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팅 (Sting, 1973)


1973년 마피아, 1974년 사기꾼, 1975년 다시 마피아.

보수적인 권위를 표방하는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이 3년 연속 범죄조직과 사기 행각을 다룬 영화에 최우수 작품상을 헌정하는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했다.

<대부>와 <스팅>, <대부 Ⅱ>가 바로 그것이다. 대부 시리즈는 이미 전 세계 영화 팬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는 영화로 되풀이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태리 시칠리 섬 출신인 비토 콜레오네가 20세기 초 미국으로 이민 와서 마피아 조직을 만들고 유지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폭력과 정경유착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편, 시칠리안 특유의 가족애를 바탕에 깔아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에 말론 부란도, 알 파치노 주연의 작품이다.

반면 1973년 개봉된 <스팅>은 전형적인 사기꾼 이야기다. 유럽에서 시작된 범죄물의 영향

을 받은 헐리웃에서 다양한 범죄를 저지르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거기에는 제임스 캐그니, 험프리 보가트로 대변되는 누와르 형태가 있고 가볍고 유머러스한 주인공을 내세운 반전 위주의 두뇌 게임을 다룬 영화가 있다.

케이퍼 무비라고도 하는 이 장르는 살인이나 테러 등 흉악범죄가 아닌 도둑질이나 사기 같은 다소 가벼운 범죄의 계획이나 실행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면서 반전과 카타르시스를 주는 스타일의 영화다.

▶강자를 놀려먹는 대리만족
사기꾼들이 힘을 합쳐서 거대한 범죄 조직의 보스를 우려먹는다는 설정 자체가 대리만족의 쾌감을 선사하는 이 영화 <스팅>이 나온 뒤 케이퍼 무비는 많은 아류들을 양산한다. 그 중에서도 수준작으로 꼽힐 만한 것은 <스코어>, <이탈리안 잡>, <오션스 일레븐> 등이다.

<스팅>은 시종일관 경쾌하고 밝은 기조를 유지하는데 여기에 일조한 것이 유명한 테마 음악인 ‘The Entertainer’이다. 흑인 작곡가가 재즈로 작곡한 오래된 피아노곡인데 마빈 햄리시가 편곡해 OST로 채택한 것이 아카데미 음악상으로 이어지면서 대박을 쳤다. 또한 이 영화의 매력은 반전에 있다. 가짜로 차려진 사설 경마장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반전은 관객마저도 속아넘어가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주얼 서스펙트>의 대반전을 기억하는 영화 팬이라면 이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악당을 혼내주는 사기꾼들의 이야기에 아카데미가 7개의 오스카를 헌정하며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영화를 감상해 보아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대공황 직후의 시카고를 배경으로, 조무래기 사기꾼 자니 후커가 뉴욕 갱 두목인 로네건에게 진상할 현금을 털자 분노한 갱들이 파트너 루서를 죽이고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달아난 후커는 한때 루서의 친구였던 곤돌프를 찾아 도움을 청하는데 그는 노련한 베테랑 사기꾼이다.

후커는 곤돌프의 솜씨를 활용하여 로네간으로부터 거금을 빼앗기를 원한다. 그들은 완벽한 작전을 짜고 각자 한몫을 원하는 예술가 수준의 사기꾼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 게임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우리의 영웅들은 로네간의 난폭한 성향은 물론 또다른 쪽의 움직임까지도 처리해야 한다. 성공하기 위해 후커와 곤돌프는 그들의 모든 역량과 최고의 자신감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버디무비의 매력
여기서 우리는 버디 무비의 재미를 잔뜩 느낄 수 있는데, 두 명의 주인공이 스토리를 이어가는 형식인 버디 무비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의 앙상블이 뛰어나다.

이미 1969년에 같은 감독 아래에서 <내일을 향해 쏴라>의 전설적인 서부의 은행털이범으로 콤비를 이룬 경험이 이어졌다. 폴 뉴먼은 코메디 연기에 필요한 가벼움을 갖고 있지 않아 코메디 영화를 피하라는 조언을 들어왔는데 이 영화에 출연함으로써 그런 우려를 불식시켰다.

로버트 쇼는 폴 뉴먼의 추천으로 로네간 역을 맡았는데 촬영 1주일 전에 비벌리 힐즈 호텔의 젖은 핸드볼 코트에서 미끄러져 무릎 인대가 찢어졌다. 촬영 내내 다리 고정대를 차야 했는데 그것은 그가 입은 30년대식 헐렁한 바지 안에 들어 있었다. 갱 두목 역이면서도 다리를 저는 모습으로 출연한 이면에는 말 못할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스팅>은 수준 높은 예술영화라 할 수는 없지만 무척 유쾌한 영화다. 스티븐 슈나이더가 선정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에 따르면, 푸른 눈의 폴 뉴먼과 잿빛 머리카락의 로버트 레드포드는 너무나 멋지고, 그들의 우정에는 충성과 기만을 바탕으로 한 희극적 모험이 담겨 있다고 적었다.


▶두 대배우의 연기 앙상블
한때 말론 부란도의 뒤를 이을 대배우로 기대를 모았던 폴 뉴먼과 ‘선댄스 영화제’를 발족시켜 독립영화의 아버지로 존경받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전성기 때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폴 뉴먼은 행복한 결혼생활 끝에 83세의 나이로 2008년 죽었지만 레드포드는 2018년 82세의 나이에 <미스터 스마일>에서 실존인물인 70대 은행강도로 나와 팬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사실 로버트 레드포드의 영화 인생은 평범하지 않다. 잘생긴 외모와 여성들을 대하는 자연스러운 태도로 많은 남성의 부러움의 대상이자 여성들에게는 연인의 이상형이었던 그는 이 영화로 연기의 정점을 찍고는 영화감독의 길로 선회한다. 

가족의 불행을 다룬 이야기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모두 안겨준 <보통 사람들, 1980>을 통해 엄청난 찬사를 받았으며 뒤이어 자신의 후계자로까지 거론되는 브래드 피트를 기용해 <흐르는 강물처럼, 1993>을 내놓았고, <퀴즈 쇼, 1994>, <호스 위스퍼러, 1998>도 찬사를 받았다.

1960~70년대 미국 영화계 최고 스타였던 두 배우의 대결과 함께 빛나는 조연들의 재치 넘

치는 대사와 연기 앙상블은 마치 무대극을 보는 듯한 재미와 반전의 재미를 안겨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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