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굵은 연기로 한 시대를 풍미한 다국적 배우

■ 멕시코 출신의 연기파 배우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길, 1954>에서 천사처럼 순진한 소녀 젤소미나를 울리는 난폭한 차력사 잠파노, <노틀담의 꼽추, 1965>에서 흉측한 몰골의 종지기 콰지모도, <희랍인 조르바, 1964>에서 타고난 낙천성으로 하루하루를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그리스 농부 조르바 역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배우 안소니 퀸은 1915년 멕시코의 치와와에서 태어났다. 당시 유명했던 멕시코의 혁명군 판초 빌라 휘하에 있던 아버지가 혁명이 와해된 후 미국으로 이주해 여러 곳을 전전하다 로스엔젤스에 정착했다.
10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졸지에 가장이 되어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 허드레 잡일을 전전하던 안소니 퀸은 발음을 교정하기 위해 배우학원에 들어갔다가 연기에 빠져들게 된다. 18세에 처음 연극 무대에 섰고 21살 때 파라마운트사의 단역 배우 모집에 응시해 영화에 데뷔했다. 당시 유명 감독인 세실 B. 데밀 감독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데밀 감독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연기자의 길을 오르게 됐다.

■ 다양한 국적의 인물 묘사
1940년대 반공극우주의 열풍으로 살벌하게 변한 헐리웃을 떠나 뉴욕 브로드웨이로 무대를 옮긴 퀸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말론 부란도가 했던 코왈스키 역으로 호평을 받아 엘리아 카잔 감독의 눈에 들었다. 1952년 카잔 감독이 연출한 <혁명아 자파타>에서 자파타의 조력자로 출연해 처음으로 오스카를 수상하면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1954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네오 리얼리즘으로 각광받던 펠리니 감독의 <길>에 차력 곡예사 잠파노로 출연해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안소니 퀸은 <열정의 랩소디, 1956>에 커크 더글라스(고호 역)와 함께 폴 고갱 역으로 출연했는데 커크 더글라스보다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며 두 번째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1950~60년대가 안소니 퀸의 전성기였다. <노틀담의 꼽추, 1965>, <나바론 요새, 1961>, 아라비아의 로렌스, 1962> 등에서 선이 굵은 남성으로 각인시킨 그는 <희랍인 조르바, 1964>를 통해 세계적인 배우로 우뚝 섰다. 그리스 민속 무용인 조르바의 춤은 지금까지도 플러시몹의 빈번한 소재로 수많은 동영상이 소개될 정도이다. 이런 안소니 퀸에게 아카데미 위원회는 1987년 평생공로상인 세실 B. 데밀상을 헌정했다.

 스틸 컷. IMDB
스틸 컷. IMDB

 

■ 트레이드 마크인 허스키한 목소리
안소니 퀸은 특유의 허스키하면서도 중후한 목소리 연기가 압권이었다. 한때 찰리라는 어린아이와 함께 'Life Itself Will Let You Know'라는 노래의 나레이션을 맡은 적이 있다. 이 노래는 아이가 인생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물어보는 질문에 대해 어른이 답하는 방식으로 짜여져 있는데 한국에서는 정여진 노래에 최불암의 나레이션이 들어간 ‘아빠의 말씀’이라는 노래로 개사해 출시되었다. 아빠의 말씀이 슈가맨 시즌 3에 소개되면서 아빠의 말씀의 원곡인 이 노래가 같이 소개되었는데, 최불암이 이 노래를 맡은 이유가 원곡을 부른 안소니 퀸에 대한 동경과 전원일기에서 금동이를 입양했을 때 자신에게 쏟아진 칭찬 때문이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나무위키에서 인용

 스틸 컷. IMDB
스틸 컷. IMDB

 

■ 78세에 막내딸 낳은 노익장
세계인물사전에 영화배우, 화가, 작가로 소개될 정도로 미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특히 회화와 함께 조각에도 뛰어난 실력을 보이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는데 1988년 유엔의 세계인권선언 선포 40주년을 기념하는 우표에 그의 그림이 실릴 정도였다. 퀸은 우리나라에도 몇 번 방문했는데 1998년 조각가인 아들과 함께 서울에 있는 예술의 전당에서 작품전을 열어 국내 팬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안소니 퀸의 노익장은 해외 토픽에도 자주 등장했다. 첫째 부인인 캐서린 드밀과의 사이에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고 캐서린과 사별한 뒤 재혼한 졸란다와 31년을 살면서 세 자녀를 더 가졌다. 1997년 82세의 나이에 40세 연하인 비서 케시 벤빈과 세 번째 결혼을 했는데 벤빈과는 이미 동거 중이던 1993년 78세의 나이에 딸 안토니아를 낳아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입장이 곤란했던지 안소니 퀸은 막내딸을 아들인 던컨 퀸의 양녀로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세 번의 결혼과 함께 9남 4녀의 자식을 둔 그는 보스턴에서 폐렴 치료를 받던 중 호흡 곤란으로 사망했다. 향년 86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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