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오랫동안 차茶를 마셔왔다. 다인茶人까지는 아니지만, 차를 즐겨 마시는 이들은 차 맛만이 아니라 찻잔이나 다관 등 미관을 함께 즐긴다. 이를 다도茶道라고 칭한다. 필자는 서울 인사동과 가까이 살고 있어 종종 구경 삼아 그곳을 둘러본다. 그런데 말로만 듣던 계영배戒盈杯를 보았다. 물론 술 마실 때 마시는 잔이지만, 차를 마실 때도 쓰인다.

계영배의 원리는 이러하다. 계영배에 80% 정도 차를 부으면, 찻잔의 차가 그대로 있다. 그런데 계영배에 80% 이상의 차를 부으면, 찻물이 그대로 다 빠져버린다. 물론 계영배는 지나치게 과음하는 것을 막기 위한 상징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필자는 이 계영배를 통해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한다. 첫째는 부처님 가르침대로 말한다면, 무소유 사상이라고 본다. 무소유 사상이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돈이든 명예이든 그 어떤 욕심도 적당하게 부리고, 자신이 소유한 것들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무소유 사상이다. 이 계영배의 원리처럼 지나친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둘째는 계영배를 통해 절대 자만하지 말고, 겸손할 것을 상징한다고 본다. 19세기 말, 일본 메이지 시대에 대학의 한 유명한 교수가 있었다. 그 교수는 불교학에 뛰어났으며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많았다. 조금 아쉽다면, 교수는 지나친 자만감에 빠져 있었다. 교수는 난닌[南隱, 1868∼1912] 스님이 도道가 높다는 소리를 듣고, 그를 찾아갔다.

불교학 대가인 교수가 찾아오자, 난닌 스님은 직접 차를 대접하겠다며 차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그는 차방으로 들어가면서 교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가 불교학에 자신[스님]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군.' 교수는 차방에 들어가 스님과 마주 앉았다. 스님이 교수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따르는데, 찻물이 가득한데도 계속 차를 부어댔다. 교수가 순간적으로 외쳤다.

"스님, 잔이 넘칩니다."

그러자 스님이 태연하다는 듯 차관을 내려놓고 말했다.

"이 잔의 찻물처럼 그대는 불교학을 수양하기 위한 것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군요. 그대 마음에 가득 찬 지견知見을 비우지 않는다면, 내 어찌 그대 마음의 잔에 차를 채울 수 있겠소?"

필자는 스님들이나 재가 불교학자 등 여러 사람을 만난다. 글쎄? 그렇게 자만감이 심각한 이들을 만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필자에게 공부한 젊은 여학자가 있었는데, 자만감이 넘쳤다. 학문에 대한 자만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심각할 정도였다. 하여튼 그녀를 생각하면, 한 마디로 '안타깝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조선의 정조[在位 1776~1800], 치세 초기에 오른팔 역할을 했던 이가 홍국영(1748~1781)이다. 그런데 그에게 금위 대장ㆍ도승지 등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되었다. 이런 때, 조심하면서 겸손해야 했다. 홍국영은 정조의 신임만 믿고, 자신보다 나이로나 지위가 높은 사대부들에게도 지나치게 거만했다. 결국 홍국영은 정계에서 축출 당했고 재기코자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역사에서도 그에 대한 인물평이 좋은 편이 아니다. 이는 지나친 자만감 때문이다.

어느 원고에서도 언급했던 내용인데, 선사들은 자신의 호에 어리석음(愚)이나 어눌함(訥) 한 자를 사용한다. 자신이 자만감에 빠지지 않도록 호에 넣어서 자신이 그릇되지 않도록 경계했던 것이라고 본다. 늘 조심하자! 그리고 스스로 경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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