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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1호 숭례문(남대문), 훈민정음 국보 제 70호.1443년 훈민정음이 완성, 1446년 10월 9일 반포.
1926년 조선어연구회[가갸날], 1928년 주시경 [한글날]로
1945년 10월 9일에 [한글날] 첫 기념식.
1946년 10월 9일 한글반포 500돌 맞아 첫 공휴일로 지정.
사진: 국보70호. 유네스코 기록물지정 [훈민정음 해례본]
사진: 국보70호. 유네스코 기록물지정 [훈민정음 해례본]
사진: 훈민정음 창제(1443년) 이전의 고(古) 한글로 추정되는 가림토(加臨土) 문자가 국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진: 가림토 문자로 된 비석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외국학자들까지도 이처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문자체계를 단시일에 갑자기 만들 수 있는가에 놀라워하며 그 기원이 따로 있을 거라고 한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라고 말하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교수나 한글은 한국의 전통철학과 과학이론이 결합된 인류최고의 문자라고 극찬한 전 한양대학 석좌교수 베르너 사세 교수, 이들의 그런 의문의 핵심에는 [환단고기]가 전하는 가림토 문자가 있다. 
 가림토(加臨多)는 고려 공민왕 때, 행촌 이암(李巖)이 저술한 단군세기에서 제3세 단군 가륵이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짓게 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환단고기 태백일사에 고조선 3대 가륵 단군 2년(기원전 2181년)에 삼랑 을보륵이 만들었다는 38자(천부경)는 한눈에 보기에도 훈민정음과 흡사하다. 이 문자가 세종대왕이 모방했다는 옛 조상의 글자, 자방고전(字倣古箋)이 그것이다. 형태와 소리가 계획된 것에서 나왔다는 [환단고기]의 우리말과 글자가 [천부인ㅇ ㅁ ㅿ]을 중심으로 창제 되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간다.
 정인지는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그 글자 모양을 상형이자방고전 이라한 것은 우리 조상의 글자를 모방했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의 글자란 신지혁덕이 만든 하느님 말씀[진본천부경]이란 것인데, 이것은 제천의식에 쓰는 글자라 인간의 글자를 만드는데 신지신획으로 ㄱ ㄴ ㄷ ㄹ 과 같은 직각으로 된 글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의 원래 뜻은 옛 조상의 글자를 본떴다는 자방고전을 정인지 등에게 설명하고 [훈민정음 해례본 제자해]를 쓰게 했다는 그의 [제자해 서문]에는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은즉 반드시 천지자연의 문자가 있다. 그러므로 옛 조상은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어서 만물의 뜻과 통하게 했고 삼재의 도에 실리게 했으므로 후세에서 능히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했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가림토로 추정되는 문자가 새겨진 바위들에는 상형문자에 가까운 글꼴로 ㅅ ㅈ ㄴ ㅠ 등 한글 자모가 뚜렷한 것들도 발견되고 있다. 재야 사학계 학자들은 이것들을 훈민정음 창제의 모태이자 기반이 된 것으로 알려진 가림토 문자가 확실하다고 했다. 
 -언문(한글)은 모두 옛 글자를 본받았다. 이것은 전조선(고조선) 시대에 있었던 것을 빌어다 쓴 것이다. (세종실록 103권 세종 23년에 발표한 글) 
 이 달에 상감께서 친히 스물 여덟자를 지으시니, 그 글자는 고전(古篆옛글자)을 모방한 것이다.(세종실록 25년 ;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첫 발표문) 
 -언문은 모두 옛글자를 근본삼은 것으로 새로운 글자가 아니며 곧 자형(글자의 모양)은 비록 옛날의 전문을 모방했더라도 용음(발음을 쓰는 것)과 합자(글자의 조합)가 전혀 옛것과 반대 되는 까닭에 실로 근거할 바가 없는 바입니다. (한글 재창제를 반대하는 최만리와 당대 유학자들의 집단 상소문 중에서) 
 단군조선시대에는 선대인 배달국에서 부터 사용해온 녹도문자(한자의 뿌리)가 있었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만물을 형상화한 뜻글자인 녹도문은 완전한 문자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제3대 갸륵 단군 경자2년(기원전 2181년)에 단군조선의 문자인 가림토 문자가 탄생되었고, 가림토 문자(38자)를 토대로 더 쉽게 정리하여 4177년 뒤에 재창조된 것이 훈민정음(28자)이라는 것이다.
 세종실록에는 1446년(세종 28년) 음력 9월 마지막 날에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를 근거로 1926년 지금 한글 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와 신민사가 당시 음력 9월 29일(양력 11월 4일)에 훈민정음 반포 여덟 회갑(480년)를 기념하는 행사를 가지고, 이 날을 `가갸글`이라는 당시 한글의 이름에 따라 제1회 `가갸날`으로 불렀다. 국어학자인 주시경 선생이 `한글`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뒤인 1928년 `한글날`로 이름을 바꾸었다.
 1940년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책으로 펴냈고, 1446년 9월 마지막 날인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10월 9일이 됐다. 1945년 8.15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10월 9일을 한글날로 하고 공휴일로 제정했다. 그러나 1991년, 공휴일이 너무 많아서 경제발전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한글날을 국군의 날과 함께 공휴일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한글학회 등 여러 단체가 다시 공휴일로 제정하자는 운동이 일어나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하는 촉구 결의문을 채택했다.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는 2005년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시키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1990년 법정 공휴일인 기념일에서 법정 공휴일이 아닌 기념일로 바뀌었고, 2006년부터 법정 공휴일이 아닌 국경일로 다시 지정되었다
 북한은 훈민정음이 쓰인 1443년(세종 25년) 음력 12월을 기준으로 하여 1월 15일을 `조선글날`로 제정했다. 우리가 훈민정음 반포일(세종28년 음력 9월 상순, 1446년 10월 9일)을 기준으로 [한글날]을 기념하는데 비해 북한은 창제일인(세종 25년 음력 12월, 1444년 1월15일)을 기념일로 하고 있다. 북한은 창제일이 5, 10년 주기로 기념보고회를 열고 훈민정음의 우수성과 민족어의 발전방향 등을 주제로 한 논의를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훈민정음 창제를 우리 민족의 글자생활에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됐고, 민족어가 언어의 통일성을 보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됐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김일성도 생전에 말하기를 삼국시기부터 이두문자를 사용한 우리 인민은 1444년에 가장 발전된 문자인 훈민정음을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훈민정음 창제]를 독자적 창제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신지문자가 고조선 시기 사용된 우리민족 고유의 문자로 이해하고 한민족 [시조글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부터 신지글자에 대해 단군시기부터 고조선에서 쓰인 우리민족 고유의 글자에서 발전한 것으로 훈민정음이 신지글자를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정인지가 훈민정음머리글자에서 `글자는 옛 전자(신지글자)를 본떴다`는 것과 이암이 쓴 [단군세기]의 정음 36자(가림토 문자)가 훈민정음과 비슷하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조선 제4대 임금)이 1443년(세종 25년)에 창제하여 1446년(세종 28년)에 반포했다. 이때 3년 공백기 동안 훈민정음의 실용성을 알리는 [용비어천가]를 지었다. 모두 스물여덟 글자로 이루어졌으나 현재는 네 글자를 제외한 스물네 글자만 사용되고 있는데, 훈민정음이란 백성을 가르치는 소리란 뜻으로, 창제 당시에는 언문, 언서, 반절 등으로 경시되기도 하였다. 
 한글은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글자로 닿소리(자음)는 소리를 낼 때 발음 기관의 생긴 모양을 그리고 홀소리인 모음은 하늘과 땅과 사람을 천. 지. 인(원방각)을 본떠서 만들어졌다. 초성 17자, 중성 11자로 된 훈민정음은 제작 동기와 취지를 알리는 서문과 본문이 있고, 제작 원리와 용례를 해설하는 정인지의 해례 서문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세계 400여 개의 글자 가운데 만든 목적과 만든 사람, 만든 때를 기록하고 있는 글자는 한글이 유일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문자를 만든 원리와 문자설명을 책으로 출판한 일은 유례가 없는 일로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놀라워한다는 것이다. 한글학회는 대한제국이 기울어 가고 있을 때, 우리말과 글을 보존하고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1908년 8월 31일에 주시경 선생이 중심이 되어 창립하였다. 당시 이름은 [국어연구학회]였다. 그 뒤로 [배달말글몯음],[`한글모], [조선어연구회], [조선어학회], [한글학회]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글]이란 이름은 1913년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이 붙인 것이다. 
 주시경(1876.12.22.-1914.07.27)선생은 황해도 봉산 출생으로 개화기 때의 국어학자로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을 만든 사람이다. 주시경은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 신문사 직원으로 한글신문을 제작하면서 한글표기법 연구에 열중하였다. 신문사 기자, 강사, 교사로 일하면서 배재학교 보통과와 흥화학교 양지과를 졸업했다. 선생은 무엇보다 일본의 침략에서 민족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한 계몽운동과, 국어연구 로 우리나라 국어발전에 앞장섰다
 "말은 나라를 이루는 것인데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마다 그 말을 힘쓰지 아니할 수 없는 바니라.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이니 이지러짐이 없고 자리를 반듯하게 잡아 굳게 선 뒤에야 그 말을 잘 지키나니라." -주시경 선생의 [한나라말] 중에서- 
 지난 세월동안 한글학회는 우리말과 한글을 수호하고 연구하는 일에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1926년에 처음으로 한글날을 제정하였고, 1930년대에는 한글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을 제정하였다. 서울말을 표준말로 정하고 최초의 대사전인 [큰 사전]을 편찬하여 발행했다. 
 우리말과 우리의 글을 탄압하는 일제에 의해 회원들이 투옥되어 고문을 당하고, 옥사까지 하는 일이 벌어졌다. 광복 직후에는 한국어 교사를 양성하고 교과서를 편찬하고 우리말에 끼어든 일본말을 몰아내고, 우리말과 우리글을 바로쓰기운동을 꾸준히 해왔다. 
 한글학회가 사전편찬을 시작한지 30년 만인 1957년 10월 9일 마지막 6권을 출간하여 [우리말 큰 사전]이 완간됐다. 그러니까 1927년 [조선어사전]편찬이 시작되어 1929년 10월 31일 김두봉, 이극로, 이윤재. 최현배, 등 1백8명이 [조선어사전 편찬위원회]를 구성한 것이 완간의 밑거름이었다. 1936년 사전편찬 작업을 [조선어사전 편찬위원회]에서 [조선어학회]로 이관하여 3년 목표로 작업을 시작했다. 16만 단어의 초고가 거의 완성될 무렵인 1942년 10월 일본 경찰이 서울의 [조선어학회] 사무실을 급습한 [조선어학회사건]에 사전원고를 모두 압수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해방이 된 그해 9월에 빼앗긴 원고가 서울역 운송창고에서 발견되어 다시 작업이 시작됐다. 이런 곡절 끝에 1권에서 마지막 6권이 나오기까지 10년 9개월이 걸린   1957년에 완간되었다.
 유네스코에서는 1997년 훈민정음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하였고, 2005년 12월 29일에는 우리 정부가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하기도 하였다. 한글날이 국경일이 된 지금 한글학회에서는 한글을 국보 1호로 하자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사실 국보 제 1호인 남대문과 제 3호인 진흥왕 북한산순수비 외 제 10호까지 중에 8가지 모두가 불교사적들인 셈이다.  


 

박정애 시인  ysnews0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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