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고구려 태왕(太王) 흥안의 약속

고운수가 계속되는 연자유의 의문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투로 확실한 어조로 답했다. 그럼에도 연자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마군은 기수뿐만이 아니라 말까지 비늘갑옷으로 무장시킨 중장기병, 즉 개마무사를 일컬었다. 이 개마무사의 기수는 몸통은 물론이고 손목과 발목까지 덮어 보호해주는 비늘갑옷을 착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철제투구, 목가리개, 발에는 강철 침이 박힌 신발까지 신어 얼굴과 손을 제외하고는 노출되는 부위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말까지 머리에는 두꺼운 철판으로 만든 안면갑을 씌우고, 거의 발목까지 가려주는 비늘갑옷을 입혔다. 그런 만큼 방어력과 생존력이 뛰어나 전장에서 밀집대형을 이뤄 적진을 돌파하거나 적의 밀집대형을 파괴하는 등의 전술에 활용되고 있었다. 한마디로 개마무사는 전장에서 운용되는 전술의 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구려나 백제 모두 현재처럼 제련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무장시키는 데에 1기당 대략 60kg~70kg 가량의 철이 소요되는 개마무사를 대량으로 보유 또는 운용할 수 없는 처지였다. 만약 개마무사 1만 명을 무장시킨다고 봤을 때 소요되는 철의 양은 대략 600톤에서 700톤가량이 필요했고, 여기에 예비량까지 감안한다면 1천 톤을 상회하는 철이 소요되는 셈이었다. 과거 삼국시대에는 철 1톤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숯 5톤이 필요했고, 숯 5톤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목재 50톤이 필요했다. 따라서 1천 톤이라는 철을 생산하기 위해서 양질의 목재가 5만 톤이나 소요되었다. 이는 제련기술이 원시적인 수준에 머물던 고구려나 백제로서는 어마어마한 부담이었다. 연자유의 머릿속에는 지금 현재 고구려 내의 개마무사의 수가 2만 명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런데 어라하 명농은 그런 소중한 개마무사를 일개 제후국이나 다름없는 동맹국인 보라국을 도와주기 위해서 3천기나 빼내 차송한다고 하니 연자유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저작권자 © 양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