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덕목인 애민(愛民)사상 일깨우는 징표

이번에 140년 전의 세 고위관리에 대한 공덕비가 발견돼 화제가 되고 있는 물금읍 가촌리 종고개는 지금은 신도시 개발공사로 사라져 버렸지만 호포에서 교리 앞까지 20리에 걸친 들판 메기들을 눈아래 굽어보던 지역이었다. 메기들은 신라초기에 양산땅으로 된 이후 고려, 조선을 거쳐 1920년대 일제에 의해 수리조합이 생겨 양산천 제방공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수천년동안 저습지로 버려진 땅이었다. 간혹 높은 지대를 골라 조생종을 뿌려 홍수기전에 약간의 수확을 얻는 경우도 있었지만 조그만 비에도 잠기는 통에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양산읍지초(1878년 간)에도 1854년 어사 박규수가 이곳 300결을 폐기지라 보고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곳에 1864년 중앙 조정의 호위영으로부터 과도한 세금이 부과되자 다음해 이를 억울하게 여긴 읍민들이 탈하장계(버려진 땅이라는 탄원서, 편집자 주)를 올리게 됐다.

백성들의 애절한 사연을 접한 호위영 대장 정원용이 산하 경남도관찰사 서헌순과 양산군수 심락정에게 실태를 파악케 하고 결국에는 향후 일체의 세금부과를 하지 말라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것이 조선 말기의 일이니 오랫동안 관리들의 폭거에 시달려 온 백성들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고, 또 이러한 면세조치를 계속 지켜 나가고자 하는 징표로서 세 관리의 공덕비를 건립했을 것이라는 게 양산향토사연구회의 짐작이다.

정진화 회장은 "원래 비석이 세워진 장소는 나름대로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자리에 정비 보존함이 세운 사람들의 뜻에 보답하는 길이다"면서 "후손들이 지금은 사라진 메기들의 애환을 담은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사료로서 보존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향토사연구회는 발굴한 세 비석의 비문을 필서해 문헌을 조사하고 번역을 통해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번에 복원한 공덕비는, 첫째 비는 호위대장영부사 정공휘원용 영세불망비(扈衛大將領府事 鄭公諱元容 永世不忘碑)고 두번째는 경상도관찰사 서상국헌순 휼민영세불망비(慶尙道觀察使 徐相國憲淳 恤民永世不忘碑), 세번째는 양산군수 심후낙정 애민영세불망비(梁山郡守 沈侯樂正 愛民永世不忘碑)이다. 모두가 병인(1866년) 9월에 세워졌다.

한편 140년 전의 공덕비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부분은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의 민원을 내 일처럼 생각해서 해결해 주는 애민사상이야말로 모든 공직자들의 기본 덕목이 되어야 한다는 불변의 진리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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