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 떠나기 위해 챙 넓은 모자를 샀다
그을린 얼굴은 이미 오래여서
하늘을 가린다고 나아지지 않겠지만
챙 넓은 모자가 고마운 일은 있다
된땅을 파다 보면 목덜미 따끔거려
자주 허리를 펴는 불편함도 덜고
땡볕에 부신 눈을 숨기기도 좋다
땅 파는 일이 부끄러운 노동은 아닐진대
그래도 넓은 챙 아래 코끝을 숨긴다
쳐다보는 시선 감출 수는 없지만
실직으로 비굴해진 눈빛이 숨겨지고
보기 싫은 얼굴 애써 피하지 않아도 좋다
먼 거야할 길에 익숙해지기 위해
구덩이 속으로 펴지 못한 몸을
자꾸만 낮아지는 길에 따라 붙였다
챙 넓은 모자는 어느 덧 뉘엿뉘엿
낯익은 풍경 속으로 물입해 갔다
강영환 시인
ysilbo@ys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