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달력이 마지막 잎새처럼 달랑 한 장 남았다. 누가 몰래 훔쳐 간 것이 아닌데 감쪽같이 사라진 듯하여 허탈함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쏜살처럼 流水처럼 흘러가는 것이 세월이라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 빠르기가 거침이 없다.

돌아보니 그동안 살아온 60년 넘은 그 시간도 오간데 없이 자취를 감추었으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그래서 인생은 찰나라는 말, 이 한마디로 정리를 하고 나니 괜스레 편안하고 개운하다.

인생을 길게 잡아 100년이라고 하면 약 31억 5천만 초를 살게 되는 것이고, 이를 1찰나(75분의 1초)라고 표현한 것이니 약 0.013초가 된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치면 인생은 찰나, 약 100분의 1초의 시간이 되니 찰나 같은 인생이라는 말이 진하게 실감이 난다.

여기에 생각이 이르니 괴로워하고 미워하고 잘난체했던 지난 삶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무안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다. 이것이 삶인 것이다. 생로병사, 희로애락, 길흉화복의 비빔밥을 숱하게 먹으며 살아온 그 도도한 삶이 고작 이것뿐이라니 어안이 벙벙하다. 그러나 중생의 삶으로 돌아오니 바로 걱정거리, 처리해야 할 일, 이런저런 일상의 잡동사니들이 발목을 잡는다. 인생은 찰나라는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냥 치이는 삶이 피곤할 뿐이다.

돌아보면 뭔가 대단한 삶을 살아온 것 같아도 결국 결핍을 벗어나려는 욕망을 쫓아 허둥지둥 살아온 것이 분명한 것 같다. 때론 그 욕망이 충족되기도 했지만 다시 결핍, 그리고 욕망, 다시 충족이라는 삶의 수레바퀴를 오늘도 돌리고 있는 것이리라. 문득 여기에 주역의 변화의 원리, 궁즉통(窮卽通)이 오버랩된다.

누구나 살다 보면 궁지에 몰릴 때가 있다. 아니 궁지에 몰리는 삶은 일상에 다반사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고, 이런저런 상황이나 환경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목이 마르면 샘을 파듯이 궁지를 벗어나려 뭔가 변화를 시도할 것이고 (窮卽變), 그 결과 원하는 것을 이루게 된다(變卽通). 그런데 원하는 것을 이루었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通卽久) 얼마 다시 궁지에 몰리게(久卽窮) 되고, 결국 다시 궁즉변이 시작되는...

자연스럽게 지금 눈앞의 그것에 메여 쩔쩔매는 삶을 살아가는 장삼이사들에겐 이 변화의 원리야말로 견디고 버티고 희망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지혜의 길인 것이다.

삶에 어려움이 있으면 이를 이겨내기 위해 애를 쓰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었다 해도 머지않아 다시 어려움이 찾아올 것이니 절망도 교만도 그냥 스쳐가는 바람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일상에 깨어있는 마음으로 내 삶을 여여히 챙겨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수천 년 전 선현들의 말씀들이 지금도 오롯이 살아있는 무엇이 되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고맙다.

한 해의 끝인 12월에 와서야 이런 깨달음이 다가온 것이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알아차렸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세상에 늦은 때란 없는 법이니까. 대신 욕망을 당연시하지 말고 조금 줄이면 그 삶의 이치, 변화의 원리를 내 삶에 녹이기가 훨씬 쉽지 않을까. 행복이란 내가 욕망하는 것을 이루는 정도에 영향을 받으니까.

무소유의 달, 침묵의 달인 12월에 떠오른 상념이다. 고마운 한 해가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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