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하(李游夏)[1767~?]는 1786년(정조 10) 생원시에 급제하고, 1795년(정조 19) 문과 별시에 병과 2등으로 급제하였다. 1801년(순조 1) 예조의 부정자(副正字)로 벼슬 생활을 시작하여 사헌부 감찰, 사간원 지평 등을 지냈다. 

이유하는 1808년(순조 8년) 7월부터 1810년(순조 10년) 12월까지 양산 군수로 재임하였다. 1811년(순조 11) 통례원 좌통례가 되었고, 이후 사헌부, 사간원 등의 요직을 거쳐 1820년(순조 20) 북청 부사로 나갔다. 1822년(순조 22) 환곡(還穀) 운영을 잘못하여 삭탈관직 되었으나 이듬해 통례원 상례(相禮)로 복귀하였다. 

사간원 사간, 사헌부 집의, 홍문관 부교리 등을 지내고, 1830년(순조 30) 세자시강원 필선(世子侍講院弼善)이 되었다.

이유하 축은제비(李游夏 築恩堤碑)는 이유하가 양산 군수로 있을 때 현재 부산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구포 대리 마을의 하천이 큰 비만 오면 범람하여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이유하가 제방을 쌓아 하천이 마을 외곽으로 돌아 흐르도록 하였다. 주민들이 이를 감사히 여겨 1809년(순조 9) 공덕비를 세웠다.

비신(碑身)의 상부는 둥글고, 대좌(臺座)는 방부형(方趺形)이다. 비의 크기는 높이 125㎝, 너비 48㎝, 두께 15㎝이다. 비의 앞면에는 '행군수 이후유하 축은제비(行郡守李侯游夏築恩堤碑)'라는 비제(碑題)가 적혀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몸소 부역을 살피시고(親審役處), 일천 장정을 뽑아 주셨네(劃給千丁), 제방을 쌓아 준 은혜만이 아니니(非徒恩堤), 고을 모두 편안하게 해 주셨네(一郡咸寧)." 뒷면에는 '숭정 기원 후 네 번째 기사년(1809) 3월 일. 도감 유학 정□□, 감관 한량 이□삼, 겸사복 김태응, 유학 나흥수, 간역 양리상임 노문재, 수물 김하종(崇禎紀元後四己巳 三月日 都監 幼學 鄭□□ 監官 閑良 李□三 兼司僕 金泰應 幼學 羅興洙 幹役 兩里上任 盧文再 收物 金廈宗)'이라고 되어 있다. 

이유하 축은제비는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1동 430-1번지 구포1동 주민센터 어귀 화단에 있다. 
원래 비석골에 있던 것을 1966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으며, 비를 옮기면서 대좌를 새로 놓았다.
승정원일기 1951책 (탈초본 103책) 순조 8년 7월 10일 갑술 17/26 기사 1808년  嘉慶(淸/仁宗) 13년 기록에 보면 南寅老 등에게 관직을 제수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에 이유하 군수의 임명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吏曹口傳政事, 以南寅老爲忠州牧使, 鄭東幹爲靑松府使, 金麟淳爲居昌府使, 洪理燮爲德源府使, 李游夏爲梁山郡守, 朴周源爲牙山縣監, 趙明漢爲懷仁縣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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