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북방의 범, 고구려를 불러들이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백제에게 왜군은 비상시 전력이옵니다. 명농은 우리 보라국과 포상연합국만으로는 양동성을 점령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할 공산이 크옵니다. 따라서 승산이 없는 전투에 괜스레 왜군을 투입했다가 큰 손실을 입게 된다면 고구려 흥안의 남침을 저지하지 못했을 시에 투입할 수 있는 비상전력을 잃는 꼴이옵니다. 그러니 백제 명농은 양동성을 점령하기 전에는 함부로 왜군을 움직이지 않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딴은 그렇군."

아진왕은 만면에 웃음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백제의 파발을 손을 볼 필요가 있게구려. 그래야 고구려 침공 소식이 우리가 원하는 때에 명농에게 전달될 테니 말이요."

아진왕이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질정지는 이제야 아진왕이 말귀를 알아듣는 다고 생각했다. 백제의 남부권 최대의 군사기지는 바로 교룡성이었다. 질정지는 웅진에서 교룡성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군사를 매복시켜 두었다가 백제 웅진성에서 오는 파발로부터 서신을 가로채 소식이 전해지는 시기에 맞춰 원하는 때에 교룡성에 전해주기만 한다면 일은 거의 성사될 것으로 확신했다.

"그나저나 고구려의 욕살 고운수에게 어떻게 소식을 전할 것이요?"

표정이 한결 가벼워진 아진왕이 다소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고운수의 측근 중 믿을 만한 사람을 여럿 알고 있사옵니다. 그들에게 적당한 금은보화와 함께 소신이 쓴 밀서 한 통을 보내면 될 것이옵니다."

질정지가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자신 있게 말했다.

"좋소이다. 그와 관련한 일은 전적으로 아도간께서 은밀히 직접 처리해 주시오."

"네, 폐하. 그럼 소신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질정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춘 후 조심스럽게 내전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은 아진왕은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흉금에 쌓여 있던 고민들을 비로소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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