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마다 '트렌드'가 있다. '트렌드'는 '사회적 추세로서의 방향'이다. 따라서 시대마다 트렌드가 달라진다. 2024년에도 어김없이 사회적 추세로서 방향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트렌드'가 서울대 김난도 교수를 위시한 연구원들에 의해 「트렌드코리아 2024」라는 책자로 발표됐다.

10개의 키워드로 제시된 '청룡의 해' 트렌드 가운데 하나로 '리퀴드폴리탄(Elast City, Liquidpolitan)'이 제시되었다. 광역 교통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유목적 라이프스타일을 구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지역 간 이동을 하며 여러 생활권을 누리는 '플로팅 세대'들이 증가함에 따라 도시는 이제 고정된 공간이 아닌 이동하고 흐르는 유연한 모습을 보인다는 의미다. 따라서 새로운 도시의 변화 양상으로 소개되는 '리퀴드 폴리탄'은 인구 소멸 도시를 살리는 것에서 나아가 다양성과 창의성 측면에서 성장판이 열린 도시를 만들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유연함'을 뜻하는 '엘라스트(elast)'나 '리퀴드(liquid)'나 모두 도시를 의미하는 '시티'와 '폴리스(Polis)'라는 단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새로운 단어들이다. 뜻을 풀면 '유연한 도시' 또는 '유연한 도시계획'이다.

개념상 '유연하다'는 것은 '딱딱하다' 또는 '유연하지 않다'의 반대 의미다. 그리고 '유연한 도시' 또는 '유연한 도시계획'이라고 풀이 된다는 것은 이전까지는 유연하지 못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 지금까지 '도시계획(都市計劃, urban planning)'이라고 하는 법적 기준과 근거는 그야말로 '보수적'이다. 각종 개발 행위의 법적 테두리이자 기준이다 보니 그렇다. 그렇지 않고 특례나 예외적인 규정이 많으면 많을수록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사항이나 상황들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근간인 도시계획법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최근 어떤 변화가 있기에 보수적인 도시계획이 아닌, 유연한 도시계획이 2024년의 새로운 트렌드로 언급되는 것일까.

우리 주변을 들러보면 바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 생활의 대부분은 도시지역에서 이루어진다. 학교를 다니고 생업을 위해 일을 하고 들어와 휴식을 취하는 집들 대부분이 도시지역에 있다. 법적인 의미로서의 도시지역이 아닌 시골의 군지역이라도 내용상 '도시지역'이다. 우리나라 국민 10명중 9명 이상은 도시지역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법상 구분되는 용도지역상 도시지역은 우리나라 전체 면적의 16.7%에 불과하지만 총인구 5164만명 중 4740명(91.8%)이 도시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그런 도시지역이 지금 어떠한가? 우리나라 전체 국토면적의 11.8%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50.2%가 몰려 있는 지역이 있다. 바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서울·인천·경기)이다.

반면에 수도권이외 지역 인 지방은 인구감소로 지방소멸이라는 단어를 지역 앞에 수식어처럼 붙이고 있다. 일자리 찾아 매년 부산 청년 1만명이 수도권으로 이탈한다. '이러다가 지방 다 없어진다'는 이야기는 그냥 나오는 볼멘소리가 아니다.

인구가 서울·수도권으로 몰리다 보니 2023년 1월부터 시행된 '인구감소지역지원 특별법'이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행정안전부가 인구감소가 심각한 지역 85곳을 선정했다. 부산에서는 원도심격인 동구, 서구, 영도구가 포함된다. 지역을 이탈한 인구를 대신할 생활인구 개념이 도입됐다. 주민등록상의 상주인구 개념만으로는 인구감소 지역을 살릴 수 없다는 마지막 출구인 셈이다. 강릉 양양이 바닷가 해변 1km를 서핑할 수 있는 '서피비치'를 만들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획을 만든 것처럼 지역콘텐츠를 기반으로 지역 활력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다.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이 부산 송정에서 한 달에 최소 한번 3시간 이상 체류할 경우 부산 입장에서는 생활인구가 된다는 의미다. 35층 높이 제한을 풀어 지역에 맞게 유연하게 층수를 조정하겠다는 서울시 오세훈 시장의 '유연한 도시계획'역시 리퀴드폴리탄 개념의 일환이다. 이 경우 도시차원에서는 부동산가치가 높은 '복합개발(MXD, mixed use development)'을 유도할 수 있다. 인구가 감소하는 지방의 경우 원도심을 중심으로 한 '콤팩트 개발'을 위한 시도가 가능해 질 수 있다. 지방 도시가 도시경쟁력을 끌어올려 경쟁력 있는 도시가 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야말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고민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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