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수 교수의 중국이란 코끼리 다루기] (5) 중국 이해가 어려운 세 번째 이유는 '생활 여건'

(2) 음모와 술수

삼국지 이야기 잠시 하겠습니다. 삼국지 10번 읽은 사람과는 어울리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주변에 의외로 삼국지 마니아가 많습니다.

퀴즈 하나 내 볼까요. 소설 삼국지에는 기막힌 인물들이 숱하게 등장합니다. 머리 좋고 담력 있는 영웅에, 만 명을 대적하는 장수, 탁발한 문인과 경국지색의 미인 그리고 천하를 손바닥 안에 두고 조종하는 책사 등 주인공 급 인물이 적어도 3백 명은 됩니다. 그들 중에 유일하게 죽어서 신이 된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관우입니다. 관우는 신장(神將) 또는 무신(武神)으로 추앙됩니다. 심지어는 관제(關帝)로까지 모셔집니다. 관우는 무덤이 두 곳입니다. 머리와 몸이 따로 묻혔기 때문이지요. 한 곳은 관릉이고, 다른 한 곳은 관림입니다. 릉은 임금에게나 붙이는 존칭이지요. 관우는 묘명에서 이미 황제 대우를 받고 있는 겁니다. 그의 머리를 장사지낸 묘를 관림(關林)이라고 부르는데, 그건 황제를 능가하는 대우입니다.

중국 역사에 뛰어난 황제가 많았지만 묘에 수풀 림 자를 쓴 경우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관우 이전 유일하게 림 자를 쓴 인물은 공자뿐입니다. 공자묘를 공림(孔林)이라 부르고 역대 황제들이 참배했습니다. 그런 영광과 명예를 관우가 얻은 것입니다.

▶ 관우가 민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

삼국지의 진정한 주인공은 관우라는 평가가 더러 있습니다. 그는 긍정적으로 보면 강직하고 충실한 인물입니다. 의리의 사나이지요. 하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자만심 때문에 스스로 무너진 무부(武夫)입니다. 전혀 정치적이지 못하고 전략적이지 못한 야전 사령관입니다. 무공으로만 따지면 지존 여포에 방불하지만, 형주라는 삼국정립의 전략 요충지를 끝내 지켜낼 지략은 없습니다. 손권의 사돈 맺자는 제안을 “견자(犬子)에게 딸을 줄 수 없다”며 거절한 것이나, 육손의 거짓 겸손에 쉽게 마음을 푸는 등 정치와 전략엔 청맹과니였지요. 늘 정면 돌파, 누굴 속일 줄도 몰랐고, 그저 당당하고 오만했습니다. 관우를 키운 것도 꼿꼿한 프라이드이고 망친 것도 바로 그 지나친 프라이드였습니다.

그럼에도 관우가 이처럼 민중의 사랑과 존중 아니 그 수준을 넘어 경배마저 받는 이유가 뭘까요? 문인 원이둬가 “중국인의 심성엔 공자와 노자 그리고 토비의 모습이 다 있다.”고 한 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관우는 그 세 가지 모습을 다 가졌다고 봅니다. 늘 『춘추』를 가까이 두고 읽고 충직함의 상징인 대목은 공자의 얼굴입니다. 재물을 비롯한 외물에 의연한 대목은 노자의 얼굴입니다. 나만의 고집과 자유로움을 즐긴 외류(外流)의 전형이지요. 그러나 관우가 민중의 사랑을 받은 더 큰 이유는 그에게 토비(土匪)의 얼굴도 있기 때문입니다. 토비란 마적이든 산적이든 유민으로 도적이 된 자들입니다. 관우는 토비로까지 전락하지는 않았지만 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민들에게 롤 모델이었고, 유민과 같은 기층 민중들이 위안 삼을만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관우는 산시(山西) 사람입니다. 고향에서 부패한 관리를 처단하고 떠돌이가 되어 유랑하다 베이징 근처인 탁현에 와서 유비의 지우를 얻습니다. 이후 여러 전장에서 무공을 인정받지요. 유민으로서 정착에 성공한 겁니다. 게다가 비극적인 최후가 영웅의 색채를 더해줍니다. 영웅 신화는 항우든 아킬레우스든 비장한 최후로 마무리되는 게 보통이지요. 관우는 죽어서도 머리와 몸이 따로 묻히는 비장미가 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유민들은 그런 그가 애틋하고 그래서 더욱 공감을 느끼는 겁니다.

관우의 고향 산시 사람들은 장사에 능합니다. 그들이 전국 곳곳에서 상업 활동을 하며 관우를 수호신으로 모셨습니다. 그래서 관우는 무신에다 재신(財神)까지 됩니다. 전국에 공자 사당인 공묘 보다 관묘가 더 많은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외물에 의연했던 관우가 재물 수호신이 되었다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제가 삼국지 이야기를 하면서 관우를 장황하게 언급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가장 ‘삼국지답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삼국지답다’ 라는 건 음모와 술수에 뛰어나다는 뜻입니다. 삼국시대는 난세였고, 정상적인 도리인 상도(常道) 보다는 임기응변과 권모술수인 권도(權道)가 유행하던 시기입니다. 소설 삼국지는 기본적으로 다섯 번의 큰 전쟁 이야기입니다. 병불염사(兵不厭詐)라 했습니다. 전쟁에선 원래 간사한 꾀로 속이는 것을 당연시 한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쫓고 쫓기고 속고 속이고 하는 용병의 작업을 일상에서 실현한다면 그게 괜찮겠습니까. 그게 제대로 된 사회이겠습니까.

▶ 뻔뻔하거나 음흉함

루쉰(魯迅)도 삼국지 마니아였습니다. 조조를 재평가 하는 등 삼국지에 대한 의견도 많았지요. 그는 “중국 사회엔 확실히 삼국기(三國氣)와 수호기(水湖氣)가 있다.”고 했습니다. 삼국기란 삼국지 읽기 열풍이란 의미도 있고, ‘삼국지 같은’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는 뜻도 됩니다. 수호기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는 반항과 반역의 기세이니 더욱 살벌하지요. 태평성대는 아주 짧거나 아예 없고, 전전긍긍 불안한 세월이 일상이며, 자주 천하대란이 발생하는 상황이라면 어찌 삼국기와 수호기가 만연하지 않겠습니까.

혼돈유구(混沌悠久)한 중국 역사를 한 마디로 정리한 리종우(李宗吾)란 기인이 있습니다. 그는 “중국 역사 24사를 읽어보니 한마디로 후흑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는데, 후(厚)는 얼굴이 두껍다 즉 뻔뻔함이고 흑(黑)은 마음이 검다 즉 음흉함입니다. 후흑의 반대는 박백(薄白)입니다. 리종우는 루쉰과 같은 세대이고 또 같은 삼국지 마니아였습니다. 후흑학이란 학설도 삼국지를 읽으며 깨달은 이치입니다.

리종우는 삼국지의 조조 유비 손권을 후흑으로 평가했습니다. 먼저, 조조는 심흑면박(心黑面薄)입니다. 음흉하지만 뻔뻔하지는 않다는 뜻이지요. 조조의 검은 복심을 대표하는 표현이 “차라리 내가 남을 저버릴지언정 남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겠다.”는 자백입니다. 다만 그는 뻔뻔하지는 않아 당대에 황제가 되지 못했지요. 야심은 만만하나 체면도 차리고 역사의 평가도 의식했습니다. 다음, 유비는 면후심백(面厚心白)입니다. 뻔뻔하기는 하나 음흉하지는 않다는 뜻이지요. 유비는 출사 이후 동가식서가숙하다 마흔 여덟에야 자신의 땅을 갖게 됩니다. 그 과정은 비루합니다. 여포에게 의지했다가, 조조에게 붙었고, 원소 품에 머물다가, 유표에게 의탁했으며, 나중엔 손권과 결탁하는 등 부끄러움이란 몰랐습니다. 두 가지 비결이 있었지요. 바로 변신과 눈물입니다. 유비는 기회주의자였고 수시로 울며 인정을 구했습니다. 다만 그는 위선적이긴 했지만 음흉하지는 않아 민심을 얻었지요. 끝으로, 손권은 뻔뻔함은 유비만 못하고 음흉함은 조조만 못했으나 그래도 강남과 강동의 패자(覇者)로 셋 중 가장 장수하며 권세를 누렸습니다.

이들 후흑의 대가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전쟁하고 외교하는 스토리가 바로 소설 삼국지입니다. 그러니 어떤 술수와 음모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런 내용을 10번씩이나 읽은 사람과 상종마라는 조언도 일리가 있겠지요. 다만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10번을 완독했든 아니든 체질적으로 ‘삼국지다움’이 농후합니다. 멍청해 보이는 아큐(阿Q)부터 무표정한 보통사람들 그리고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자까지 중국에서 만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 표리부동을 당연시하다

지나친 단순화이고 또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만, 이 대목에서 이런 평가는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은 중국 보다 훨씬 박백의 분위기입니다. 표리부동을 경멸하고, 개결함과 순박함을 흠모하지요. 뻔뻔하고 음흉한 걸 체질적으로 싫어합니다. 술 몇 잔에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를 마구 털어놓습니다. 취중진담은 일상이고, 술기운에마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면 친구로서의 진정성을 의심하지요.

반면 중국은 표리부동을 당연시합니다. 겉과 속이 같으면 오히려 그걸 등신 취급합니다. 개결하고 분명한 것 보다는 좀 끈적끈적한 것 같아도 잡을손이 있는 걸 선호합니다. ‘주화삼분(酒話三分)’이라고 해서 아무리 취해도 30%만 토설할 뿐 다 털어놓지 않습니다. 화끈하지는 않지만 끈질깁니다.

중국은 참으로 복잡하고 미묘한 나라입니다. 소설에서나 나옴직한 기묘한 에피소드와 엽기적인 소문이 사실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니 권력 투쟁에서나 생존 투쟁에서 소설보다 오히려 더 소설 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하지요. 그런 현실에다 온갖 상상력을 더해 만든 공간이 있습니다. 오직 중국에만 존재하는 공간입니다. 바로 강호(江湖) 내지는 무림이란 곳입니다. 강호는 인간의 은원이 모이는 곳이고, 그 은원이 가장 끈끈하게 엮여있는 곳이 무협의 세계 무림입니다.

은원은 갚아야 합니다. 은인에겐 보답해야 하고, 원수에겐 복수해야 합니다. 갚음은 사람살이의 기본입니다. 그 갚음을 위해 온갖 암수와 암기(暗器)가 다 등장합니다. 부채에서 독침이 발사되고, 지팡이가 칼로 변하며, 소매에선 표창이, 품에서는 단도가 여럿 쏟아져 나오다, 불리하다 싶으면 연막탄을 터뜨리고 사라집니다. 무협 영화의 단골 장면이지요. 상대 진영의 중심에 첩자 심기, 변장술, 고육지책과 이이제이의 수법 등 묘수 백출입니다. 무협지의 정석입니다. 원래 무협이란 격렬한 사회 변동 상황에서 개인이 직면하는 위기와 거기에 폭력으로 저항하는 비극을 그린 것입니다. 치열하고 비장할 수밖에 없지요.

▶ 삼국지 속에 들어있는 의미

이제 문덕(文德)을 말씀드리는 것으로 삼국지와 강호 무협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문덕이란 학문의 내공 또는 문인으로서의 덕망과 위엄을 말합니다만, 청나라 중기 고증학의 대가였던 장학성은 이렇게 풀이했습니다. “자고로 사람이 쓴 모든 기록은 이데올로기적 편향이 내재되어 있다. 읽는 이는 경서든 사서든 시문이든 문자 뒤에 숨겨져 있는 저자의 의도까지 이해할 공감력과 상상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 능력을 문덕이라고 한다.”

장학성은 소설 삼국지는 ‘칠실삼허(七實三虛)’라고 했습니다. 역사적 사실 70%에 허구 30%를 버무려넣었다는 것인데요, 그 30%의 허구가 문인들의 이데올로기 작업이라는 뜻입니다. 문인들의 작업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유가 이데올로기를 민간에 주입하는 겁니다. 효성과 충성을 말하고, 문질빈빈의 반듯함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효자 서서가 모략으로 조조에게 가게 되지만 끝내 모사로서의 역할을 마다하는 장면이나, 관우가 조조의 지우를 무르고 기어이 오관 돌파까지 하며 주군 유비를 찾아 충성하는 장면 등은 충효를 교육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자룡을 유가적 인품의 전형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는 늘 겸손하고 당당하며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는 군자의 모습입니다. 자기 성찰과 배려와 같은 유가적 소양을 가장 많이 보인 인물로 묘사됩니다.

다음, 삼고초려라는 지식인들의 로망을 교묘하게 묻어놨습니다. 삼고초려는 지식인들에겐 가장 이상적인 출사 방식입니다. 출사표를 써들고 스스로 선전을 하고 다니는 것 보다야 모시고 싶은 상전이 먼저 알아서 찾아와주면 얼마나 근사하겠습니까. 그것도 삼고초려의 자세로 초빙한다면 불감청고소원일 겁니다. 다만 유비를 두량 넓고 인자함이 그득한 성군으로 그리려다 보니 위선이 지나쳐 그냥 인상 좋은 암흑가 보스처럼 되어 버렸고, 제갈량을 지나치게 신비하게 그리다 보니 요(妖)의 느낌마저 들게 과장된 문제는 있습니다.

무협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천하의 이태백도 젊어서는 무협을 꿈꾸었습니다. 가슴의 작은 불만은 술로 삭힐 수 있으나 세상의 큰 불만은 칼이 아니면 풀 수 없기 때문이지요. 잘난 사람들은 외롭기 마련이라고 스스로 위로해보지만 현실은 늘 녹록치 않습니다. 이상은 높은데 현실이 따라주지 않으니 좌절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분노와 한을 삭히고 다듬으러 자유로운 가상의 세계인 강호를 만든 일. 바로 이태백 같은 문인들의 작업입니다. 강호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무림의 세계는 세속적 욕망을 벗어나는 출세(出世)와 사회에 투신하여 관직에 나서는 입세(入世) 사이에서 갈등하던 지식인들의 로망이 되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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