작나무 회초리로 나신을 때리며 별리의 꿈을 좇은 사람들 / 타닥타닥 영혼을 후려치는 소리 / 언젠가 해인사 숲길 걷다 엿듣던 죽비소리 // 타닥타닥 자판 두드리며 수취인 없는 편지를 쓴다 / 자작나무 타는 냄새가 난다 / 그녀 입안에 맴돌던 자일리톨 향기가 난다.
김백의 <자작나무 숲에 들다>에서.

옛날 개마고원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자작나무 껍질에 싸서 묻었다. 시베리아 무속에서 샤먼은 죽은 자의 영혼이 하늘의 신과 만나기 위해 자작나무 사다리를 타고 오른다고 믿었다. 따라서 천마총에서 발견 된 자작나무 수피로 만든 천마도장니(天馬圖障泥.마구)가 북방 기마민족 무속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다. 자작나무에 대한 샤머니즘적 흔적은 오늘날에도 무당의 굿판에서 이 나무의 흰 꽃이 사용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시베리아 여행길에서 본 자작 나뭇가지로 나신을 때리며 주문을 외우는 사우나안의 풍경이나 카이로 박물관 파라오의 ‘사자(死者)의 서(書)’가 자작나무 껍질에 쓰여졌다는 점 이런 것들이 샤머니즘적 사고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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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모자

신라고분 가운데 금령총과 양산 부부총에서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모자가 나온 적이 있다. 신라시대 고분이나 석탑 등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그림이나 불경이 씌여진 것은 불교시대 이전의 자작나무 신목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불교학에서 필사본 연구는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불교사에 관한 많은 정보가 수록돼 있고 역사적으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불교경전이나 불교에 관한 문헌들은 필사본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인도의 인더스강과 그 주변지역에서 문명을 발전시킨 인도민족은 종교를 중시했다. 그들은 종교에 대한 기록재료로 나뭇잎이나 돌, 상아, 천 등을 사용했다. 특히 자작나무 껍질과 잎을 이용한 패다라를 주재료로 불교경전을 기록, 보관했다. 이것이 바로 패엽경(貝葉經)이다. 합천 해인사 8만 대장경 판재도 자작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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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으로 유일한 고분공원

천마총 내부.

경주시는 황성동 대릉원의 천마총 일대를 세계적으로 유일한 고분공원으로 조성했다. 이곳에는 신라 5~6세기 왕릉급 고분 30여기가 밀집해 있다. 천마총은 경주시내에 산재한 1백56기의 대형 고분중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에 이어 네 번째로 금관이 출토된 고분으로 광복 후 최초로 국내 학자들에 의해 발굴된 곳이다. 발굴 당시 순금관을 비롯 수많은 유물과 백마가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천마도가 발견돼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천마총발굴은 다른 큰 규모의 고분을 발굴하기 위해 시험 발굴된 곳이라는 점이다, 우리 경제는 1970년대 들면서 고도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순수 민족문화유산의 보존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게 됐다. 정부도 민족 문화유산이 집중돼 있는 경주일원에 대해 관광종합개발 10개년계획을 수립. 문화재 복원 보수와 유적지 주변경관을 정비하고 도로를 신설하는 등 대역사를 시작했다.

이 대대적 사업 일환으로 신라 13대 임금이었던 미추왕의 능을 중심으로 집중 분포돼 있는 수십 기의 대형고분들을 새롭게 정비해 고분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에 따라 이들 고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황남대총(98호분)을 발굴, 학술전시용으로 꾸밀 예정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황남대총 발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이고 성공적 발굴을 위해선 다른 고분 하나를 시험 삼아 발굴할 필요성을 갖게 됐다. 이때 선택된 고분이 봉분이 심하게 훼손된 155호분 천마총이었다. 98호분 발굴에 앞서 시험발굴한 고분에서 뜻밖에도 금관을 비롯 1만1천5백여 점의 유물이 산더미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때 마구(馬具)에 천마가 그려진 그림이 나왔다. 따라서 고분의 명칭을 천마총이라고 명명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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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이 더디게 한 발굴작업

천마총 발굴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73년,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거기다 가뭄까지 겹치고 있어 시민들 사이엔 “왕릉을 파헤치고 있기 때문에 하늘이 노했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다. 시민들은 “발굴작업을 즉각 중지하라”며 항의했다. 그럼에도 발굴작업은 진행되었고 드디어 그해 7월 26일 천년의 침묵을 깨고 금관이 출토 됐다.

그러나 무덤 주인의 시신은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노출당시 금관, 요대 등 유물의 위치상 신라의 한 제왕(帝王)이었을 것으로만 추정할 뿐이었다. 발굴요원들이 금관을 들어내는 순간 뇌성벽력이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천재지변으로 사람들은 망연자실 넋을 잃었다. 하늘은 발굴작업을 중단시킨 채 일주일이나 비를 뿌렸다. 1백여 일 간 작업에 지친 요원들은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천마총 유물이 수습되고 유구조사가 마무리됐을 때 요원들은 심한 허탈감에 빠지고 말았다. 출토된 그 많은 유물가운데 가장 중요한 명문(銘文)이라곤 칠기잔 표면에 새겨진 동(童) 자 하나 뿐. 어느 누구의 무덤인지 밝혀낼만한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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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열했던 보도 경쟁

천마총 발굴작업이 계속되면서 발굴요원들의 열기 못지않게 언론사간의 보도경쟁도 뜨거웠다. 요원들의 손길이 고분의 심장부를 향해 조심스럽게 접근해 가는 동안 현장을 지키는 기자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출토유물에 대한 사전발설 금지’는 발굴단의 불문율. 따라서 특종을 노리는 기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게 된다. 학연, 지연, 심지어 단순역의 노무자들까지 매수하는 등 첩보전을 방불케 한다.

당시 모 일간지 기자는 ‘천마총에서 금관 출토’ 라는 급보부터 띄우고는 곧장 경주박물관으로 달려가 이미 오래전 다른 고분에서 발굴된 금관을 촬영, 실물처럼 보도하는 기막힌 에피소드도 있었다.

천마총발굴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1천4백여 년 전 신라국의 국왕과 현직 대통령의 조우였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발굴조사가 한창 피크에 이른 7월3일 현장을 방문,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그 후 창원 성산패총 경주 황룡사지 발굴현장을 방문하는 등 우리의 문화유적에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천마총발굴조사에서 무덤의 주인공은 밝혀내지 못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발굴한 금관총 이후 금관과 수많은 유물이 발굴된 점, 지표면에다 덧널을 놓고 냇돌을 쌓아 그 위에 봉분을 만든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 점 등을 성과로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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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마도의 사료로서의 가치

천마도.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수학은 말다래에 천마가 그려진 천마도의 발견이었다. 말다래는 말을 탄 사람의 옷에 흙이 묻지 않도록 말안장 양쪽에 길게 늘어뜨린 마구(馬具), 여기에 백마가 흰 구름 위를 날고 있는 사실적 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신라시대의 화가 솔거가 “황룡사벽에 소나무를 그렸다. 나뭇가지에 새가 앉으려다 벽에 부딪쳐 떨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당시의 그림은 한 점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천마도의 발견은 고신라 당시의 회화수준을 증명할 수 있는 획기적인 사료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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