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포는 현재 부산이지만 조선 말에는 양산군에 속해 있었다. 구포환속상서문(龜浦還屬上書文) 은 양산군의 9개 면 중 가장 넓은 면이었던 구포면이 1869년 동래군으로 편입되자 이를 복설하기 위해 1874년 1월부터 8월까지 작성된 상소문 12점이다. 구포면을 다시 양산군으로 환속시켜 향촌사회와 지역경제를 수호하려고 했던 양산군민들의 절박한 심정이 담겨 있는 지역사 자료이다.

낙동강의 물길은 1,300여 리에 이르는데, 부산의 구포에서 경북 상주의 낙동나루까지는 700리의 뱃길이다. 이 700리 뱃길에는 수많은 나루터가 있었다. 부산의 바다에서부터 구포의 낙동강으로 진입하여 가까이로는 양산을 거쳐 내륙의 경북까지 백성들의 애환이 서린 나루터가 있었다. 온갖 물자와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거점이 되었던 이 낙동강의 나루터들은 그 지역의 문화에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구포나루는 낙동강의 3대 나루터 중 한 곳이었다. 합천 율지 밤마리나루와 상주의 낙동진나루터, 그리고 구포나루는 예로부터 '낙동강 3대 나루터'로 유명했다. 낙동강의 뱃길에 위치해 있던 수많은 나루터 중에서도 그 명성이 자자했던 나루터들이다. 낙동강 3대 나루터였던 만큼, 지역의 문화에 미친 영향 또한 상당했다.

낙동강의 대표 나루이자 물류의 집산지였던 구포나루는 조선시대를 거쳐 근대화의 시간까지 부산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구포나루는 낙동강이라는 큰 물줄기를 바탕으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할 때 조창이 설치되고, 구포장이 열려 유통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구한말에 객주, 주막 등이 크게 번창하여 나중에 전국 최초의 지방은행인 구포은행이 설립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거북 구(龜) 자'에 '물가 포(浦) 자'를 쓰는 구포나루터의 이름이 지금도 부산 곳곳에 살아 있다. 현재 '구포'라는 이름을 딴 것 중에서 잘 알려진 것은 경부선 구포역, 구포시장, 구포 5일장, 구포국수가 있다. 구포국수는 구포나루와 구포장터를 이용하던 주민들이 즐겨먹던 음식이다. 또한 구포나루터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는 '낙동강 구포나루 대축제'가 올해까지 8회째 이어지고 있다. 양산의 나루터에서도 벤치마킹할만한 축제다.

축제는 북구 시민극단 감동진의 '감동진선샤인', 합수제, 불꽃쇼, 퍼포먼스 주제공연, 구민화합 가요제, 북구 청소년 동아리 공연, 수상 스포츠 체험, 사운드 피크닉 공연과 책놀이터 및 아트마켓, 감동민속촌·주막촌, 구포국수 체험, 밀사리·바베큐 체험 등을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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