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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칼럼] 한가위 보름달

우리민족은 일찍이 한반도에 정착 뿌리를 내리고 농경문화의 꽃을 피웠다. 농경문화의 상징 추석 한가위가 그 대표적인 명절인 것이다.

한가위는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풍요를 찬양하고 이처럼 풍년을 허락해 준 조상의 음덕에 감사를 드리는 일 년 중 가장 뜻 깊은 날이었다. 그래서 추석날에는 햇과일 햇곡식으로 빚은 떡과 술을 정성을 다해 올리고 차례를 지냈다. 조상의 산소를 찾아 성묘도 하고, 시집간 새색시가 오랜만에 친정을 찾아 근친(覲親)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농경사회의 끈이 무너지고 상업경제 공업생산품 무역거래 위주의 산업사회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한가위 추석 명절은 한민족 최대의 명절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팔도강산 천지사방으로 일자리를 찾아 흩어졌던 가족 피붙이들이 한가위 보름달이 뜨는 옛 고을을 찾아 모두 다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수천 년 조상 전래로 전해 내려오던 추석 전후의 수많은 세시풍속들은 거의 다 사라져 버리고 없다. 각박한 산업사회에 적응하다 보니까, 끈끈하게 얽혀 있던 피붙이간의 천륜(天倫)도 우애도 옛 같지 않고, 이웃과 친지간의 정의와 미더움도 야박해져 가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추석 전야 열나흔날 저녁 동산에 둥근달이 떠오르면 사람들은 두 손을 모으고 달님께 저마다의 소원을 빌었다. 과년한 처녀총각은 시집장가 가기를 빌었을 것이고, 할머니들은 자식들 손자들 무병 건강을 빌었을 것이다. 가정을 꾸리는 어미 아비들은 온 가정의 무탈과 새해도 풍년농사를 빌고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일 년 중 가장 크고 밝은 달이라고 믿었던 한가위 보름달이 떠오르는 추석날 저녁에는, 동네 고샅길 여기저기 마당 넓은 집 이집 저집에선, 동네 조무래기들 웃음소리가 요란했다. 숨바꼭질 술래가 하나 둘 셈 세는 소리, 머리 큰 아이들 수건돌리기 함성도 한몫을 했다.

남정네들 보다는 일 년 내내 밥 짓기, 빨래, 아이 키우기 바빴던 아낙네들 놀이가 온 동네를 들썩들썩 동네 바닥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이었다. 둥당개 타령, 남생이 놀이, 놋다리밟기, 고사리꺾기, 널뛰기로 밤을 새우고 온통 살판 난 아녀자들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일제 말기 전쟁이 가파르게 숨을 몰아쉬자, 남부여대하고 정든 고향을 떠나는 사람이 많았다. 현해탄을 건너 북해도 탄광으로, 혹은 화태(사할린)지방, 눈 덮인 북만주 땅으로, 혹은 함경도 삼수갑산 무산철산으로 살길을 찾아 떠나야 했다. 징용징병, 보국대, 정신대(위안부)란 이름으로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도 많았다.

추석 명절은 이들에게 피와 뼈를 받은 조선 땅 정든 고향을 회상하게 하고 한가위 보름달은 몽매에도 잊을 수 없는 어버이의 얼굴이었다. 객지로 나갔던 아들 딸, 일가붙이, 한동네 사람 이웃들이, 고향을 찾을 라 치면, 가장 선호하는 기회가 추석 명절이었다. 

6, 7십 년대 배고픈 고향땅을 떠나 서울로 부산으로 돈벌이를 떠나던 시절, 역시 한가위는 헤어졌던 부모 형제 이웃 친척이 다시 만나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란 말은 가난에 찌들은 우리네 농촌사회를 배경으로 생겨난 말이다. 오늘을 사는 2, 3십대 젊은이들은 형이나 아버지세대의 지독한 빈곤을 모른다. 험난한 역사의 질곡에서 허덕이던 선인들의 뼈아픈 민족적 고통을 그들은 체험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나라'라고 하는 체제의 뜻을 절실하게 받아들일 기회가 적었는지도 모른다. 또는 분단체제의 고착상태가 지루하게 계속되는데서 오는 무감각 만성피로에 젖어 있는지도 모른다. 재벌 3세들의 일탈과 마약사건을 보면서, 그들의 대 사회인식이 얼마나 안이하고 퇴영적인지, 실로 우리민족 집단공동체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가위 보름달은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물결의 들녘과 함께 우리 겨레 마음의 고향이고 영원한 우리들 생명의 요람 그립고 그리운 어버이의 얼굴이다.

피붙이 살붙이들을 북녘강산에 두고 한 평생 동안 길이 막혀 서로 생사조차 알 길이 없는 이산가족의 아픔 앞에 할 말을 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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