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무력, 허를 찔리다.

"이제 곧 왕자님을 뵈올 것이니 공은 말을 삼가시오."

"명심하겠사옵니다."

물시지가 다시 한 번 더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구타리지는 비로소 시선을 구포를 향해 접근 하고 있는 군선을 향해 돌렸다. 어느 새 엄지손가락으로 가려지던 군선의 돛이 이제는 손바닥을 펴도 다 가리지 못할 만큼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젠장! 조정에 신라 것들이 너무 많아.'

구타리지가 속으로 외쳤다. 그의 말처럼 가라국의 조정에는 신라출신 관리들이 너무 많았다. 좁은 영토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쇠자원을 바탕으로 성장한 가라국은 주변국들이 감히 넘보지 못할 만큼 강력한 제국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최근 200여 년 전부터 쇠의 생산이 어느 정도 보편화되면서 쇠의 왕국이라 불리던 가라국의 입지는 약화됐고, 그로인해 주변국 특히 백제국의 강력한 군사적 지원을 받아 온 보라국으로부터 끊임없는 침공을 받아왔다. 그 끝임 없는 전쟁으로 인해 가라국의 국력은 지속적으로 소모되어 왔고, 급기야는 신라의 군사적지원을 받아야만 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결국 신라와의 동맹이 중요해진 가라국은 신라조정과의 원활한 대화를 위해서 신라출신 관료들을 적극 등용했고, 그로 인해서 가라국의 친 신라화가 급격히 진행됐다.

독자적인 가라국의 문화적 색깔은 서서히 신라문화로 덧칠되어졌고, 철과 비단을 제외한 토기, 의류, 장신구 등 대부분의 생활물품들이 신라에서 수입되어졌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쌓은 상인이 등장하게 됐는데, 노질부도 그 중 하나였다. 신라 진골귀족 출신인 노질부는 신라조정을 등에 업고 신라와 가라국의 무역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특히 신라와 가라국 간의 쇠무역을 독점해 막대한 이윤을 챙겼다. 또한 상거래에 비상한 머리를 가진 그는 쇠의 생산에 있어서 필수품이라 할 수 있는 숯이 가라국에서 거의 생산되지 않는 사실을 파악하고는 신라에서 수입되는 숯 무역 역시 독점했다. 그를 통해 노질부는 가라국에서 철을 싸게 사서 신라와 왜에 비싸게 팔아 넘겼고, 신라내에서 숯을 싸게 매점매석해 가격을 올려 가라국에 비싸게 팔았다. 그 과정에서 노질부는 막대한 이윤을 챙겼다. 신라는 노질부를 통해 국가전략물자인 철을 싸게 들여와 빠르게 국력을 신장시켰기에 그에게 더욱더 힘을 실어줬다. 막대한 이윤과 강력한 신라의 후원을 바탕으로 노질부는 자신의 무역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가라국 조정에 자신의 심복을 심기 시작했고, 물시지는 노질부가 가라국 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용이하도록 신라 왕실과 조정을 움직여 심어 놓은 자중 하나였다. 덕분에 노질부는 암암리에 어느 새 가라국 조정의 통제를 뛰어 넘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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