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바뀌자마자 육체노동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계속 글을 쓰며 정신노동의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고, 연구소 개소 15년이 지나면서 주변 정리를 해야겠기에 시작된 육체노동의 현장이다.

뭐라도 일을 벌이면 몸만 고된 것이 아니라 돈도 고달프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아무 일도 벌이지 않는 게 오히려 손실을 더 줄일 수 있지 않나 생각도 해본다. 물가가 올랐다는 것을 식당이나 카페에서, 또는 마트의 계산대에서 종종 느꼈지만 이번에 공사를 벌이며 각종 자재 값은 물론 인건비가 생각 외로 너무 높다는 사실에 물가가 많이 올랐음을 절감할 수 있었다.

최하의 인건비가 일급 20만원이고, 보통은 30만원을 넘어 45만원의 인건비를 제시하는 분야도 있었다. 배관작업과 경계석 잇는 작업은 인부 구하기도 어려워 직접 작업을 해야만 했었다. 해보면 몸이 고되기는 해도 기술자들의 실력과 내 실력이 오십보백보다. 또 직접 내가 했다는 자부심을 느끼며 더 애착을 갖게 된다.

연초에 한 행정기관으로부터 강의 의뢰를 받고 담당자를 만나고 돌아온 이후로 분노는 쉬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행정의 속성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한때 문화행정의 현장에서 각종 문화프로그램을 기획했던 나로서는 그 면면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

그렇지만 6강의 지역문화를 다루는 아카데미의 강의 시급이 3~4만원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회의감과 함께 분노가 치밀었고, 육체노동을 이어가는 중에도 세상의 물정과 행정의 괴리에 대해서 탄식이 멈추질 않는다. 다시 전화를 걸어 그 강의비로는 납득하기 어려우니 차라리 교육기부를 하겠다고 마음을 전달하고 답신을 기다렸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주어진 예산이 있으니 그리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고, 결국 강의는 무산되었다.

신식 건물에 좋은 기자재들과 수많은 신간 책이 빼곡 채워져 있는 '지식과 지혜를 배우는 OO'를 상징하는 이곳의 건립비가 350억 넘는다. 내게 요청이 왔던 아카데미의 1년 운영비가 2천만 원 이란다. 도저히 이해불가다. 껍데기에는 수백억의 예산이 투입되고 알맹이를 채워가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이런 금액이 책정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비단 나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기에 간과할 수 없다. 기천만원의 예산의 범위에서 충당할 것이기에 각 프로그램의 강사들에게 제시할 강의비 역시 최저, 최악의 금액일 것이다.

주어진 예산 범위가 그러하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이야기 할 것이다. 다른 행정의 영역과 비교하여 평균 수치의 금액이다 이야기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예산은 누가 책정했는가? 그들이다. 그들의 잣대인 것이다. 민간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강의비는 그렇게 낮지 않는데 왜 행정과 교육기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은 사람의 노동에 대해서 잣대가 이렇게 박할까? 그들도 그런 박한 인건비를 챙겨갈까?

각종 미디어를 통해 익히 알려진 몇 몇 인사들을 초청하여 지불하는 대가는 상당금액일 것이다. 지역의 활동가들과 그 기량과 인기에는 다소 차이가 있을지라도 어떤 행위를 하기 위한 학습과 준비에 공들인 에너지 역시 오십보백보일 것이다. 자본주의이기에 그 인기와 대가의 책정은 다르다 하더라도 투자한 노동에 비해 정당한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인정이 따라야 하지 않을까? 익히 알려진 미디어나 행정에서 진행하기에 공신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인정하기에 가지는 공신력이어야 할 것이다.

16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소신, 실천, 봉사의 이념으로 시작된 연구소의 활동을 해오는 동안 초창기에는 교육기부를 수년간 진행해왔지만, 오히려 그런 행위들은 허울 뿐, 행정의 치적을 만들어주는데 일조를 했고, 나의 가치를 나 스스로 떨어트리는 결과였다는 사실에 나는 교육기부를 그만두었었다. 그리고 강의 요청이 있을 때 본질의 몰이해에는 나서질 않았다. 돈을 밝히는 옹졸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노동의 가치를 몰라주기 때문이다. 그 가치를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제시하는 강의는 저비용으로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지만, 내가 추구하는 방향은 제대로 된 노동의 가치에 대한 책정 속에 많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진정으로 강의를 듣고 공감하며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 지향점이 다르기에 나는 응하지 않는 것이다.

'잉여(剩餘)'란 말을 떠올려본다. 원래의 의미는 '남아도는'이지만, 인터넷에서는 '쓸모없는'이라는 의미의 부정적인 뉘앙스로 통용되는 말이다.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임금 이상으로 생산하는 고부가가치를 잉여가치라 한단다. 달리 말하면 효용성이겠는데 행정기관에서 내게 요청해온 것이 이 잉여가치였을까? 나는 잉여인간인 것일까?

사람의 노동을 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부재가 일을 하는 내내 몸뿐만 아니라 마음을 더 고되게 만들고 있다. 노동의 가치는 무엇일까? 田
 

저작권자 © 양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