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무력, 허를 찔리다.

"아니 공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무력이 자신을 마중 나와 있는 구타리지와 물시지를 의아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뜻밖이었다.

"대왕께서 왕자님을 마중하라 하셨사옵니다."

"아바바마마께서?"

무력의 얼굴표정이 잠시 일그러졌다. 무력은 노질부의 목을 친 다음 날 도성으로 돌아오려 했지만 화경공주의 장계를 받아 본 국왕 구해가 도성으로 돌아오는 날짜는 일부러 늦추었다. 일단 사태파악과 수습이 우선 되어야했기 때문이다. 또한 노질부를 따르는 이들이 해코지를 해올 가능성도 있다 여기고 있었다. 무력은 조정내의 분위기가 그다지 좋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가라국 명장 중 한 사람인 장군 지수가 이끄는 50명의 황우군 군사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마중을 위해 또 다시 사군간의 수장을 비롯한 황우군 군사들을 보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하옵니다. 혹 불측한 무리들이 왕자님을 해할지도 모른다 하셨나이다."

"불측한 무리?"

구타리지의 말에 무력은 빙긋 웃었다. 불측한 무리라니? 벌건 대낮에 가라국 땅에서 자신을 해칠 불측한 무리가 누가 있을까 생각하니 재미있어진 것이다. 무력은 곧 곁에 머리를 숙인 채 서 있던 물시지를 쳐다봤다. 얼마 전 조정에서 신라의 이익을 서슴없이 대변하던 모습이 그려진 때문이다.

"공께서는 아바마마의 걱정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력이 물시지에게 넌지시 물었다.

"과한 걱정이시옵니다. 어찌 가라국 땅에서 왕자님을 해할 불측한 무리가 있을 수 있겠사옵니까."

마치 속내를 들킨 것처럼 속으로 뜨끔한 물시지가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지금 무력이 물은 것은 물시지가 자신을 해할 의사가 있냐는 것을 우회적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또한 국왕 구해가 언급한 불측한 무리가 평소 노질부로부터 뇌물을 받아먹었거나 혹은 그와 같이 일하면서 이득을 본 자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침에 묘한 글귀까지 받은 상태였다.

"공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니 불측한 무리는 없다고 여겨도 될 것 같소이다."

무력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내 무력의 말뜻을 파악한 구타리지와 장군 지수도 따라 크게 웃었다. 자신을 비꼬는 줄을 알면서도 물시지 역시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장차 신라에 큰 위험이 될 놈이지 않은가?'

물시지는 무력이 두려웠다. 가라국은 물론 신라 왕실에서도 함부로 어쩌지 못하던 노질부였다. 그런 자를 단 한마디로 목을 벤 남자. 그게 바로 무력이었다. 비록 아직 솜털이 채 가시지 않은 소년에 불과했지만 전장에 나아가 적장의 목을 벨만큼 무예가 뛰어나고, 평소 대왕 구해가 주변 외교전략에 대해 자문을 구할 정도로 지략이 풍부하며, 노질부의 목을 벨 정도로 과감한 결단력과 실천력을 지닌 그가 실로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아바마마께서는 화경공주님께서 올린 장계를 보셨습니까?"

무력이 선창가를 향해 걸어가며 구타리지에게 물었다. 아버지인 대왕 구해가 사건을 전말을 파악하고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가라국 조정에 포진하고 있는 친신라계 대신들의 음해성 상소와 반발을 어느 정도 무마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하옵니다."

"별 다른 하교는 없었습니까?"

"없었사옵니다. 다만 신을 보내 신속히 왕자님을 모시고 오라고만 하셨사옵니다. 지금 도성에서 기다리고 계시오니 속히 가시지요."

구타리지는 무력의 걸음을 재촉했다. 지금 도성 내에서 일고 있는 쓸데없는 억측을 잠재우려면 노질부의 목을 벤 당사자인 무력과 장군 지수의 상황설명이 필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신라와의 관계가 자칫 불편하게 꼬일 수 있었다.

"그러지요."

"왕자님, 그런데 잡았다는 간자는 어디에 있사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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