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덕목인 애민(愛民)사상 일깨우는 징표
백성들의 애절한 사연을 접한 호위영 대장 정원용이 산하 경남도관찰사 서헌순과 양산군수 심락정에게 실태를 파악케 하고 결국에는 향후 일체의 세금부과를 하지 말라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것이 조선 말기의 일이니 오랫동안 관리들의 폭거에 시달려 온 백성들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고, 또 이러한 면세조치를 계속 지켜 나가고자 하는 징표로서 세 관리의 공덕비를 건립했을 것이라는 게 양산향토사연구회의 짐작이다.
정진화 회장은 "원래 비석이 세워진 장소는 나름대로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자리에 정비 보존함이 세운 사람들의 뜻에 보답하는 길이다"면서 "후손들이 지금은 사라진 메기들의 애환을 담은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사료로서 보존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향토사연구회는 발굴한 세 비석의 비문을 필서해 문헌을 조사하고 번역을 통해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번에 복원한 공덕비는, 첫째 비는 호위대장영부사 정공휘원용 영세불망비(扈衛大將領府事 鄭公諱元容 永世不忘碑)고 두번째는 경상도관찰사 서상국헌순 휼민영세불망비(慶尙道觀察使 徐相國憲淳 恤民永世不忘碑), 세번째는 양산군수 심후낙정 애민영세불망비(梁山郡守 沈侯樂正 愛民永世不忘碑)이다. 모두가 병인(1866년) 9월에 세워졌다.
한편 140년 전의 공덕비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부분은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의 민원을 내 일처럼 생각해서 해결해 주는 애민사상이야말로 모든 공직자들의 기본 덕목이 되어야 한다는 불변의 진리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