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희, 윤현진, 김철수 애국지사 상북 출신
달성서씨 좌삼마을 후손들 뿔뿔이 흩어져
김철수 초대 경남도지사, 자손들은 두문불출

[3.1절특집] 상북면 독립지사의 흔적을 찾아

서두성. 그는 서병희 의병장의 아들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영축산 만세봉 아래에서 일경과 교전 중에 전사했다는 기록을 발견해 2005년에 서훈이 나왔다. 그러나 달성서씨와 후손 서강희씨는 “족보에서 기록을 찾을 수 없기에 우리 조상이 아니다”며 훈장 수령을 거부했다.

김규봉 전 양산문화원 사무국장은 “의병장의 부인 순흥안씨 안모열 여사의 자손이 신소석 마을에 거주하고 있어 훈장 전달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훈장 전달이 어려운 것은 후손을 규명할 족보가 신빙성이 없기 때문이다. 박인주 양산문화원 부원장은 “후손들이 족보를 다 태워버려서 후손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독립운동 집안이라는 이유로 탄압을 받아 후손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족보까지 태워버릴 정도면 얼마나 고초가 심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좌삼마을 서덕수 이장은 “직계 후손들은 얼마나 사는지 알 수가 없다. 달성서씨들은 30~40명 정도가 거주할 뿐이다”고 말했다.

지역사를 연구하는 보광중학교 이병길 교사는 “양산에 독립지사 후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일경의 감시와 탄압을 피해 고향을 떠나 버린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양산 출신 독립지사 중 독립장 수훈자는 총 2명이다. 서병희 의병장, 윤현진 임시정부 요인이 그렇다. 이들은 모두 상북면 출신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첫 경남지사인 김철수 선생도 상북면 상삼마을 출신이다.

춘제 김철수 선생은 게이오대학 유학 중 동경2.8독립선언에 참가해 옥고를 치렀다. 그는 만석꾼 집안에서 출생했는데 생가는 빈 터로 남아 있었다. 이 곳이 집터였다는 것은 허물어져 가는 흙돌담 기와가 말해줄 뿐이다.

상삼마을에 사는 한 80대 노인은 “이곳이 춘제 선생 생가 였다는 것을 아는 나 같은 노인은 이제 몇 안남았다”고 했다. 춘제 선생 집안의 제실은 석계에 있다. 제실도 세월의 풍파에 삭아 오래된 은행나무만이 옛 영화를 나타내고 있었다.

“김철수 선생 아들은 교장선생님으로 퇴직하셨어요. 손자도 여기에 살고 계신데 방송국이나 작가들이 와도 외부와 접촉을 안하시려고 합니다.” 제실 옆 석계이용원 김길호 씨의 말이다.

우산 윤현진 선생의 상북면 내전부락 생가도 공장지대로 변했다. 내전부락은 마을 자체가 공장에 애워싸였다. 당산나무 근방에 주택 3~4채가 남았다. 선생의 생가 자리에 있던 벽돌주택은 최근에 공장터로 팔려 허물어졌다. 양산문화원에서 세운 생가터 알림판은 뜯어 없어졌다.

이병길 지역사연구가는 “생가 복원은 어렵더라도 여기가 생가 였음을 알 수 있게 하는 팻말이라도 세워야 한다. 상북을 독립마을로 지정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했다.

내전마을 출신 박재우(더불어민주당, 상북,하북,강서) 시의원은 “효충역사공원에 상북면 출신 독립지사 인물 전시를 하고 이 곳을 기점으로 애국보훈 답사 코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애국지사들의 공로는 훈장으로 기억됐지만 그들이 크고 자랐던 마을에는 스산함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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