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고구려 태왕(太王) 흥안의 약속

"이번 일에 대한 전권을 대대로에게 일임할 터이니, 알아서 처결해주시오."

"네, 폐하. 성심을 다해 받들어 이번에는 반드시 한수를 넘겠나이다."

태왕 흥안은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혼인도 미룬 채 기다려왔던 한주를 품에 안은 듯 흡족한 표정으로 이번 남정에 대한 모든 병권을 대대로인 연자유에게 일임했다.

"그리고 이번 원정에는 짐이 친히 참가할 것이요."

"폐하께서 직접이요?"

태왕 흥안의 말에 깜짝 놀란 연자유가 되물었다.

"그렇소이다."

연자유는 말리고 싶었지만 태왕 흥안의 얼굴에 너무도 결연한 의지가 엿보여 그만 두었다. 무려 10여년을 기다려온 정혼녀와의 만남이었다. 연자유는 그 만남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그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그럼 그리 알고 준비토록 하겠나이다."

"대대로만 믿겠소이다."

"네, 폐하! 반드시 기대에 부응토록 하겠나이다."

태왕 흥안은 흡족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에 폐하. 백제 명농에게 우리가 화친을 원한다는 뜻을 내비쳐야 하옵니다."

연자유가 태왕 흥안에게 건의했다. 백제 명농을 완전히 안심시키기 위한 미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화친하자는 친서(親書)를 보내야 한다는 말이요?"

"아니옵니다. 지난 번에 포로로 붙잡은 백제군 500명을 돌려보내면 될 것이옵니다."

"포로를 돌려보낸다?"

"그러하옵니다. 마침 3달 뒤에 백제의 태자가 혼례를 치른다 하니 돌려보낼 명분도 그럴싸하옵니다. 그러면 명농은 분명히 우리가 위나라의 침입에 대비해 자신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포로를 보낸 줄 알고 우리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거둘 것이옵니다."

"알겠소이다. 대대로께서 알아 시행토록 하시오."

연자유의 의견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태왕 흥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욕살께서는 지금 즉시 남평양성(南平壤城)으로 돌아가 칠중성(七重城)의 군사들을 남평양성으로 보내 북쪽으로 차송하는 것처럼 꾸미시오. 그런 연후에 내가 동부의 군사들과 함께 남평양성에 입성하면 함께 합류하여 그대로 야음을 틈타 남하토록 합시다."

칠중성은 고구려 남진의 전진기지였다. 고구려의 침입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백제의 모든 눈과 귀가 쏠려 있는 곳이기도 했다. 따라서 칠중성의 군사들이 북쪽으로 향한다면 명농이 더욱 안심하고 남정을 떠날 것이라 연자유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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