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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칼럼]최고 지도자, 카네기와 유방
  • 권우상 (명리학자ㆍ역사소설가)
  • 승인 2019.11.1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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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카네기라면 「철강왕」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가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것보다 오히려 카네기 홀이나 카네기 공과대학, 카네기재단 등 사회사업 분야에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의 묘비엔 이러한 글이 새겨져 있다.

「자기보다 현명한 인물을 주변에 모으는 방법을 터득한 사나이가 여기에 잠들다」 사실 이와 동일한 취지의 말은 이미 2천년 전 훨씬 옛날에 했던 인물이 있다. 한(漢)나라를 창업한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바로 그 인물이다. 기원전 202년의 일이다.

어느 날 수도 낙양의 남궁에 여러 제후(諸侯)를 모아 놓고 주연을 베풀었다. 여기엔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장수들도 참석했다.

유방은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는 신하들을 향해 이렇게 질문했다. "한 가지 솔직한 의견을 말해주기 바라오. 내가 천하를 얻은 이유는 무엇이오? 나는 싸움을 잘하는 장수도 아닌데 항우가 나에게 패하고 천하를 잃은 이유가 무엇이오?"

그러자 재빨리 신하 한 사람이 말했다. "폐하는 오만하고 상대방을 깔보는 성향이 있습니다. 반면 항우는 인정에 약하고 신하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폐하는 도성이나 영토를 공략하면 공을 세운 장수들에게 나눠주고 결코 독차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항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질투심이 강해 부하가 전쟁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기라도 하면 도리어 눈을 돌립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보다 뛰어난 인물에는 외면합니다. 손에 넣은 것은 모두 자기만의 공으로 치부하고 결코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항우가 천하를 잃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들은 유방은 말했다. "그건 하나를 알고 둘은 모른다는 말이 아니오" 하며 웃어 넘기고는 이렇게 설명했다. "참모본부의 장막 안에서 계략을 짜서 천리밖의 승리를 거둔다는 점에서는 나는 장량(張良)을 이길 수 없오. 내정(內政)의 충실, 민생안정과 군량조달 보급로의 확보라는 것에서는 나는 소하(蕭何)에 필적할 수 없오. 또 백만대군을 자유자재로 지휘해야 승리를 거둔다는 점에서는 나는 한신(韓信)을 따르지 못하오. 이 세 사람들은 천하의 호걸들이오.
나는 이 호걸들을 유용하게 쓸 수 있었오. 이것이야말로 내가 천하를 얻은 이유라고 생각하오. 항우에게는 범증(范增)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지만 항우는 이 한 사람조차도 유효하게 잘 쓸 수 없었오. 이것이 내가 살아나게 된 이유인 것이오."

카네기와 유방은 조직을 이끌어 가는 '리더'로서 두 사람의 사고방식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결코 아니다.

최고 지도자의 진정한 존재 이유란 자기보다 우수한 인재를, 자기에겐 없는 능력을 구비한 인재를 어떻게 잘 쓰느냐에 있으며 이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리더학'의 기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유방이 한신과 잡담하는 가운데 장군들의 용병술이 화재가 되자 유방은 한신에게 물었다. "나에게는 몇만 명의 병졸을 거느릴 능력이 있다고 보는가? "폐하는 기껏해야 10만입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저는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나에게 굴종하고 있는가?" "폐하는 '병졸의 장수'가 될 능력은 없으시지만 '장수의 장수'가 될 능력을 지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한신은 원래 항우를 섬기고 있었지만 중용하지 않고 버림을 받은 처지였기에 장량의 천거로 유방에게 온 인물이다. 항우는 전쟁에서 항복해 온 장수와 병졸들을 죽였고, 정복한 지역의 백성들까지 학살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전쟁의 승패는 결정될 수 밖에 없다. 최고 지도자가 아무리 유능하다고 하더라도 혼자서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장수의 장수'가 되는 마음 가짐이 최고 지도자에겐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가를 역사는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은 자신보다 뛰어난 인물은 절대로 키우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영달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가?

권우상 (명리학자ㆍ역사소설가)  ysnews0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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