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두 번의 지역 문화행사에 가 볼 기회가 있었다. 한번은 교동에 있는 한 갤러리에서 열린 <사진가 윤창수 개인전>이었고, 또한번은 31일 평산동 한 카페에서 열린 <금요일의 기타 시> 행사였다.

두 행사의 공통점은 자발적인 지역 문화행사라는 점이다. 관의 재정 지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문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마련한 소규모 행사다. 하지만 내용은 어떤 관제 행사보다 알차고 진지했다. 앞서 열린 사진전에서는 우리 지역에 사는 다수의 사진 동호인들과 문학 애호가들이 모여 시 낭송도 하고 원로 시인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전시작품을 두고 사진가와 직접 대화하는 자리에서도 깊이있는 질문과 성실한 답변이 이어져 참석자들은 모처럼 문화 향유를 만끽하는 자리가 되었다.

<금요일의 기타 시> 행사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음악이 더해졌다는 것이 차이점. 시 낭송과 잘 어울리는 통기타와 색소폰 연주는 아마추어 동호인들의 솜씨라 세련되지는 못했지만 정감어린 공연으로 마음을 적셔주었다. 그리고 매 회 일일연사가 초청되어 다양한 주제의 미니 토크가 이어지는 것이 색달랐는데 이를 받아들이는 관객들의 진지한 경청과 몰입은 우리 시민들이 얼마나 지적 욕구에 목말라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경제가 발전하고 소득이 올라갈수록 개인의 문화적 욕구가 상승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삶의 질을 높인다는 명제에서 항상 등장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문화적 욕구의 대상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스포츠나 레저, 게임과 SNS도 광의의 문화적 욕구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순수한 문화예술 부분에 주목하고자 한다.

문화생활은 능동적인 것과 수동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직접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에 뛰어들어 참여하고 주체적인 실시자가 되는 것이 능동적인 문화생활이다. 이를테면, 그림이나 서예를 배우러 문화교실을 찾는다든지, 합창단이나 시낭송회에 가입해 공연을 통해 기량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이들의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많은 기관 단체에서 평생교육 개념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능동적인 참여자는 실제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문화 욕구를 해소하는 경로를 찾아 나선다.

반대로 실생활에서 시간과 여유를 끄집어내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비정기적이나마 수동적인 형태의 문화를 즐길 수 있다.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을 관람한다든지, 각종 전시장을 찾는 일, 그것도 안 되면 집에서 관련 도서를 읽는다든지 TV 매체를 통해 그런 욕구를 해소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수동적 형태의 문화 향유자들도 기회가 닿으면 능동적으로 바뀔 수 있고, 또 능동적 참여자들도 수동형의 기회를 충분히 취득할 수 있다.

우리에게 문화가 왜 필요한가. 사람은 동물과 달리 생각하는 존재이며 예술이라는 영역은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인간은 빵 만으로 살 수 없다고 현자가 한 말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고 나면 자연스럽게 마음의 양식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감동을 먹고 산다.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눈물을 흘리고 함께 웃기도 한다. 역경을 이겨낸 인간승리의 사연을 들을 때면 공감의 정도가 더해져 우리의 좌뇌를 크게 자극한다.

얼마 전 양산에서 공연을 가졌던 영국 출신 성악가 폴 포츠를 보자. 그가 처음 영국의 한 TV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보여준 장면은 인터넷 매체를 통해 1억명이 넘는 지구인이 찾을 만큼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남루한 차림에 초라한 외모로 무대에 선 그의 노래가 시작되자 객석과 심사위원석에서는 경탄과 감동의 박수가 쏟아지고 노래가 끝날 때는 모든 관객이 기립박수를 보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 해 최종 우승과 더불어 거액의 음반계약이 이루어지면서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폴 포츠의 당시 직업은 30대 후반의 휴대폰 판매사원이었다. 어릴 적 가난과 왕따, 교통사고와 종양 수술 등 수많은 고난을 거치면서도 성악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결과 기적의 테너가 탄생한 것이었다.

국적을 떠나서 감동을 주는 사연들은 많고, 문화예술은 그렇게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감정의 떨림을 포착해 내는 것이다. 작지만 깊이가 있고 조촐하지만 내실있는 자생적인 문화행사가 많아질수록 지역사회는 따뜻해지고 시민들의 삶의 질은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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