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북방의 범, 고구려를 불러들이다.

아진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제는 자신들의 해외 식민지인 왜의 군사를 한반도와 왜의 중간 사이에 위치한 임나, 즉 대마도에 일정수준 이상 배치해두고 있었다. 대마도는 신라는 지척에 위치하고 있어 신라 견제를 위해서도 필요할 뿐만이 아니라 백제와도 지척이었다. 따라서 임나는 유사시 한반도의 본국인 백제지원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왜의 전진기지였다.

"그리고 만약 고구려군이 혈성을 점령하지 못하고 백제군에 패해 그대로 돌아간다면 고구려는 당분간 백제를 밀어붙이지 못할 것이옵니다. 그렇게 되면 대고구려에 대해 자신감을 얻은 명농은 본격적으로 가라국을 도모하려 들것이고, 그렇게 되면 가라국은 오래지 않아 백제의 수중으로 떨어질 것이옵고, 가라국으로부터 쇠를 지원 받지 못한 신라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그렇게 되고 보면 보라국 역시 백제의 제후국 신제를 면키 어려울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고구려가 언제 침공하는 것이 좋고, 또 명농은 그 소식을 언제 들어야 좋을 지 말해보오."

"백제의 갑마군이 가라국의 갑마군을 족친 직후가 가장 좋을 것이옵니다."

"그렇지! 가라국의 갑마군만 없다면야 해볼 만하지. 암 그렇고말고."

아진왕이 손으로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가라국이 보유한 갑마군, 즉 개마무사는 중갑기병 및 경갑기병을 합쳐 도합 1만 가량 되었다. 이들 중 절반에 못 미치는 4천기 정도가 황산강 서안에 배치되어 있었다. 이에 비해 보라국과 포상연합국의 개마무사는 3천기가 채 되질 못했다. 게다가 갑옷의 무장상태와 기병운용 전술 및 전략 역시 가라국에 비해 현저히 낙후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백제의 명농이 가라국의 개마무사들만 꺾어 준다면 승산이 보라국에 충분히 있었다. 갑보병(甲步兵) 세력은 비록 갑옷의 질은 떨어지지만 보라국이 가라국에 비해 숫적으로 분명한 우세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성전 역시 자신 있었다.

"백제 명농은 양동성 함락 직전에 고구려 침공 소식을 듣게 된다면 허둥지둥 짐을 쌀 것이옵니다."

"대신 왜군을 끌어들이지 않을까?"

명농이 자신이 우려하고 있는 바를 조심스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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