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기차를 탔네
간이역엔 2월의 눈이 연착하듯 내리고
눈 덮인 침목은 침묵에 잠겨 있었네

창가의 여자는
구로동 봉제공장 다닌다는 동갑내기 여자는, 밤새
김 서린 유리창에 해독할 수 없는
상형 문자들을 박음질하고 있었네
설국의 비밀도 방랑의 리드 레일도 아닌
호오 불면 녹아내리는
그 난서亂書의 속내를 알 수 없으나, 나는
낯선 플랫폼과 옷깃을 세우며 머플러를 날리는
여자의 정거장을 그렸네
만삭의 열차가
삼랑진 철교 지나 덜컹거리며 몸을 틀 때
유리창 속 문자들이 꽃을 피웠네
역사의 불빛은
한 꺼풀씩 어둠을 벗기고
여자는 한 꺼풀의 어둠 밖으로 밀려갔네

그 겨울의 봄날은 몇 번이나 흩날렸을까
강물 속으로 다른 계절의 꽃잎이 흘러가네
다시, 스무 살 밤차를 타고
황산 베랑 길 스쳐 가는 물수제비 같은
부산행 완행열차를 타고
불현듯 원동역 내리고 싶네.

 

<월간 문학공간> 등단. <계간문예 작가회 이사> 한국문협 회원. 양산시인협회 회장. 계간문예 작가상 시집 <자작나무 숲에 들다>. 양산신문<문화 기행>, <지상 시화전>, 양산시보<詩時콜콜>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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