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나주 정씨 정덕(丁德)이 어머니를 등에 업고 낙동강을 건너 피난 와서 홍룡폭포 갯들 밑에서 생활하다가 현재의 마을로 내려와서 정착을 했다. 당시 마을 이름을 돌실이라 하였고 그 후 담양 전씨, 김해 허씨 등 3개 씨족이 와서 살았다. 그 후 김해 김씨, 영일 정씨, 밀양 박씨, 안동 권씨, 경주 최씨, 동래 정씨, 김녕 김씨 등이 입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다.」
시청의 홈페이지에도, 마을의 안내판에도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이 마을은 현재 110여 세대, 25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양산시 상북면의 대석마을이다. 일명 물안뜰 마을이라고도 한다. `물안뜰`이란 농촌진흥청에서 지원하는 농촌테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2008년부터 불리어져오는 마을의 별칭인데 오히려 외지인은 몇 년 안 된 이 이름이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축산업을 비롯한 벼농사, 밭작물 재배가 주요 업이다. 어림잡아 마을주민의 평균 연령이 60세는 훨씬 넘겠다 싶다. 앞집 아지매 연세가 올해 81세인데 아직 노인정 출입이 어렵다. 우스갯말로 이 마을에서는 아직 노인이 아니란 소리다. 부모님 연세가 60대 후반이다. 아직도 마을의 대소사가 있으면 어머니는 여지없이 마을 일에 동원되어 봉사활동 나가신다. 이 마을에서는 청년세대인 셈이다. 나는 10년 전 고향에 들어와 집 짓고, 자식 낳아 3대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직업상 부산으로 출퇴근하며 40대 부부는 우리 집 뿐, 유치원생도 우리 아이 둘 뿐이다.
대부분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다. 저 집 아재 성함이 무엇인지?, 아지매 택호가 무엇인지? 연세가 어느 정도인지? 무슨 일을 하시는지? 대부분 가늠이 된다. 110여 세대 중 10여 가구 정도가 외지인일까? 땅을 사 집 짓고 들어온 사람들은 통성명도 없다. 별로 말도 섞지 않는다. 딱히 그럴 이유가 없다. 도심 아파트는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를 오며가며 마주칠 것이지만 각자 집으로 대문 닫고 들어가면 굳이 시골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필요도 없거니와 토박이 입장에서도 굳이 그들의 사생활에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400년 넘은 전통 취락지 대석마을의 현 주소다.
마을 현황을 소개하다보니 부정적 이미지를 연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양산8경 중 2경인 천성산을 뒤로 하고 골짝골짝 내려오는 물이(4경 홍룡폭포) 대석저수지를 거쳐 마을 앞을 휘감아 돌아 양산천으로 흘러내려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형으로, 그런 자연을 닮아 온화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양산의 대표적인 전원마을, 장수마을이 대석마을이다.
서로의 음식을 나눠먹고, 도자기 만들기, 풍물 배우기 등을 하며 주민들이 서로 단합하고 일상 속에서 소소한 문화적 삶을 살고 있는 생활문화공동체 마을이기도 하다.

서두부터 내가 살고 있는 마을 이야기를 한 것은 지난 5월 10일 창원에서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정책세미나 `문화적 도시재생, 어떻게 할 것인가?`에 참여하고 나서 몇 몇 느끼는 바가 있어 장황했던 소연(所然)이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국가정책으로도 큰 이슈이기는 한데 불과 40여 명의 세미나 참석자가 있었고 진흥원장 인사말씀에서도 "노는 자리에 가면 사람이 많은데 이런 공부하는 자리에는 사람이 적어 아쉽다."가 와 닿는다. 다행히 경남 내 몇 몇 시, 군의 공무원도 10여 명 있었고, 더 다행인 것은 양산시에서도 1명의 공무원 참석자가 있었다.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2014년~2016년까지 13개의 선도사업과 33개의 일반사업이 진행되었고,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 들어 <도시재생 뉴딜>정책이 공표, 2018년 3월 <도시재생 뉴딜 로드맵>이 발표되는 등 물리적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를 우선하고 기술?경제적 측면 보다는 자연환경과 주민 특성, 산업유형 및 지역 고유의 역사?문화?예술 등을 바탕으로 도시를 활성화 하는 인문사회적 측면이 강조되는 정책들이 속도감 있게 추진?확장되어 가고 있다.
이렇듯 물리적 개발이라는 하드웨어를 통해 도시를 재생하는 방식 대신, 사람과 일자리라고 하는 휴먼?소프트웨어를 통해 인구감소와 고령화, 일자리 감소, 건축물 노후화 등으로 쇠퇴해가는 도시를 경제?사회?물리?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기 위한 의지가 <도시재생 뉴딜>정책에 담겨있다.

`문화`는 사람들이 사회구조 속에서 영위하는 구체적인 물질적 활동과 일상적 사고방식이나 내용, 또는 그것을 규정하는 모든 사회적 요소들을 총칭하는 것으로 `문화적`이란 `인간적`인 것으로도 축약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문화적 도시재생`의 전제는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그 주요 매개수단으로 역사문화자산을 활용하는 것이다.
즉 `문화적 도시재생`이란 역사문화자산을 활용한 도시재생으로서 계획과 실행과 결과가 모두 문화적(인간적)인 것이라 하겠다.

세미나에서 기조강연을 맡았던 한국토지주택공사의 허정도 감사위원의 의견들에 공감하며 나름의 몇 가지 문화적 도시재생을 위한 방향에 대해 이야기 해 본다.
첫 째, 본지의 지난 기고문(지령 1319호, 5월 9일 수요일, 12면)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지역민들의 현재적 삶과 연계한 사회적 가치와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발견하기 위한 것으로 `지역학에 기반한 유무형의 역사?문화?예술적 자산 찾기를 통한 이야기 만들기`이다.
골목, 길, 산, 강과 바위에도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다. 이야기가 없는 돌은 그냥 돌일 뿐이지만 이야기를 담으면 역사가 된다. 중요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어서 보다 높이 평가되고 매력적인 경우가 많다. 부여 낙화암의 절벽은 몰락해가는 백제 삼천궁녀의 애절한 이야기가 있어 더 특별하고 관광지가 되는 것이다.
대석마을 입구의 당산 아래 `세계인환영`이란 비를 아시는가? 세계를 향한 열린 시각의 권순도라는 인물이 젊은 시절 영국인 세관장 헌트 딸과의 러브스토리가 있었기에 연유하지는 않을까?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나면 대석마을의 `제일강산`이란 글씨가 새겨진 바위도 `면암 최선생`이란 글씨가 새겨진 바위도 그냥 바위가 아니라 시대상황이 담긴 의미체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일찍이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조직원으로 일 할 때가 있었다. `생명을 죽이는 담배공장`이 원래의 건물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입혀 시민들에게 `예술과 활력을 주는 복합문화시설`로 탈바꿈한 청주의 사례를 통해 문화적 도시재생을 읽을 수 있었다.
최근 지역의 한 시의원 후보는 공약발표 기자회견을 통해 구시가지 일대 도시재생사업을 중요하게 부각시키며 양산읍성 일부를 복원하여 양산의 역사를 되살리고, 근대건축물인 축협창고를 복원하여 문화공간, 주민사랑방으로 이용하겠다는 계획을 이야기 하였다. 더욱이 지난해 시립박물관에서 진행된 기획특별전 <황산역>에서 발견된 사료를 통해 황산공원 일대 30리 대숲길 조성을 하여 양산의 역사적 위상을 드높이고, 문화적 환경 복원(재생)을 통해 지역의 관광과 일자리 창출까지 생각하고 있어 아주 훌륭한 문화적 도시재생 안이라 생각하며 그동안 양산에서 좀처럼 접해보지 못했던 문화정책 공약이라 참신하게 다가오기까지 한다.

둘 째, `계획과 과정에서 문화적`이어야 한다. 도시재생은 기능이 저하된 누군가의 삶터를 보다 활력 있고 균형 잡힌 공간으로 회복시키는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사업이지 새로운 것을 건설하는 물리적이고 기술적인 사업이 아니다. 주거환경 관리사업을 하면서 거금을 들여 주민 공용시설을 지었는데 사람이 없어 소멸의 위기를 겪는 농산어촌마을에 정작 필요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우리 대석마을도 시골이지만 나름 전국 공모, 지역 공모에서 갖가지 지원사업을 유치하여 물리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많이 개선되어왔다. 그렇지만, 마을의 한 가운에 있던 아이들의 놀이터를 없앴다. 물론 아이가 몇 안 되는 마을로 바뀌어왔지만, 그곳에 놀이터를 철거하고 체험장을 지어버렸다. 2013년부터 진행되어온 `상여소리와 행상`의 테마는 관혼상제 중 상례를 통해 마을 공동체를 이야기하자는 것인데 그 자체로서는 의미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이러니로 다가왔다.
아이 울음, 웃음소리 없이 떠나는 자를 향한 곡소리가 처량하게 울려 퍼지는 전통취락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이 둘 뿐인 우리동네에는 놀이터가 없어 몇 해 전 아빠표 놀이터를 만들어주었다. 그래도 함께 놀 친구들이 없어 두 남매만 자연과 벗 삼아 놀고 있다.
이런 농촌 뿐 아니라 구도심의 쇠퇴는 스스로의 쇠퇴도 있지만, 새로운 개발로 인한 상대적 쇠퇴가 가중되는 경향이 크다. 인구감소와 저성장 시대에 기존의 마을과 도시를 정비하여 촘촘히 채우는 대신 외연을 확장하기 위한 개발을 한다면 안은 더욱 비고 골병들 것이다. 양산 인구의 1/3 가량인 11만 명이 대형 아파트가 즐비하게 들어서있는 물금?증산 신도시에 집중되어 있고, 평균 연령 35.9세라는 것은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대석마을의 사례와 비교해볼 때 확연한 차이다. 문화적 소외를 느끼지 않도록 균형발전이 시급하다.
「젊은이가 돌아오는 마을」이란 후지나미 다쿠미(藤波 匠)의 책에서는 6장에서 콤팩트시티만이 능사가 아니다. 7장에서는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을 망각하지 말 것에 대해 당부하고 있다.
재생을 통해 건물이든, 환경이든, 여건이든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것은 지금 당장의 시간과 세대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와 미래를 향한 준비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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