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시 동면 사배리에서 출생한 송담 백수회 선생이 임진왜란 때 포로가 되어 일본에서 억류생활을 할 때 소회를 읊은 시조는 일편단심 귀국을 소원하고 있다. 작품은 일본에 끌려가 억류되었던 9년 동안의 회한과 고국을 그리워하는 정을 비장한 어조로 읊은 것이 대부분이다. 포로 생활의 고독한 심사를 시편이나 가사로 짓다가 27세 되던 해 석방되어 환국하였다.

어와 하도할샤(아! 많기도 하구나)/ 이내 분별 하도할샤(이내 생각이 많기도 하구나)/ 남모르는 근심을 못내 하여 설운지고(남모르는 근심이 말할 수 없이 많아 슬프구나)/ 언제나 하늘이 이 뜻을 알으셔 사반고국 하려니고(언제나 하늘이 뜻을 알아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려는가).

포로생활 중 일본 경도에서 안인수(安仁壽)라는 사람을 만나 지은 화답시조가 ‘화경도인안인수가(和京都人安仁壽歌)’이다. 안인수가 시가를 지어 위로하였다. 이 가사는 이에 화답하여 지은 작품으로, 형식은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5행의 짧은 가사이다.

한등객창에 벗 없이 혼자 앉아/ 님 생각하면서 좌우를 돌아보니 북해인가 연옥인가 이 어디라 할 게이고/ 청풍과 명월을 벗삼은 몸이 위국단심을 못내 슬퍼하노라./ 해석은 다음과 같다. 객창의 차가운 등불아래 벗 없이 혼자 앉아/ 고국을 생각하며 사방을 둘러보니 북풍한설 몰아치는 북해인지, 불길에 휩싸인 연옥인지 여기가 어디라 할 것인가?/ 청풍명월을 벗 삼았지만 조국으로 돌아갈 마음만 있을 뿐 못내 슬프기만 하구나./

재일본장가(在日本長歌)는 술회가사(述懷歌辭)로 송담 백수회 선생의 나라를 위한 단심(丹心)과 부모를 그리워하는 효심(孝心)이 여실히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재일본장가’는 일본에 포로로 끌려가 있을 때 지은 가사이다. 박인로(朴仁老)의 ‘태평사’, ‘선상탄’과 함께 전쟁 가사 중 하나이다. 나라를 위한 단심과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히 묻어나고 있다. 백수회의 작품은 박인로의 가사들과 함께 국문사학사에서 찬연히 빛나고 있다. 극도의 혼란과 참혹한 살육전이 벌어진 임진왜란 때는 한가하게 시조를 읊고 기록을 남길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다. 두 분의 작품은 가사 문학 공백기의 맥을 이어주고 있어 중요하다.

아아! 이 내 몸이 일일도 삼추로다./ 해동 이역을 이 어디라 할 것인가?/ 천심이 블조하니, 만리 표림이라./ 눈물을 씻고서 좌우를 돌아보니,/ 어음이 부동하고, 풍속이 상위로다./ 청의를 메었고, 성전에 절하며,/ 이제의 채미와 소무의 한절과/ 천상의 위국단심을 잊지 않은 이내 마음/ 조조 모모에 서산을 창망하니,/ 일촌 간장이 끊는 듯 잇는 듯/ 건곤을 부앙하고, 고사를 사량하니,/ 부모의 은덕과 형제의 우애를 못다 갚은 잔구로다./ 침상에 꿈꾸어 고국에 돌아 오니,/ 궁실이 여전하고, 송국이 황무로다./ 부모께 절하며, 이제를 덥썩 잡고,/ 중년 불견하며, 양생 상비/ 이르며 물으면서 체루를 상휘하고,/ 적적 전정을 못내 베푼 사이에/ 이요 난이하니, 원접 경회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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