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돐 맞은 ‘대갈문화축제’와 ‘민화전문 갤러리 363’ 오픈에 거는 기대

민화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민화란 조선시대의 서민화가가 그린 그림으로써 도화서의 화원이나 이름 있는 전문화가, 혹은 문인화가가 그린 그림과 구 별되며, 주로 벽사, 기복 혹은 집 안의 치장과 감상을 위해 제작된 실용적인 그림’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바꾸어 다시 말해 본다면, 민화는 조선시대의 그림이고, 서민이 그린 그림이고, 이름이 있는 전문화가의 그림은 분명히 아니며, 구도나 명암을 염두 해 두지 아니한 어떠한 사상이 깃들지 않은 순수 장식용 그림 또는 기복의 의미가 있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화를 그리고 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민화를 창작하자는 붐이 일어 너도나도 ‘창작 민화’를 그려서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그 창작 민화라는 것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이것이 과연 민화인가? 라는 의구심이 이는 작품이 대다수다. 다양한 소재와 작품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과연 저 작품을 민화라는 카테고리에 넣어도 되는 건지 고민되는 작품이 더 많다. 차라리 한국 채색화라고 해야 맞다는 생각이다. 민화는 말 그대로 조선후기때의 그림인데 그것을 가지고 창작을 하려니 한계에 부딪쳐 오히려 참신한 창작이 안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차라리 민화 리메이크라는 용어를 쓴다면 기존의 민화에서 다양한 느낌의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크릴화인데 호랑이와 모란이 등장한다고 해서 창작민화라고 할 수 있는가?
유화인데 소나무와 까치가 등장한다고 창작민화라고 할 수 있는가?

단지 동양화 물감을 썼다고 해서 구도나 명암이 서양화 기법인데 창작민화라고 할 수 있는가 말이다. 게다가 민화의 카테고리에 궁중회화, 풍속화, 중국의 공필화는 물론, 이름 있는 전문 작가의 그림마저 포함시키고 있다. 일본의 인기 민화였던 우끼요에가 도로에, 애마와 같은 공예에 가까운 민화와는 분명히 구분짓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현 시대가 모든 장르에 벽이 허물어진 대중화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의 공필화가 한국 민화로 둔갑되는 건 위험한 것 아닌가? 실제로 민화전시장에서 중국 공필화를 만나는 우스운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해마다 펼쳐지는 대갈문화축제가 올해로 7돐을 맞았다.
전국 민화인들의 지지 속에 발전을 거듭해 온 대갈문화축제 전시가 올해는 양적 질적 다소 떨어진 느낌을 받은 건 나 혼자만일까? 현대 민화에 초점을 맞춘 건 그렇다 하더라도 전통 없는 현대가 있을까? 전통 민화를 제대로 재현한 작품이 전시장에 한 점 없는 것은 관람하는 자 입장에서 큰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대갈문화축제 기간에 맞추어 새롭게 탄생한 ‘민화전문 갤러리363’에 전시된 창작품들도 민화가 가진 ‘장식적인 그림’에 충실한 것 이외에 민화라고 보기 힘든, 거의 서양화에 가까운 그림, 또한 민화가 아닌 풍속화가이자 도화서 화가인 김홍도의 작품을 민화라고 버젓이 재현한 그림, 전통민화는 한 점도 없이 ‘이것이 민화다’라는 전시 타이틀로 소개하고 있음을 보고 적잖이 실망했다.

민화는 조선의 전통 민화로 남아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민화작가라고 한다면 전통 민화를 재대로 재현하는 사람만이 민화작가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작가가 민화의 소재를 차용해서 창작을 했다면 그 작가의 창작품인 것이지 ‘창작민화’라는 용어를 굳이 끼워 맞출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조선의 민화를 재해석해 보는 ‘민화 리메이크’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화적 소재를 가지고 패션을 비롯한 여러 가지 디자인 요소에 활용하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한국 민화의 아버지(?) 조자용의 호를 딴 대갈문화축제가 생겨난 것은 대갈 조자용이 부르짖은 한국문화의 얼을 되새겨보고 지키고 보존하며 창조해 나가자는 의미일 것이다.
오늘날 민화인들은 초심으로 돌아가 전통 민화를 다시금 깊이 연구하고 그것을 발판삼아 개개인의 창작 활동에 커다란 영감을 들이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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