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 한 해도 저물어간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표현은 진부하지만 항상 들어맞는 말이기도 하다.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한 인간사회의 갈등과 화합은 영원한 화두일 따름이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영화지만 양산 땅에서도 잠 못 이루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자리를 유지하느냐 내려오느냐 갈림길에 선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김일권 시장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지난 해 지방선거에서 나동연 전 시장을 누르고 당선되었지만 상대 진영에서 제기한 허위사실 유포라는 선거법 위반 사건에 발목을 잡혀 두 번의 결심에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선고를 받고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1년 이상 끌어오는 동안 지칠 법도 한데 최근 김 시장을 만나 본 사람들은 의외로 그의 표정이 담담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하나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가능한 날까지 소임을 다하겠다는 달관의 흔적이요, 다른 하나는 내심 주변 정치 사건의 흐름이 유리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주변의 상반된 기대감 속에 해는 저물어 새해가 되면 운명을 가르는 판결이 나올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오랜 기다림 끝에 확보한 시장 자리이기에 아쉬움이 더 클 것 같다. 1996년 시 승격 이후 처음으로 배출한 진보 정당 시장이 아니든가. 고로 마지막 선고가 나오기 전 까지는 모두가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지난 선거 당시 공천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있었던 것을 염두에 둔다면 더욱 신중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작년 초 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었던 인물들은 숨 죽이며 귀추를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 현역 서형수 국회의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출사표를 던졌다가 유여곡절 끝에 본선에 나서지 못한 최이교 후보는 그 뒤 지역에서 이름을 감추었고 함께 뛰었던 임재춘, 박대조 두 인사는 총선 출마로 가닥을 잡았기에 조문관 전 도의원과 김종대 현 시장 정책보좌관의 가슴은 두근거릴 테다. 시의회의 3선 이상 의원들도 엉덩이가 들썩거릴 일이다.

이런 분위기와는 달리 자유한국당에서는 비교적 움직임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인사가 나동연 전 시장이다. 그는 지난 지방선거 낙선 이후 이미 갖고 있던 양산을선거구 지역위원장 자리에 몰두함으로써 차기 총선에 나설 의향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거주지까지 웅상지역에 마련해 놓고 공을 들이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그런데 변수가 생기려 하고 있다. 김일권 시장의 거취가 조만간 결정되기 때문이다. 만약 시장 재선거가 이루어진다면 그의 거취는 분명해 보인다. 신년 초 출판기념회를 예고하고 있는 나 전 시장이 과연 어떤 행보를 할 것인가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국당 내부에서 도전 상황은 만만치 않다. 시, 도의원 4선 관록의 정재환 전 도의원과 시의회 의장 출신의 한옥문 경남도의원이 더는 양보할 수 없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고, 얼마 전 퇴직한 정장원 전 웅상출장소장도 오랜 행정 경험을 살려 출마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 대목에서 눈여겨 볼 것은 나동연 전 시장의 3선 연임제한 규정의 적용 여부이다. 나 전 시장은 이미 2선을 경험했기 때문에 재선거로 진출하더라도 연임제한에 걸려 잔여 임기를 채우는 것으로 끝난다는 설도 있고, 간격이 생겼기 때문에 다시 3선까지 가능하다는 설도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유권해석은 소관이 아니라고 미루고 있다. 공직선거법이 아닌 지방자치법 관련 사항이기 때문에 안전행정부 소관이라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 문제가 한국당 내부 이슈가 될 것은 틀림이 없다. 만약 연임제한에 걸린다면 나 전시장의 출마를 회의적으로 볼 견지가 생기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당 내에서 한 사람의 독주를 두고 볼 수 없다는 경쟁자들의 결전 의지를 더욱 키워주는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 전시장은 아직 명확한 거취 표현을 하고 있지 않지만 이번 주말의 출판기념회 자리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무릇 정치인들의 선거 출정식의 한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는 출판기념회의 성격으로 볼 때 어떤 길이든 확실한 타겟을 제시해야 할 자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양산의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의 밤은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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