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오는 중인가 어디로 가는 겐가
곁눈질 한 번 없이 오로지 앞으로만
잠시도 머물지 않고 흘러가는 강이여

누구를 찾아 가나 무엇을 향해 가나
도도한 강물 속에 들어앉은 산들이
나직이 묻고 또 묻네 일렁이는 강이여

얼마나 오랜 세월 흐르고 흘러 왔나
얼마나 긴 세월을 흐르고 흘러 갈까
날마다 깊어져 가는 깨우침의 강이여

열 길도 넘을듯한 깊은 속에 무엇 있나
기필코 찾아내어 내게도 보여주마고
저 강물 깊은 곳으로 한겨울이 들어가네

-김문주 「겨울, 북한강에서」 전문

북한강을 떠올릴 때면 정태춘의 노래 「북한강에서」가 떠오른다. "~짙은 안개 속으로 새벽강은 흐르고/ 나는 그 강물에 여윈 내 손을 담그고/ 산과 산들이 얘기하는 나무와 새들이 얘기하는/그 신비한 소릴 들으려 했소/ 강물 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속에 또 내가 서로 부딪치며 흘러가고/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또 가득 흘러가오/ 아주 우울한 나날들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 때 우리 이젠 새벽 강을 보러 떠나요/ 과거로 되돌아가듯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 처음처럼 신선한 새벽이 있소/ 흘러가고 또 오는 시간과/ 언제나 새로운 그 강물에 발을 담그면/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천천히 걷힐 거요~"

정태춘의 노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자주 드나들던 양평이란 장소 때문이었을까? 일상이 답답하고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양수리를 찾아 북한강가를 한 바퀴 돌면서 마음을 달래던 때가 있었다. 끊임없이 줄기차게 흐르는 강물이 때로는 사람의 감정을 우울하게 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기분이 우울하거나 하는 일이 잘 안 풀려 마음이 답답할 때는 그치지 않고 흘러가는 그 강물이 마음의 우울이나 근심까지 모두 싸안고 흘러가는 것 같아서 깊은 위안이 되기도 했다.

위 시조의 화자는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우리의 근원까지 생각해 보게 한다. '어디서 오는 중인가 어디로 가는 겐가/ 곁눈질 한 번 없이 오로지 앞으로만/ 잠시도 머물지 않고 흘러가는 강이여'라며 곁눈질 한 번 하지 않고 잠시도 머물지 않고 흐르는 강물의 연속성을 말하고 있다. 강물은 우리가 고민하고 염려하는 사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제 갈 길을 간다. 마치 '이럴까 저럴까' 갈등하는 인간들을 보면서, '바보야, 너가 그러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간단다.'라고 충고라도 하듯이. 인생은 고민하지 말고 '직진하며 전진해야 하는 것'이라 고 속삭이듯이.

둘째 수에서 화자는 그 강물이 누구를 찾아가는지 무엇을 향해 가는지 궁금해한다.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 안에 들어 있는 산들이 묻고 또 묻는다. 강물과 인생의 지향점은 어디인가? 과연 누구를, 무엇을 찾아 인생은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셋째 수에 오면 '얼마나 오랜 세월 흐르고 흘러 왔나/ 얼마나 긴 세월을 흐르고 흘러 갈까/ 날마다 깊어져 가는 깨우침의 강이여'라며 강물의 영속성을 다시 생각한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강물,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흘러왔고, 우리가 간 뒤에도 여전히 흘러갈 것이다. 그러한 강물은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에게 겸손하라는 깨우침을 준다. 그 깊은 강물 속으로 겨울이 들어간다.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면서…. 그 깊이를 찾는 건 우리 각자의 몫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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