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산성·다대진성 전투 다뤄
2년간 사료조사 뒤 집필 심혈
작가 "임진왜란 평가 다시해야"

양산지역에서 활동 중인 대표적인 중견 소설가로 손꼽히는 김규봉(필명 金伯)씨가 단행본 소설집 '왜란(倭亂)'을 발표했다. 이번에 발표한 소설집 '왜란(倭亂)'은 우리 민족 최대의 위기이자 고난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관한 소설로, 자료 수집에만 거의 2년이 소요됐을 정도로 고증에 심혈을 기울인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으로는 임진왜란의 첫 승을 다룬 '승첩(勝捷)'과 최근에 발굴된 사료를 토대로 정유재란 최대의 전투로 재평가 및 재조명 되고 있는 황석산성(黃石山城)에서의 전투를 다룬 '황석산의 혈투(血鬪)' 등이다. 그간 알려진 것과는 달리 임진왜란 첫 승이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옥포해전이 아니라 임진왜란 발발 직전인 1592년 4월 13일에 있었던 다대진첨사 윤흥신(尹興信)이 이끈 다대진성 전투 였음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정유재란의 종결 또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명량해전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기존의 통설이었으나, 최근 발굴된 사료 등을 통해 명량해전보다 약 한 달 앞선 1597년 8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왜군 우군 7만 5천명과 조선군 및 민간인 7천 명이 싸운 황석산성 전투가 7년 왜란 종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작가의 설명이다.

김규봉 작가는 "최근 발굴된 팔곡 구사맹이 쓴 '난후조망록(亂後弔亡錄)'을 보면 1592년 4월 14일 왜군이 쳐들어 왔고 전날 힘껏 싸워 물리쳤지만 결국 끝까지 분전하던 다대진첨사 윤흥신부터 군민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라고 쓰여 있다"며 "전날 힘껏 싸워 왜군을 물리 쳤다고 기록되어 있고, 또한 황석산성을 공격한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7만 5천의 병력을 가진 왜군 우군이 황석산성을 함락시키고 육십령 고개를 넘어 전주성에 입성했을 때 병력은 고작 2만 5천 명에 불과했다. 이는 황석산성에서 왜군이 무려 5만 명이 전사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결과로 왜군 우군은 비교적 병력을 온전히 보전한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왜군 좌군으로부터 3만명을 수혈 받아 한양으로 다시 진격했으나, 조명 연합군의 강력한 방어에 막혀 충북 진천 소사벌에서 패배한 이후에 후퇴했다. 황석산성에서 5만명에 달하는 병력 손실은 왜군으로서도 회복하기 불가능할만큼의 크나큰 손실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새롭게 발굴된 사료를 바탕으로 기존 임진왜란의 평가를 다시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규봉 작가는 향토사에 관심이 많아 본지에 임진왜란 뒤 외교관으로 활동한 학성 이씨 선조인 충숙공 이예 선생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는 전 양산문화원 사무국장과 양산시 근로자종합복지관 사무국장을 역임했으며, 주로 장편소설과 영화 및 뮤지컬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소설집은 (주)케이원미디어에서 발행했으며 다음달부터 유명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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