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초등학교 여교사가 교실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경찰은 유서가 없다고 했지만, "너무 힘들고 괴롭고 너무 지칠 대로 지쳤다"는 일기장에 '학부모 갑질'에 시달린 내용을 남겼다고 유족이 밝혔다.

서울교사노조는 같은 학교 교사들 제보를 공개했다. 학급 학생이 다른 학생 이마를 연필로 긁은 사건에 학부모가 교무실로 찾아와 "애들 케어를 어떻게 하는 거냐", "교사 자격이 없다" 질책한 사실, "수업시간에 '선생님 때문이야' 소리 지르는 학생 때문에 출근 시간에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는 증언들이 나왔다.

학교 측은 "해당 학급에 학교폭력 신고 사안이 없었고, 고인의 담당 업무도 학폭 업무가 아닌 나이스(NICE) 권한 관리 업무였다"는 납득 못할 해명만 했다.

도를 넘은 '학부모 갑질'에 교권이 추락하고 교사들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다. 욕한 아이를 지도했더니 "왜 욕할 만큼 상한 우리 아이 마음을 살펴주지 않느냐"며 교사를 탓한 부모, 학교폭력 담당 교사에게 "나 뭐하는 사람인지 알지?" 전화한 '변호사 아빠'도 있다. "선생이 학폭 신고 선동한 거 아니냐" 교사를 협박하고, 몇백 통 문자폭탄을 보내고, 아이 알림장에 폭언을 가득 적어 보내기도 한다. 교사 커뮤니티에는 악성 학부모 민원에 대한 글이 넘쳐난다. "학부모 폭언 갑질에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된 것 같았다"는 어느 교사의 탄식. 지금 학교 현실이다.

2016~2021년 5년간 재직 중 숨진 교사 사망 원인 2위가 '극단적 선택'(11%)이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권 보호 및 교직 상담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비대면'이 해제된 지난해 교권 침해 상담 건수는 520건으로 2017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학부모의 교권 침해'가 241건으로 가장 많았다. 4건 중 1건이 '아동학대 신고'였다. 아동학대를 이유로 학부모에게 신고당한 교사가 5.7%에 이른다.

최근 1년 사이 이직이나 사직을 고민한 적 있다는 교사가 87%, 최근 5년간 교권 침해로 정신과 치료나 상담을 받았다는 교사도 26.6%나 됐다. '교권이 잘 보호되고 있나'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69.7%였다. 교직 생활 중 가장 어려운 점은 '학부모 민원 및 관계 유지'(25%), '과중한 행정업무 및 잡무'(18.2%)였다.

교사 68.4%가 '교직 생활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통계가 반영하듯 전국 10개 교대 정시 경쟁률이 지난해 2.2대 1에서 1.87대 1로 떨어졌다. 일반대학 초등교육학과 전형 경쟁률도 3.71대 1로 작년 5.55대 1보다 큰 폭으로 하락했다. 정년 보장, 교원 연금, 육아휴직 등 안정적 직장으로 선호되던 교직이 학령인구 감소, 행정업무 과도에다 교권 추락마저 겹치며 외면받는 업이 되고 있다. 나라의 미래를 키우는 교사들이 자존감을 잃고 무력감만 늘고 있다.

검은 옷, 검은 마스크 차림의 교사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생존권 보장'을 외쳤다. "언젠가 나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퇴근 시간 이후 학부모 전화가 오면 새로운 업무가 시작된다" "현재 교육시스템에 무력감을 느낀다"는 하소연과 눈물이 이어졌다.

"아이들을 옳은 길로 이끌겠다고 교대를 왔는데, 손 놓고 지켜봐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교사가 될 이유가 없다"는 예비교사는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던 희망을 잃었다.

2010년 경기도 교육감을 시작으로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이 학생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겠다며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었지만, 학생의 폭력과 수업 방해, 학부모의 갑질에 교권은 무너지고 교사들은 기본 인권마저 침해받고 있다. '인권조례'를 만들 정도로 전근대적이고 폭력적이던 학교에서 얼마나 학생 인권 친화적 학교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학생이 교사를 때리고 학부모가 교권을 모독하며 교사 인권마저 말살하는 야만이 벌어지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에 대응한 '교사인권조례'라도 제정해야 할 지경이다. 아동학대신고가 두려워 교사가 학생을 훈육할 수도 지도할 수도 없는 학교는 학교가 아니다. 

교사의 사명은 '학부모 민원 상대'가 아니라 아이들을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바른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학부모 악성 민원에 교사의 시간과 감정을 소모 시키는 불합리를 중단해야 한다. '내 자식 귀한 줄'만 아는 빗나간 부모들 패악은 교사의 교육권 뿐 아니라 함께 배우는 아이들 학습권마저 해친다. 문제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교사를 격리시키고 학부모 갑질과 폭언, 학생의 교사 폭행에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교사의 학생생활지도가 아동학대로 취급되지 않도록 초중등교육법, 아동학대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에 권리를 누리려면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도 규정해야 한다.

'합계출산율 0.8' 초저출생 시대에 귀하지 않은 자녀가 있으랴만, 꽃다운 나이에 제자와 학부모에게 시달리다 생을 접은 교사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귀한 딸이다. 우리 아이 잘 가르쳐 사람 만들어 달라고 맡기는 학교를 언제까지 선생님을 죽음으로 내모는 악귀들 아수라장으로 내버려 둘 것인가.

'교권이냐 학생 인권이냐'가 아니다. 교사 인권, 생존권 문제다.

대한민국 미래가 걸린 일이다.

학교를 학교로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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