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무력, 허를 찔리다.

자신들의 물건을 챙겨 피하던 사람들이 갑작스레 구포에 모습을 나타난 군사들을 쳐다보며 불안한 표정을 한 채 수군댔다. 그도 그럴 것이 구포에 대규모의 군사가 예고도 없이 나타나는 경우는 보라국이 황산강 서안에 위치한 진례성으로 쳐들어 왔을 때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렀거라!"

곧 한 무리의 군사들이 지나간 뒤에 은은한 광택이 비치는 자색 비단과 비색 비단으로 만든 포(袍)를 각각 걸치고 관원들이 쓰는 관모인 책(?)을 쓴 관리 두 사람이 나란히 말을 타고 나타났다. 그들이 걸친 포의 소매 끝과 옷자락 끝에는 화려한 금빛 무늬가 찍힌 검은색 비단 띠가 덧붙여져 있어 두 사람의 신분이 고위직임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쉽게 알 수 있게 하고 있었다.

"멈춰라!"

행렬이 선창가 끝에 위치한 군선(軍船) 접안 시설에 다다르자 자색 비단 포를 걸친 이가 행렬의 선두에 선 장수를 향해 외쳤다. 그는 가라국의 병무(兵務)를 총괄하는 사군간(司軍干)의 수장인 이간(伊干) 구타리지(仇陀利知)였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옵니다."

비색 비단 포를 입은 아간(阿干) 물시지(勿尸只)가 말을 몰아 구타리지 곁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물시지의 말처럼 한 아름이 넘는 통나무를 박아 세운 기둥에다 널빤지를 깔아 만든 접안 시설의 좌우에는 크고 작은 어선들과 돛을 내리고 정박 중인 텅 빈 수십 척의 군선들만 보일 뿐 이제 막 입항한 듯 보이는 군선은 보이지 않았다.

"곧 도착하겠지요."

구타리지가 말에서 내리면서 말했다. 물시지도 따라서 내려섰다. 두 사람은 황산강 중심을 향해 길게 뻗어 있는 접안 시설 위를 걸어갔다. 위에 깔린 낡은 널빤지들이 두 사람이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삐걱댔다. 두 사람은 접안시설 끝부분에서 걸음을 멈췄다. 드넓은 황산강 하구가 한 눈에 들어오면서 항구의 역한 비린내와 썩은 냄새가 싹 가시면서 강바람의 찬 기운이 두 사람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두 사람은 머리에 쓰고 있던 책이 벗겨질까 서둘러 끈을 더욱 당겨 고쳐 멨다. 곧 멀리 구포를 향해 접근 중인 군선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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