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구정(舊正)이 1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필자가 자라던 시절, 설날하면 떠오르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것과 뿔뿔히 흩어졌던 친지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로 밤을 새웠던 기억이 난다.

또 새옷에 새양말 새신발을 싣어 보는 기대림에 설래고, 쌀튀밥이나 검정콩 또는 깨를 볶아 미리 준비해 둔 조청으로 섞어 비닐 위에 넓적하게 펼처 놓고 나무판을 덮어 발로 밟아 강정을 만들고 조청에 가래떡을 찍어 먹었던 꿀 맛이 생생하다.

설날 아침에 삽짝(대문)을 활짝 열어두고 친지들과 마루에 길게 줄을 서 차례를 지내면 발가락이 시려 발을 동동 굴리기도 했지만, 차례가 끝나면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가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라며 세배를 드렸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형제간 우애 있게 잘 지내고, 공부 잘하고, 건강하게 잘 커라"는 덕담과 함께 몇 천원에 불과한 새뱃돈을 받고 때로는 꾸지람을 듣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때가 참 좋았던 것 같다.

특히 우리 주진골은 김해김씨(金海金氏) 집성촌이라 100여 가구가 친척이였지만, 지금은 도시화로 발전하는 과정으로 집성촌이란 공동체도 사라지고 옛날처럼 흰 두루막을 입고 차례를 지내려 다니는 모습은 아예 찾아 볼 수가 없다.

지금에 와서 옛 추억의 설날을 재현 할 수는 없겠지만, 2024년 갑진년(甲辰年) 새해, 첫 번째 맞는 우리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에 즈음해 모두에게 건강과 발복(發福)을 기원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모두가 건강하고 소원 성취하시기를 바란다.

예부터 우리 선조들은 설날에 차례를 지낸 뒤 성묘를 하고 친지뿐만 아니라,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 세배를 드리고 음식을 나눠 먹은 것은 참으로 정겹고 아름다운 우리 고유의 풍속이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에도 조상의 공덕을 기리고 조상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정성을 다 했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추석이나 설날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은행계좌로 세뱃돈을 보내고, 온라인으로 제사를 지내고 성묘하는 시대가 되다보니 설 명절이 정서적으로 이질적인 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코로나로 팬테믹으로 대가족 모임이 어려워지면서 명절 때 마다 고향에 가야했던 귀향면제가 정착되면서 이제는 설 귀향 보다는 외국 여행을 떠나는 설 풍경으로 바뀐 것 같아 씁스레하다.

인천공항과 김해공항에서는 벌써 설 연휴 첫날 수만여 명이 출국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우리의 전통을 소흘히 여기는 세태(世態)가 됐지만, 부모님을 공경하는 효도는 우리 인류의 기본 덕목임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선조들은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보릿고개를 겪는 그 어려운 시절에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3년간 시묘(侍墓) 살이를 하고, 49제를 지낸 뒤 탈상(脫喪)을 하거나 3년간 끼니 때 마다 상식(上食)을 올리는 것을 봤다.

어린 마음에 돌아가신 분이 드시지도 못하는 음식을 왜 끼니 때마다 차리나 의아해 했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야 자식이 돌아가신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는 뜻을 알았다.

부모님 은혜는 태산과 같고, 바다와 같다는 말(言)과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진리는 바뀌지 않는다는 말처럼 '뿌리가 없는 나무가 있으리 마무하다. 즉 부모님 없이 지금에 우리가 있을리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새해 첫날을 신정(新正)이나 원단(元旦) 또는 원일(元日)이라고 하지만, 동양학에서는 구정(舊正)을 한해의 시작이라고 한다. 한해의 시작인 이번 설날에는 "지금에 우리를 있게 해주신 부모님께 효도하는 자손이 되기를 바란다".

또 지난 1월 1일 위대한 결심을 했으나 아직까지 실행에 옮기지 못한 사람들은 심기일전하여 실행에 옮기는 설날이 되기를 바라며, 설날 아침 양산신문 구독자 모두에게 신령스러운 청룡의 기운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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