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극수 문화유산회복재단 경남본부장
박극수 문화유산회복재단 경남본부장

웅상이 도시화함은 정부의 도움으로 발전한 도시가 아닌 주민들의 힘에 의하여 조성되었다.

울산시민의 식수 확보를 위한 회야댐이 준공됨과 동시에 수원보호를 위한 다는 명분으로 모든 관청은 하나가 되어 울산시민 식수를 보존하기 위하여 웅상면민들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희생되어도 마땅하다는 논리로 웅상 전역을 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었다. 당시 울산시 인구는 90만명이고 웅상면 인구는 1만4천명이었다. 울산시에는 국회의원이 5명이었고 양산군에는 1명이었다. 인적물적으로 비교가 되지 않았다.

당시 정권은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이라 정부 시책에 항거하면 무조건 가혹한 처벌을 가하는 시대였다. 이런 정국에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수원보호구역 지정 정책에 반하는 해지운동을 하였으니 주동한 사람들의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 당한 가혹한 핍박은 말로 형언 할 수 없다. 이런 핍박을 당하며 굴하지 않고 5여년간 투쟁하여 대한민국 건국이래 제1호로 해지 통보를 받았다. 주민들이 사력을 다해 도시화로 나아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웅상은 도시계획에 의하여 다듬어진 도시가 아닌 주민들이 구성한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조성되어 짜깁기 도시가 되었다.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 인가 신청때마다 관련 공무원들은 한결같이 민원인을 온당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닌 정신환자 취급을 했다. 덕계토지구획정리조합은 큰 암반산을 발파하여 건축자재 골재를 생산하고 태산을 평지로 만들어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로 조성했고 명곡 1,2조합사업지구는 봉우, 태원 일대 아파트 식수가 생활용수 고갈시 명곡 시명골저수지 물을 공급하고 저수지 수혜농지 전지역 절대농지를 주거지역으로 지정하여 조합을 설립하였다. 그 이외 토지구획정리조합 사업지구 토지도 대다수 도시계획 미지정 지역 절대농지를 토지 소유자들의 노력으로 주거지역으로 지정하여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하였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할려면 사업에 소요되는 모든 경비를 토지소유자들이 부담하고 도로, 공원, 상하수시설, 전기시설, 하수분담금부담, 농지전용부담금 등 모든 도시기반시설을 완공한 후 공공용지와 시설일체를 기초지방자치단체에 기부채납 약속을 하고 사업신청을 한다. 사업인가시부터 준공까지 관에서는 감시감독만 일관한다. 대다수 공무원들은 원만한 사업추진이 되도록 지도위주 방향으로 임하였지만 이떤 공무원은 위압적으로 군림하는 자세로 임한 직원도 있었다. 토지구획정리지구 토지를 소유한 조합원들의 사업시행계획은 소유토지면적 중 60% 정도는 사업비로 소요되고 40%정도는 사업완공 후 환지가 된다. 도로 편입 면적비율은 전체면적 중 20%~25%정도, 공원면적은 10%정도, 하수분담금은 조합마다 차이가 있지만 한 조합당 25억원 정도 부담하였다. 11개 조합에서 조성한 사업면적은 약 삼백만㎡(90만평)이며, 도로, 공원 부지로 편입된 면적은 약1백5만㎡(약32만평)이며, 도로, 공원 편입토지와 도시기반 조성 경비는 엄청난 경비이다. 조합이 구성되지 않고 조합이 조성한 도시기반시설을 주민들의 아무리 아우성으로 요청해도 양산시에서 조성할려면 현재까지 20%도 조성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런 엄청난 일을 웅상주민들이 이룩하였다. 웅상의 개설된 도시계획도로와 소공원 대다수 간선도로다. 도시계획도로만이 아닌 토지소유자들이 토지영구무료사용승낙서를 제출하고 주민들이 개설한 대운로와 덕명로와 접하여 성요셉의집 간 도로(대운1길 도로) 길이 약1.5km도로도 주민들이 개설하였다. 웅상출장소 부지, 문화체육센터 부지 80% 주민들이 기증하였고 명동공원 부지 중 주민소유 토지 많은 토지를 무료로 사용하고 있다. 우불신사, 우불산성, 삼호리고분군, 웅상농청장원놀이, 문화재지정 과정에도 주민들이 중심이 되었다. 자발적으로 지역을 가꾸어 가는 웅상주민들의 선비 정신을 확연하게 확인할 수 있는 모습은 마음병치료병원, 발달장애인시설, 노인요양시설 등을 설립하고저 하면 지금은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지역은 보기 어렵지만 20여년 전에는 극구 반대를 하는 지역이 많았다. 그 시절에 웅상에 대형 마음병치료병원, 대형 발달장애인보호시설, 대형 노인요양시설을 설립해도 웅상주민 어느 한 사람도 이의를 제기하는 주민이 없었다. 오히려 무얼 도와주어야 하나 하며 고민하는 주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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