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재판' 정의가 아니다
정치인 봐주기'눈치재판은 안 돼
사법 불신은 법원 스스로 초래한 업보
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뼈를 깎는 노력해야

"지연된 정의는 정의의 부정이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이라는 법언(法諺)이 있다. 이는"제때 공명정대하게 처리되지 않은 채 지연되고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의미로 통한다.

우리는 최근 잇따른 사법부의'지연된 정의'로 상징되는'의도되고 왜곡된 재판지연'으로 인한 사법 불신을 뼈저리게 통감(痛感)하고 있다. 가장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할 재판이 정치이념과 정당의 진영논리에 휘둘러 지연·왜곡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판은 우리사회의 인권과 정의수호의 최후 보루(堡壘)로서 이러한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그런데도 너무 노골적으로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어 안타깝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지난 10월 무려 3년 1개월 만에 1심 선고된 송철호 전 울산시장 공직선거 재판을 들 수 있다. 2018년 지방선거 때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친구인 송 시장 당선을 위해 청와대 등 국가권력이 개입된 사건이다. 검찰과 법원은 수사와 재판을 최대한 끌었다. 선거사범인데도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퇴임 직후까지 미루다 3년 1개월 만에 겨우 1심을 선고했다. 질질 끌만한 무슨 사연이 그리도 많았는지"사법정의가 죽었다"는 거센 비난을 자초했다.

양산에서도 지난 2018년 김일권 전 양산시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1,2심에서 시장직 자격상실에 달하는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질질 끌다가 임기 말쯤 대법원 파기환송으로 무죄 판결 난 사건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고생 끝에 무죄 받은 당사자는 다행이었겠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과 양산시민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우리 헌법 제27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적시하고, 민사소송법 제199조는 소 제기 5개월 이내에, 항소심과 상고심은 기록 송부 받은 날로부터 5개월 이내에 선고토록 규정하고 있다. 또 공직선거법상 선거재판은'6·3·3제'로 1심은 6개월, 2,3심은 각 3개월 이내에 선고토록 강제하고 있다. 그러나 보통 1심에만 2~3년을 우습게 넘긴다. 사건에 따라 임기 4년을 다 채우는가 하면, 넘기는 경우도 더러 있어'정치인 봐주기'재판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사실상 사문화 된지 오래다. 법을 만든 국회의원도, 이를 집행하는 재판부도 인력과 업무가중 등의 이유로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이러한 재판지연은 2017년 문재인 정부 때 취임한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임기 6년간 코드인사, 편향판결, 재판지연으로'법원의 정치화'라는 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이로 인해 취임 이후 미판결 사건은 2017년 5345건에서 2022년 1만4428건으로 무려 3배가량 증가했다. 실제로 민사합의부 1심 처리는 2014년 252.3일에서 2017년 293일, 2021년 364.1일, 2022년(상반기) 386일로 크게 늘었고 민감한 정치적 사건은 아예 몇 년씩'낮잠'을 잔다.

재판지연은'사법 불신'으로 직결된다. 이는 당사자의 입장에 따라 호불호가 달라지겠지만, 온정이나 정치적 권력이 작용되어서는 안 된다. 믿고 싶진 않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사법부를'최후의 보루'나'신의 영역'으로까지 믿고 존중하는 이유도 재판 그 자체가 어떠한 외압 없이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공명정대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우리 사회에 이러한 믿음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그만큼 사법 불신이 높다는 것이다.

필자도 지난 28년간 기자활동을 하면서 법원 검찰 등 법조를 오래 출입했다. 검사들보다 판사들을 대하기가 무척 조심스럽고 까다로웠다.'견제와 균형'이라는 두 영역 간 업무성격차도 있지만, 어쨌든 취재상 판사(법관)들을 대하기가 조심스러웠건 사실이었다. 때문에 시답잖은 일로 다투기도 했다. 당시 그런 이유들을 반추해보면 판사들의 재판 영역은 적어도 사람이 아닌'신의 영역'이라고 여겼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만큼 함부로 취급하거나 소홀히 해서도 안 되는 우리 사회적 인식이 존중되었던 것이다. 십 수 년이 지난 지금, 그런 생각들이 많이 바뀌었다. 오롯이 내 탓 때문일까?

재판지연과 상식이하의 재판은 국민들을'멘붕 상태'로 만든다. 특히 선거재판은 더 그렇다. 출마 때 발생한 사건이 재판지연으로 임기 4년을 다 채우거나 끝난 뒤에도 계속된다. 뒤늦게 유죄판결이 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당선자는 부정선거를 저지르고도 1억 이상의 고액 혈세연봉으로 임기를 마친 반면, 상대자는 더 이상 억울함을 호소할 길이 없어진다. 선거재판 기간을 엄격히 특정해 놓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중요한'법적 룰'을 누구보다 철저히 지켜야 할 재판부 스스로가 이런 저런 이유로 지연·왜곡하고 있으니, 정의로운 재판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사법부 스스로가 불신을 자초하는 셈이다. 따라서'지연된 정의'는 더 이상의 정의가 아닌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무너진 대한민국 사법정의, 바로 설 수 있을까?

최근 취임한 제17대 조희대 대법원장도 무너진 사법부 위상이 걱정된 듯 취임 일성부터"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지난 15일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도 이 같은 주장에 비중을 실었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사법정의가 바로 설지 지켜볼 일이다. 평생 법관으로 누구보다 올곧게 살아온 듯 꼿꼿하고 청백리 해 보이는 그의 외모에서 일말의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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