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와 금관국(가야) 간의 '삽혈의식'에서 기원
최근 발간된 '취서사지'에 명칭유래 논문 실려

양산의 옛지명으로 그동안 많은 의문을 자아냈던 `삽량`의 명칭유래를 밝혀주는 연구논문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양산문화원이 발간한 `취서사지`에 따르면 `삽량주(★良州)`는 삼국사기 잡지에 따라 7세기경 신라 문무왕 당시 하주와 상주를 나누어 설치된 것인 만큼 그보다 앞선 5세기 눌지왕 때의 인물인 박제상이 삼국통일 후인 7세기에 설치되는 삽량주의 간(干)이었다는 것은 정황상 다소 문제가 있다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또 양산지역의 5세기 또는 그 이전 지명은 또 다른 국사서(國史書)인 `삼국유사`에 언급한 삽라군(★羅郡)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삽라군이라는 지명자체에 삽량주의 명칭유래가 숨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삽라군(★羅郡)`에서 `삽(★)`자는 `맹세를 다짐해 희생의 피를 마시다`라는 뜻으로 이는 고대 `삽혈의식(★血儀式)`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 삽혈의식에서 삽혈이란 두 사람이나 단체ㆍ국가가 무엇을 맹세할 때 제물을 잡아 그 피를 마시거나 그 과정을 통해 입술을 피로 물들인 후 서약을 꼭 지킨다는 다짐을 신에게 맹세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고대중국의 경우 국가적 차원에서 약속이나 중요사실에 대한 약속 시 행하여져 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삼국유사` 제2권 기이편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과 백제 의자왕의 장남인 부여 융(隆)이 서로 삽혈의식을 통해 맹세하는 과정이 실려 있기도 하다.

이에 따라 취서사지에서는 양산지역의 옛지명인 `삽라군`의 `삽`자가 삼국시대 혹은 통일신라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고귀하고 신성한 한자였을 것으로 추정했으며, 또한 `삽`자와 함께 `신라(新羅)의 국호인 `라(羅)`자를 함께 사용한 `삽라`라는 지역이 중요한 고을이었음을 유추하고 있다.

이와 함께 문제의 `삽혈의식`은 혼자가 아닌 반드시 상대방이 있어야 가능한 동맹의 한 형태라는 점을 고려할 때 결국 두개의 `라(羅)`가 삽혈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금관국의 지명이 `삼국사기`에서는 `가라(加羅)` 혹은 `남가라(南加羅)`로 표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삽혈의식을 행한 두개의 `라(羅)`는 바로 `신라(新羅)`와 `가라(加羅)`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또 이를 뒷받침하는 명칭이 `서로 무역을 금하지 말자`라는 의미인 `물금(勿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 김해와 부산, 양산 일부지역을 세력권을 두고 있던 금관국과 신라는 현재의 양산천을 두고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서로 무역을 통해 상호 발전하는 방안을 찾았을 것이라는 것.

특히 당시 중요 무역품이 철(鐵)이었고 당시 철은 고구려, 백제, 금관 3개국만이 가능한 상황이었던 만큼 신라는 적대국이었던 고구려, 백제가 아닌 금관국과 어떤 형태로든 동맹을 맺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 연구를 수행한 양산대학 엄원대 교수는 "삼국사기 잡지에 따르면 신라는 삼국통일 이후에 국호에 쓰이는 한자인 신(新)과 라(羅)가 들어가는 지명을 모두 새로운 지명으로 대체했다"며 "삽라군 역시 삼국통일 이후인 문무왕 때에 이르러 삽라군이 삽량주로 확대 개편되는 과정에서 한자가 바뀐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엄 교수는 "삽량주의 `삽`자의 유래를 두고 술에 피를 타 마셨기 때문이라는 일부 주민의 구전이 확인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삽량주의 명칭은 고대 삽혈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이 삽혈의식의 당사자는 신라와 금관국으로 알려진 가라인 것으로 여겨진다"고 덧붙였다.



※신문편집 프로그램 사정상 `삽`자의 한자표기가 인식되지 않아 ★로 표기됨을 양지해 주시기 바라며, 해당한자는 마실삽

저작권자 © 양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