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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칼럼] 구름타고 양산서 중국을 오간 낭지스님
  • 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 승인 2019.07.2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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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스님이 쓴 삼국유사 제5권 피은 제8(三國遺事 卷第五 避隱 第八)에 영취산에서 도를 닦던 낭지스님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삼국유사』 권3 흥법(興法)3 원종흥법염촉멸신에도 527년 이차돈의 순교, 낭지법사가 영취산에 머물면서 불법을 열었다고 기록하였다.

낭지법사는 양산의 영취산에서 수도를 하면서 일찍이 구름을 타고 중국의 청량산(淸凉山)에 가서 신도들과 함께 강의를 듣고는 잠시 후 곧 돌아왔는데, 그곳 중들은 아무도 그가 사는 곳을 모르면서도 이웃에 사는 사람이라고만 여겼다. 청량산 절에서 하루는 여러 중들에게 명하였다. "항상 여기 머무는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절에서 온 스님은 각기 사는 곳의 이름난 꽃과 진귀한 식물을 가져다 도량(道場)에 바치시오!"

낭지는 이튿날 산 속의 이상한 나무 한 가지를 꺾어다 바쳤다. 그곳의 스님이 이를 보고 말하였다. "이 나무는 범어로 달제가(?提伽)라 하고 여기서는 혁(赫)이라 하는데, 오직 서천축(西天竺)과 해동의 두 영취산에만 있다. 이 두 산은 모두 제10법운지(第十法雲地)로써 보살이 사는 곳이니 이 사람은 반드시 성스러운 사람일 것이다."마침내 그 행색을 살펴보고는 해동 영취산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스님을 다시 보게 되었고 그 이름이 나라 안팎으로 드러났다. 나라 사람들이 그 암자를 혁목암(赫木庵)이라 불렀다. 지금 혁목사(赫木寺)의 북쪽 산등성이에 옛 절터가 있는데 그 곳이 그 절이 있던 자리다.

「영취사기(靈鷲寺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낭지가 일찍이 말하기를, '이 암자 자리는 가섭불(迦葉佛) 당시의 절터였다.'라고 하고는 땅을 파서 등잔 기름병 두 병을 얻었다. 원성왕(元聖王) 때에는 대덕(大德) 연회(緣會)가 이 산 속에 와 살면서 낭지법사의 전기를 지었는데, 이것이 세상에 퍼졌다."

『화엄경(華嚴經)』을 살펴보면, 제10은 법운지라 했으니 지금 스님이 구름을 탄 것은 대개 부처가 세 손가락을 구부리고 원효가 백 개로 몸을 나누는 것 같은 것이다. 다음과 같이 찬미한다. "생각컨대 바위산에 백년 동안 숨어 살면서/ 높은 이름 일찍이 세상에 드러내지 않았다네./ 산새들의 한가로운 지저귐 금할 길 없어/ 구름 타고 오가는 것 속절없이 새어 나갔다네.

천성산에서 수도한 원효대사는 낭지법사의 제자로 가르침을 받았다. 낭지법사는 원효대사에게 『초장관문(初章觀文)』과 『안신사심론(安身事心論)』을 짓게 하였다고 삼국유사에 나온다.

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ysnews0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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