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이 많이 있는 곳은 장터, 큰 고개 밑의 길목, 나루터, 광산촌 등이었다. 주막은 시골뿐만 아니라 도회지에도 많이 있어 주막거리라는 이름이 생겼을 정도이다. 주막의 주된 기능은 손님에게 술을 팔고, 요기를 할 수 있게 밥을 제공하는 것이며, 잠자리인 숙박처를 제공하는 일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어서 정보의 중심지 구실을 하였고, 문화의 수준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곳이어서 문화를 교류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피곤한 나그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였고, 시간이 많은 한량들에게는 유흥을 즐기는 장소였다.

옛날 주막에서는 밥, 술을 사먹으면 대개 잠은 공짜로 재워 주었다. 조선시대 주막에서 팔았던 술은 탁주가 주종이었고 소주도 팔았으며, 양반 손님을 위해 맛과 향기를 넣어 만든 방문주(方文酒)를 팔기도 하였다. 잠을 자는 나그네들은 주막에 도착한 순서로 먼저 온 사람이 따뜻한 방의 아랫목을 차지하였다. 

양산의 원동면 서룡리에 나루가 있던 시절을 일러 주는 주진(舟津 : 배나리) 마을이 있다. 신주마을은 본래 신정(新亭), 주진(注津) 두 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양산군 서면 신정리(新亭里)와 주진리(注津里)로 편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양산읍지초(梁山邑誌草)』에는 신정, 용포, 주진을 용포(龍包)로 개칭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형을 보면 토곡산에서 한줄기 능선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듯 굽이쳐 낙동강까지 내려와서 주진마을을 감싸 안고 있는 형국이다. 용이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라 용 용(龍)자, 쌀 '포(包)'자를 써 마을 이름을 바꾼 것이다.

주진마을은 약 800년 전 김해 김씨가 정착하여 강변 나루터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안주진마을은 동래 정씨가 임진왜란 당시 난을 피하여 정착한 곳이라고 한다. 신정마을은 신정, 신주막(新酒幕) 두 마을로 형성되었다. 신주막은 옛날 낙동강 변을 따라 한양 가는 길목에 있던 주막촌으로 나그네와 낙동강을 오르내리는 나룻배가 머물다 가던 곳이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주막집이 있었으나 홍수로 불어난 강물로 인해 신정마을로 옮겨 갔다.

예천군 삼강 나루터 주막촌은 낙동강, 금천, 내성천의 3강이 만나는 곳에 있는데, '삼강주막 나루터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달성군은 낙동강변 사문진 나루터를 복원하여 주막도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사문진 나루터는 옛날 보부상들이 부산에서 낙동강을 거슬러 대구로 오는 뱃길로 이용됐다. 1900년 3월 국내 최초로 미국에서 피아노를 들여온 곳으로 피아노를 소재로 한 콘서트를 선보이고 있다. 주진마을 안내판에 나루터, 주막을 알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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