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 안에 갇힌 새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날지 않고 꼿꼿이 서 있는 새지만,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 온 것이다.  마음껏 날 수 있는 숲에서도 새는 날지 않고 긴 다리로 서 있다. 새는 비록 날진 않지만 꼿꼿하게 서 있는 그 공간에서, 그 환경에서, 서서히 행복을 찾았다.

지난 25일 쌍벽루아트홀 전시실에서 6번째 개인전'Story-2019'를 열고 있는 임의복 작가를 만났다.

임의복 작가는 경성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작품 활동을 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돌보며 자연스레 작품 활동을 멈추게 되었다. IMF로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작가는 시댁이 있는 양산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빈손으로 들어와 살게 된다.

결혼 후 넓은 도시 창원에서 살다, 1999년 갑작스레 내려 온 양산, 이곳에서의 생활은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노랗게 떨어진 은행잎이 길가에 가득했던 어느 날,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가던 작가는 샛노란 은행잎이 가득 떨어진 거리를 보고 눈물을 흘렀다. 우울증이 왔던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싶어 무작정 공장에 취직을 했다. 공장에 출근 한 첫날, 빗질을 하던 중 전화가 울렸다. "임 작가~ 나 좀 도와줄래? 아이들 그림 수업을 임 작가가 맡아줬음 좋겠어. 내일 부터 당장!!!" 손에 있던 빗자루를 던지고, 그날부터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가는 아이들을 지도하다 2005년에 양산 미술협회에 가입한다. 협회 가입 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 왔지만 울산 애니원고등학교(특목고)등에서 아이들 지도를 병행하다보니, 작품에만 몰두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개인전을 열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4년 만에 여는 작가의 6번째 개인전은 그래서 더 특별한 듯하다. 다시 그림을 시작한 초창기, 작가의 작품은 많이 어둡고 우울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며, 그 그림을 통해 작가는 자신을 치유해 왔다. "그림을 그린다는 그 자체가 나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이자, 목적인 것 같아요. 감상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감동을 주는 것도 있겠지만 그건 두 번째죠. 나 자신을 절망으로 부터 구원 해 주는 치유의 약이 바로 그림 이예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어둡고 우울했던 작가의 작품은 많이 밝아졌다. "처음엔 모든 제 생활이 너무 힘들었어요. 젊은 시절에도 저는 늘 시계를 봤어요. 데이트 할 때 조차 시계를 보며 시간에 얽매였어요. 시계 좀 그만 보라는 소릴 들을 정도였죠. 늘 정해진 틀 안에서 생활했고 매우 내성적이기 까지 했죠. 그래서 처음 양산에서의 생활도 참 힘들었어요. 시부모님을 모시는 것도 힘들었죠.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많이 달라졌어요. 이제는 시부모님도 정말 내 부모님처럼 편하구요.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며 작품 활동을 이어 올 수 있었던 것도 시부모님이 이해 해 주시고 도와주셨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두 딸도 모두 성년이 되어 잘 지내주고 있고...내성적이던 제가 미술협회 양산지부 지부장까지 하고 있으니... 제 자신에게, 제 삶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아시겠죠?"

아직도 작가의 작품에는 날지 않는 새가 등장한다. 갇혀 있던 새장에서의 시간이 길어 비록 아직도 날진 않지만 서 있는 그 공간 속에서 새는 행복을 찾는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삶에 적응을 하고 소소한 삶의 과정에서 행복을 찾은 임의복 작가. 작가의 작품에는 말과 새가 주로 등장한다. "말은 뒤로 가지 않고 늘 앞으로 전진해요. 그래서 상징적으로 말을 그리고, 자유롭게 나는 새를 그리고 있어요." 말과 새에 작가는 자신을 투영 해 내고 있다.

작품을 하며 보람 된 순간은 감상자인 관람객과의 교감이 있을 때라고 작가는 말한다. 감상자는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작품을 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늘 작품을 소개할 때는 설명을 하지 않고 감상자가 있는 그대로의 작품을 먼저 느껴보라고 한다. 

내가 웃으면서 그린 작품도 누군가에겐 눈물이 나는 작품이 되기도 한다. "삽량 축전에 작품을 전시 했던 시기였어요. 어느 날 전시되어 있는 작품을 보고 연락했다며 감상자의 전화를 받았죠. 감상자는 그 작품을 보고 너무 슬퍼서 울었다고 했어요. 내가 의도한 방향은 아니지만, 작품을 보던 그때 그 감상자의 마음이 힘들었구나 생각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내 그림을 보고, 자신 속에 있는 그런 감정을 풀고 표현 할 수 있다면 그게 그림을 그리는 또 하나의 보람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간혹 감상자들의 연락을 받으면 다시한번 더 그림을 그리는 이 일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작가는 작품 하나를 잡고 계획적으로 기간을 정해서 작업을 하지는 않는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그렸다가 멈추고, 아예 치워두기도 했다가, 또 꺼내서 작업하곤 한다. 그래서 한 작품이 한 달이 넘게 걸리기도 하고 1년이 넘게 걸리는 작품도 있다. 완성을 눈앞에 두고 다 지워버리기도 하고 작가의 마음과 의식의 흐름 그대로를 화폭에 담아낸다. 그래서 작품은 작가를 늘 투영하고 있는 듯하다.

개인전에 걸린 수많은 작품 중에 유독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작가는 '꽃비 내리던 날'을 꼽았다. 이 작품은 작가가 갱년기를 겪은 시기에 그린 작품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남편도 싫고 모든 일이 피곤하던 시기에 남편의 권유로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다. 벚꽃이 화려하게 휘날리던 봄날, 작가는 남편과 함께 하동 여수 등을 여행하며 휘날리는 꽃잎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여행을 다녀 온 후 신기하게도 얼어붙은 듯 했던 마음이 풀리고, 다시 사랑하는 감정도 피어나며 갱년기를 비교적 수월하게 넘어가게 되었다. 그 여행을 다녀온 후 '꽃비 내리던 날' 작품을 통해 그 기억을 생생하게 담아내게 되었다. 

"모든 작품이 소중하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작품 이예요. 사랑의 힘은 참 위대하죠?" '꽃비 내리던 날' 작품에는 그 시기의 그 사랑이 고스란히 그대로 묻어나 있다. 감상자의 마음까지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듯하다.

(사)한국미술협회 양산지부장 대행을 맡고 있는 임의복 작가는 다양한 단체전 및 초대전에 150여회 참여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울산한마음미술대전 운영위원및 심사위원 역임하고, 2019울산국제목판화비엔나레·경남미술대전 운영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경남미술협회 서양화1분과위원장, 양산시 경관 심의위원, 양산시 옥외광고 심의위원, 경남현대작가회·울산목판화협회·양산미류회·국제앙드레말로협회 회원이다.

작가는 미술협회 양산지부 지부장을 올해 마치고 나면 작품 활동에만 더욱 매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으로의 작품이 더욱 기대되는 순간이다. 

작가를 인터뷰 한 후 떠오른 시 한 구절이 있다. 김남조의 시 '편지' 중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기자가 만난 임의복 작가는 작가의 그림만큼, 참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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