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개산대재의 중요 행사 중의 하나는 부도원에 있는 고승들의 부도탑 앞에서 올리는 부도헌다례다. 부도탑은 오랜 세월이 경과하면서 글자가 마멸되어 육안으로는 어느 고승의 부도탑인지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천년고찰 통도사는 창건주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앗을 들여와 차를 재배하고 부처님께 차 공양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차를 재배하는 다소촌은 통도사와 언양 사이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불교에서는 육법공양을 중시한다. 불교에서는 지계(持戒), 지혜(智慧), 인욕(忍辱), 선정(禪定), 보시(布施), 정진(精進)을 의미하는 향(香), 등(燈), 꽃, 차(茶), 쌀, 과일의 여섯 가지를 불전에 공양한다. 향은 제 몸을 태우면서 자유의 몸이 되어 날아간다. 바로 해탈의 상징이다. 등(般若燈)은 지혜를 상징한다. 등불은 스스로 태워 어둠을 밝히듯 지혜는 불투명한 사바세계를 밝힌다. 꽃(萬行花)은 극락이며 만행의 상징이다. 차는 감로다(甘露茶)로서 부처의 법문이 만족스럽고 청량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쌀은 선열미(禪悅米)로서 기쁨과 환희를 상징한다. 과일은 보리과(菩提果)로 깨달음을 상징한다.

초의선사(1786~ 1866)는 한국의 대표적인 다서(茶書)인 '동다송(東茶頌)'을 지어서 차의 기원, 효능, 차를 만드는 방법 등을 기록하였다. 초의선사는 조선 후기의 대선사로서 우리나라 다도를 정립한 스님으로 다성(茶聖)이라 부른다. 선사는 5세 때에 강변에서 놀다가 급류에 떨어져 죽을 고비에 다다랐을 때 부근을 지나는 승려가 건져주어 살게 되었다. 그 승려가 출가할 것을 권하여 15세에 남평 운흥사(雲興寺)에서 민성(敏聖)을 은사로 삼아 출가하였다.

초의선사는 동다송에서 다선일미(茶禪一味)를 언급하며 수행과 다도가 둘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우리나라의 녹차인 동다에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녹차와 달리 차별화된 향과 맛, 즉 독특한 향미가 담겨 있음을 전하고자 하였다. 동다송을 쓰고 3년이 되던 55살(1840년)에 초의스님은 임금인 헌종(憲宗)으로부터 파격적인 '대각등계보제존자 초의대선사(大覺登階普濟尊者 草衣大禪師)'라는 호를 받을 정도로 시서화 삼절(三絶)은 물론이고 차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로 인정을 받았다.

초의선사는 우리나라의 동다(東茶)를 단순히 '마시는' 차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수행자가 수행의 한 방법으로 차를 마시고 차를 통해 인격과 정신을 수양하는 것이므로 동다를 통해 인간성의 본질인 청정한 품성을 찾는 데 주목하고 있음을 강조하려 했다. 초의선사가 '동쪽 나라(조선)의 차를 칭송하는 노래', 즉 '동다송'을 지은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작권자 © 양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