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성 진
본지주필

관공서에서 발주해 준공을 앞둔 공공용 청사가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준공식에 시공회사가 돼지를 잡는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주민들 이름으로 감사패를 만들어 증정하기로 개발위원회에서 의논을 모았다.

비단 이런 경우 뿐이 아니라 마을의 숙원이던 교량을 가설한다든지, 도로를 개통한다든지 할 때 당연한 듯이 관계 공무원이나 시의원, 나아가 시공회사 대표에게까지 감사패나 공로패가 전달되곤 했다.

참으로 이상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공무원은 당연히 자기 할 일을 한 것이고 시의원은 예산 편성을 승인해 준 것 뿐이고, 시공회사는 돈을 받고 공사를 해 준 것 뿐이다.

그런데 무엇이 감사하고 공로가 많았다는 것인가. 담당 공무원이 주민들의 숙원사업 요구를 거절하지 않은데 대한 감사인가. 의원들이 예산을 삭감하지 않은 데 대한 고마움인가. 시공회사가 부실공사를 하지 않고 시방서대로 완공해 주어서 다행이라는 것인지 왠지 모를 불신사회의 그림자를 보는 것 같아 씁스레하다.

140년전 조선은 철종의 병사이후 12세에 불과한 고종이 즉위하면서 대원군의 섭정이 세도를 더해가던 시기였다. 대원군은 과감한 개혁조치를 단행하였는데 그 일환으로 토색주구의 탐관오리 척결, 무토궁방세의 철폐, 양반토호의 면세은전 철폐, 무명잡세 폐지, 진상제도 폐지 등 세제개혁이 단행되고 있었다 한다.

이 때 양산지방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백성들에게 저습지로 경작이 불가능한 메기들(지금의 신도시 현장)에 대해 과도한 세금이 부과되자 이를 견디다 못한 주민들이 죽기살기로 서울까지 올라가 규탄대회를 하면서 세금면제를 요청하는 과감한 행동을 펼친다.

이 사정을 소상히 파악한 당시 호위대장 정원용은 양산군수 심락정과 경상도 관찰사 서헌순의 건의를 받아 대원군의 윤허를 받았는데 "전토에 이미 경작을 못하는데 어찌 세를 수납하리요"하면서 영원히 면세 조치하라는 교지를 내리게 된다.

이러한 조정의 은전에 감복한 양산의 농민들이 기쁘고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세 기의 불망비를 세웠는데 그 비석들이 얼마전 향토사연구회에 의해 발굴 복원됐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에게는 세금을 낮춰주고 하는 일을 잘 되도록 북돋아 주는 것이 관에서 할 일이다.

탐관오리라 함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백성의 고혈을 짜내고 벼슬을 사고 파는가 하면 사적인 일에 부역을 시키는 썩어빠진 관리를 일컫는다. 그렇지 않고 청빈과 충절, 목민봉사로서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백성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오히려 수범이 되는 훌륭한 관리를 청백리라 하여 포상해 왔다.

최근들어 청년실업이 사회문제가 되고 고령화에 따라 조기 퇴직자들의 설자리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철밥통이라고 불리면서까지 대표적인 안정직업으로 군림해 오던 공무원사회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인근 울산광역시에서는 무사안일주의의 책임감 없는 공무원들에 대해 대기발령을 했다고 한다.

정보화사회의 급격한 발전에 힘입어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무처리가 빠르고 간편하게 바뀌어 가고 있음에도 관공서의 공무원의 숫자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처리가 지연돼 따져 물으면 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답변이 태반이다.

공무원의 가장 큰 직무는 대민관련 업무이다. 백성들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다. 그러나 늘어나는 것은 규제요 단속이다.

외국의 어느 지역에선가는 자치단체의 사무를 모두 민간회사에 맡겼더니 오히려 훨씬 적은 예산으로도 시민들의 불편불만없이 행정이 꾸려 나가지더라는 보도도 있었다.

오래전 미국 서부의 한 중소도시의 시장으로 당선된 전직 배우는 만성적자에 허덕이던 시청의 재정을 바로잡기 위해 특별한 업무 몇가지를 제외한 모든 행정서비스를 자원봉사자에 의존하는 정책을 펴면서 기존 공무원들의 숫자를 반 이하로 낮추었더니 몇년안에 재정적자가 해소됐다고 한다.

공무원들이 맡겨진 사무를 위민정신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처리하면서 주민의 편에 서서 시정을 펼친다면 아무리 많은 감사패를 찍어 바친다고 해도 아까울 것이 없다.

하지만 보신주의에 입각해서 법규의 탄력적이고 전향적인 운용에 몸을 사린다거나 6,70년대 사고방식으로 주민을 상대로 한 일처리에서 고압적인 자세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일부 공직자들은 과감하게 도태시켜 나가야 한다.

전제군주의 서슬이 시퍼런 왕조시대에도 백성의 아픈 실정을 헤아려 적극적인 자세로 민원을 해결한 당시 군수 등 고위공직자에 대한 공덕찬양비는 이 시대 공직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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