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북방의 범, 고구려를 불러들이다.

문자명왕은 선대왕인 장수태왕이 대규모 군사를 동원해 어렵사리 백제를 몰아내고 차지한 한강유역을 다시 되찾고자 고심했다. 그때 문자명왕은 태자인 흥안을 한강유역의 주요거점인 백제의 개백현으로 세작으로 보내 군사정보를 수집토록 하였다. 그런데 상인으로 위장해 개백현 일대의 주요 군사시설을 정탐하던 흥안이 개백현의 고봉산 일대의 백제군의 동향을 살피던 중에 그만 순찰 중이던 백제군에게 발각되어 쫓기게 되었다. 다급해진 흥안은 급히 민가로 뛰어들어 위험을 피하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백제군이 점점 포위망을 좁혀 오자, 흥안은 무턱대고 지역 호족의 집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그때 불이 꺼진 방으로 급히 피신하였다.

"그때 불이 꺼진 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처자가 기지를 발휘해 흥안을 위기에서 구해주었는데, 그 처자는 개백현 호족의 외동딸인 한주였다고 합니다. 비록 상황이 좋지는 못했지만 한주는 준수한 외모에 그 기상이 남달랐던 흥안을 마음에 품게 되었고, 흥안 역시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한주를 첫눈에 반해 마음에 품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정을 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흥안이 다시 고구려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때 자신이 고구려의 왕자인 사실과 후일 군사를 이끌고 돌아와 한주를 고구려 황후로 맞겠다는 약속했다고 합니다."

질정지의 설명을 들은 아진왕은 무척 흥미로워했다.

"흥안이 아직 혼인을 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었구려."

"그렇사옵니다. 흥안은 왕이 된 이후에 몇 차례 백제의 개백현을 공략하려 하였으나,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사옵니다."

실질적으로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제가회의와 그 수장 대대로는 흥안이 적국의 여인인 한주를 구출하기 위해서 대규모 군사를 동원해 백제를 치는 것을 반대해왔다. 또 어렵사리 남부 욕살 고운수의 도움을 받아 군대를 동원해 개백현을 공격했지만 그때마다 백제 어라하 무령과 명농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는 입장이었다.

"고구려 조정도 반대할만하구려. 적국의 여자를 황후로 맞으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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