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카시 선풍때 밀고자로 낙인찍힌 엘리아 카잔 감독
말론 부란도의 매력적인 젊은 시절 영화로 향수 자극
실제 부두노조 비리를 모델로 한 사회고발형 드라마
작품상, 감독상, 연기상 등 아카데미 8개 부문 수상

이 영화는 전직 복서로 부두 노조 우두머리의 하수인으로 지내던 한 건달이 자신이 연루된 살인사건을 계기로 한 여인을 만나게 되고 부두 노조의 조직적인 비리에 온몸으로 대항하게 된다는 사회성 드라마이다. <대부, 1972>와 <지옥의 묵시록, 1979> 등에서 비대하고 광적인 모습만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말론 부란도의 매력적인 젊은 시절 영화다. 우수에 찬 반항적인 눈빛 하나만 해도 그의 매력이 느껴진다. 그 시절의 영화는 그냥 액션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강렬한 사회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영화의 영향력을 드러내곤 했다. 

테리 말로이는 부두노동조합의 부패한 실력자 자니 프렌들리가 시키는 일을 하면서 옥상에서 비둘기를 키우며, 복싱 승자가 되는 꿈을 꾼다. 그는 자니의 하수인들이 자행하는 살인 현장을 목격하는데 후에 죽은 남자의 여동생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죽음에 책임감을 느낀다. 그녀는 테리를 배리 신부에 인도하는데, 그는 테리에게 부두의 모리배들을 박살낼 수 있는 정보를 법정에서 증언하도록 강요한다. 노조 지도자의 집요한 위협에도 결국 의회 증언을 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폭행과 배신자라는 비난 뿐이다. 그러나 결국 자신들의 삶과 노동을 속박하는 노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테리를 따른다.
 
극작가 아서 밀러의 거절

미국 영화 중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영화에는 주목할 부분이 많다. 먼저 원작 부분이다. 엘리아 카잔 감독이 유명한 극작가 아서 밀러에게 부탁한 각본은 원래 뉴욕과 뉴저지 부두의 비리를 폭로한 한 신문기사에서 영감을 얻었다. 하지만 당시 매카시 선풍으로 반미조사위원회에 증인으로 나썼던 카잔 감독에게 실망한 밀러가 절교해 버렸고, 카잔은 다른 작가에게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말론 부란도의 캐스팅에도 사연이 많다. 애초 카잔 감독은 프랭크 시나트라에게 접근했는데 제작진은 흥행이 보장된 말론 부란도를 기용하고자 했다. 부란도는 처음부터 응하지 않았는데, 카잔 감독은 짐짓 당시 유명한 액터즈 스튜디오의 신예 배우를 기용할 것이라는 소문을 냈다. 특히 폴 뉴먼을 거론함으로써 경쟁심 많은 부란도를 자극해 결국은 승낙을 받아냈다. 

메쏘드 연기의 선구자, 부란도

영국의 국보급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와 더불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말론 부란도, 비록 후반부의 삶이 실망스러웠다고는 하지만 배우로서 그의 영향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네브래스카주 시골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퇴학당한 뒤 군대도 못 가게 된 부란도는 부모에 대한 반항심으로 누이들을 데리고 뉴욕으로 와 연극학교에 다닌다. 거기서 그는 리 스트라스버그 등 뛰어난 지도교수를 만나게 되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메쏘드 연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게 되는데 이는 나중에 제임스 딘, 폴 뉴먼 같은 많은 배우들의 롤 모델이 된다.

엘리아 카잔은 그리스 출신 이민 세대로 예일대에서 연극을 전공한 후 브로드웨이로 진출한 정통파 연출가다.  

그는 늘 사회적 이슈에 민감한 작품들을 내놓았고 평단과 대중의 인기를 얻었지만 1950년대 "매카시 선풍" 시절 공산당 가입을 인정하고 동지들을 밀고한 변절자로 낙인찍힌다. 그런 그에 대해 아카데미가 논란 끝에 1998년 특별공로상을 수상키로 결정했지만 막상 시상식장은 환영과 비난의 반응이 교차한다. 카잔은 1947년 리 스트라스버그와 함께 "메쏘드 연기"의 효시가 된 액터즈 스튜디오를 열어 많은 연기파 배우들을 배출한다.

명장면 중 하나인 택시안 대화

이 영화의 유명한 장면 중 하나가 택시 뒷좌석에서 형(로드 스타이거 분)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말론 부란도는 택시 안 장면에서 어떤 특정한 관점을 반대했다고 한다. 촬영이 시작되었을 때 부란도는 몇몇 대사를 즉흥으로 시작해 스타이거를 놀라게 했다. 잠시 후 카잔은 중단을 외쳤다. 부란도가 작가와 감독에게 설명하기를, "테리가 가슴에 총을 맞은 채로 형에게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카잔은 부란도가 즉흥 연기하는 것에 동의했다. 카잔은 이 장면에서 부란도와 스타이거에게 연기 지시를 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 그들 스스로 이끌어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나중에 다시 촬영하게 된 택시 장면에서, 부란도가 계약서 권리로 자리를 비우게 되자 할 수 없이 로드 스타이거의 클로즈 업으로 촬영되었고 부란도의 대사는 스탭 한 명이 대신 했다. 스타이거에게는 씁쓸한 기억이 되었는데, 여러 해 동안 그는 인터뷰에서 종종 이 이야기를 하곤 했다. 스타이거는 매우 상처를 받았고 부란도의 노골적인 무례함에 화가 났다. 하지만 그는 이 감정을 그의 연기에 녹여 승화시켰다. 로드 스타이거가 부란도의 형으로 나왔지만, 실제로는 부란도가 한 살 위였다. 

데뷔 첫 영화에서 오스카 수상

에바 마리 세인트는 이 영화로 데뷔했다. 그녀의 배역 에디 도일은 확실한 주역이었음에도, 제작자 슈피겔은 그녀를 오스카 후보로 만들기 위해 조연으로 올렸다. 이 작전은 맞아떨어져 그녀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레이스 켈리는 에디 도일 역을 사양하고 대신 히치콕 감독의 <이창, 1954>에 출연했다. 극본에서 에디 도일은 19세였는데 그 역을 연기한 세인트는 영화 개봉 당시 30세였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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