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도굴 역사는 파라오(고대 이집트 최고 통치자)의 통치와 맥을 같이 한다. 이집트 역사는 도굴꾼과 도굴을 막으려는 파라오의 숨바꼭질 같다. 파라오들은 자신이 곧 신과 같은 존재임을 보여주고 싶어 집권과 동시에 신전을 짓고 무덤을 만들기 시작한다. 파라오는 내세가 있음을 굳게 믿었고, 영생에 대비해 미라를 만들었다. 피라미드의 내부 구조를 미로와 함정으로 복잡하게 만들고, 묘실 입구 돌문을 굳게 봉인해 놓아도 도굴꾼의 손길은 피할 수 없었다. 도굴 혐의로 붙잡히면 혹독한 고문을 당했으며 죄를 자백한 뒤 사형에 처해졌다.

피라미드는 웅장하고 튼튼했지만 도굴꾼들에게는 노출된 표적이다. 도굴을 피하려 신왕국인 12왕조 무렵부터 피라미드 대신 룩소르 깊은 사막 계곡에 암반을 뚫고 비밀의 무덤을 만들기 시작했다. '왕가의 계곡'에서 발굴된 무덤은 현재 65개다. 발굴된 순서에 따라 KV(kings valley) 1∼65번까지 번호를 매겨 관리한다. 그 가운데 유일하게 '투탕카멘의 무덤'(KV62)만 도굴되지 않았다. 1922년 11월 4일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에 의해 완전한 형태로 발견돼 3200년 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투탕카멘은 이집트 왕 중 가장 어린 9세에 즉위해 약 10년간 재위하다 요절한 '비운의 소년 왕'이다. 투탕카멘 무덤 발굴 때 35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카이로 고고학 박물관 2층 투탕카멘 전시실에 들러 유물을 미리 봤다. 황금 마스크가 가장 유명하다. 황금 마스크는 11㎏ 순금으로 만들었다. 눈에는 석영, 눈동자엔 흑요석을 박아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왕가의 계곡은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사막이다. 지열과 함께 더위는 살인적이다. 매표소에서 왕가의 계곡까지는 미니 트레인을 타고 간다. '왕비의 계곡'에서 네페르타리 왕비와 티티 왕비, 아멘호테프 3세 왕자의 무덤 세 곳을 둘러봤다. 압권은 람세스 2세가 총애한 네페르타리 왕비 무덤으로 별도의 요금을 내야 한다. 계단을 내려가 만나는 전실과, 계단 아래 본실로 이루어진 2중 구조다. 무덤 안은 습하고 덥다. 왕비의 내세를 향한 여정과 다양한 신들에 인도되는 과정 등을 묘사한 벽화는 생생하고 컬러풀하여 지하 갤러리를 연상케 한다.

왕가의 계곡 부근 하트셉수트 장제전은 독창적이고 웅장한 3층의 테라스식 신전이다. 수많은 열주식 기둥은 고대 이집트 건축의 걸작으로 불릴 만큼 장엄하고 현대적이다. 하트셉수트는 이집트 최초 여성 파라오다. 재위 기간(BC1503∼1482) 시나이 반도와 수단까지 영토를 넓혀 신왕국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장제전은 파라오의 영혼에 제사를 지내는 신전으로 내세에서 파라오의 부활을 위해 지었다. 왕가의 계곡 들머리에 있는 '멤논의 거상'은 20m 높이의 거대한 조각상이다. 녹색의 경작지에서 황량한 사막으로 접어드는 경계에서 위용을 뽐내며 방문객들을 맞는다.

"당신은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영화 '버킷리스트'에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주인공들이 마지막 여행지인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서로에게 묻는다. 왕가의 계곡에서 확인한 것은 도굴꾼들이 파헤친 무덤 속 유적일 뿐, 영생은 헛되고 헛된 꿈일 뿐임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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