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2024년 갑진년(甲辰年)의 첫 보름달이 뜨는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이다. 어릴적 정월 대보름에 오곡 찰밥에 여러 가지 나물을 먹고 동네 사람들과 달집을 태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월 대보름에 찹쌀·차조·붉은팥·찰수수·검은콩 등 다섯가지 곡식으로 지은 오곡 찰밥에 아홉 가지 나물을 먹는 것은, 농경시대 선조들이 한 해의 농사가 잘되길 바라는 간절한 바램에서 유래된 것이다.

특히 다른 성(姓)을 가진 집의 밥을 먹어야 그해 운(運)이 좋다고 하여, 이웃에 사는 장씨와 손씨 집에서 오곡밥을 가져와 먹었던 기억도 있지만, 이는 정월 대보름을 중요하게 여긴 어른들이 이웃과의 화합을 위한 방책이 아닐까 싶다.

어른들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며, 좋은 소식만 많이 들어라는 의미로 아침에 귀밝이 술을 마시고, 아이들은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하고 이(齒)를 튼튼하게 한다며 알밤이나 땅콩 등을 나이 숫자 만큼 깨물어 먹는 부럼을 했던 기억도 있다. 요즘은 마트 등에서 여럿 종류의 건과류를 담은 정월 대보름 부럼 선물 센트로 내 놓고 있다.

정월 대보름 아침에 먹는 오곡 찰밥과 아홉 가지 묵은 나물은 비타민, 식이섬유, 미네랄 성분 등 다양한 영양소를 고루 갖춰 건강에 도움이 되고, 장 활동을 도와 배변 활동에 좋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 권장하였던 것 같은데, 요즘은 다이어트 식품으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또 지신밟기로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는 풍물패를 따라 다니기도 하고, 청년들을 따라 친구들과 천성산 미타암으로 달맞이를 갔다. 달맞이를 갈 때 한 해의 액운을 물리친다며 할머니께서 팔에 붉은색 실을 감아주며 산에 버리고 오라고 하셨던 기억도 있다.

집 앞 논에 동네 청·장년들이 소나무와 대나무 등으로 크고 둥글게 지은 달집 문에는 마을에서 선정한 집에서 술과 떡, 과일 등으로 제사상을 차려 고사(告祀))를 지낸 뒤 보름 달이 뜨는 시간에 맞춰 달집을 태우며 소망을 빌었고, 어른들은 달이 뜨는 모양세를 보고 그 해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기도 했다.

또 한 해가 시작되는 첫 보름은 매우 길한 징조로 여겨 금지했던 것도 있었다. 이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간에 찡그린 인상이나 거친 말을 하지 말고, 친구들간에도 말다툼 이나 욕설을 하지 말라고 당부 하셨다.

어른들은 일년 중 가장 좋은 운(運)을 가져 오는 날이라며, 일년 내내 서로 말도 건네지 않았던 집과 오곡 찰밥을 나눠 먹으며 화해의 손을 내밀어 함께 풍물놀이 등으로 정월 대보름 축제를 즐겼다.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풍물패는 꿩깃털과 토끼털을 담은 망태기에 나무로 만든 가짜 총을 던 포수를 앞 세워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지신밟기를 했다.

풍물패는 집안을 한바뀌 돌면서 지신지신지신아 주산지신을 울리자, 천지형황생긴 이래 일월성신 밝았다. 나쁜 운(運)은 물알로 좋은 운(運)은 이리로 라며, 집안의 안녕을 위한 굿장다리판을 펼쳤다. 한바탕 굿장다리판을 벌인 풍물패는 집 주인이 한가득 차린 술상 앞에서 또 한 차례 신굿판을 벌인 뒤 약간의 돈을 받아갔지만, 이 돈은 마을공동기금으로 사용되었다.

절에서는 정초 기도로 가족의 건강과 집안의 안녕을 빌었고, 스님들은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받아 행복하기를 빌며 주진 저수지에서 마을 사람들 함께 방생법회를 벌이던 모습이 생생하다.

예부터 정월 대보름에 먹는 오곡 찰밥이나 아홉 가지 묵은 나물 비빔밥은 겨울철에 부족했던 영양소를 보완한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처럼 정원 대보름은 둥근 달을 보며 집안의 안녕과 건강을 기원함과 동시 각자가 염원하는 소원이 성취되기를 기원하는 날이다.

또 정월 대보름은 예부터 모든 복(福)과 운(運)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큰 복은 조상 복이라고 했다. 정월 대보름이 바로 조상 복을 얻는 날이다. 이번 정월 대보름에 조상 복 가득 받으시고, 청용이 승천하는 기운으로 각자가 염원하는 소원 성취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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