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사망급래(父親死亡急來)'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으니 빨리 집으로 오너라

'모친상경(母親上京)'

너희 집에 가려고 지금 서울로 올라간다.

전보(電報)에 흔히 쓰이던 짧은 문장이다. 통신이 원활하지 못했던 시절, 전보는 급한 소식을 알릴 때 이용하던 통신 수단이다. "전보가 뭐지?" 모르는 세대도 많을 것이다. 휴대전화가 대중화되고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됐으니 전보가 구시대의 유물로 밀려날 수밖에.

전보가 다음 달 15일 13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미 국제전보는 2018년 4월 8일 자로 서비스가 끝났다. 전보 서비스는 세계적으로도 종료되는 추세다. 미국 네트워크 기업 웨스턴 유니온은 2006년 전보 서비스를 종료했다. 독일 우체국도 올해 1월 1일부로 서비스를 중단했다.

전보는 배달에 시간이 걸리는 편지의 불편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19세기의 혁신적 통신 수단으로 각광받았다. 국내에선 1885년 한성전보총국이 서울∼인천 간 첫 전보를 발신하면서 물꼬를 텄다. 우체국에서 전보 송달지를 작성하면 전신기나 전화로 전하고, 도착 지역 우체국에서 전보지를 다시 작성하여 받는 사람에게 배달하거나 받을 사람이 우체국에 가서 받아가는 식이다. 광복 이후에는 체신부가 담당해오다가 민영화되면서 KT전신인 한국전기통신공사에서 맡아왔다.

전보 요금은 녹록지 않았다. 1965년 기준 기본 10자에 50원 받았다. 당시에 출시된 라면 한 봉지가 10원이었으니 엄청 비싼 요금이다. 글자 수를 줄이려다 보니 한자어를 사용하여 뜻을 압축했다. '음7일남아순산' 전문은 '음력 7일 남자아이가 무사히 태어났습니다'로 뜻이 통했다.

한자를 섞어 무리하게 줄이는 불편을 없애려 통신공사는 예문을 만들어 놓고 그중 기호를 선택하여 쓸 수 있게 제시했다. 가령 '가갸'를 선택하면 '가'는 상위 분류 '축전'이고 '갸'의 예문은 '고희를 축하하오며 만수무강을 빕니다'가 된다. 무리하게 내용을 압축하지 않아 편리하고, 내용 전문이 인쇄되어 우편으로 보내는 방식이다.

전보는 역사를 바꾸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외무상 짐머만은 멕시코 주재 대사에게 미국이 참전하면 멕시코가 미국의 배후를 치도록 하라는 극비 전보를 보냈다. 1917년 1월 17일 영국 정보부가 이 전보를 가로채 미국에 흘렸다. 고립적인 외교정책을 고수하던 윌슨 대통령은 입장을 바꿔 참전했고, 독일은 패망했다. 전보 오기(誤記) 사고로 재판이 열리기도 했다. '모친상경'이라고 친 전보가 전신국의 실수로 '모친사망'으로 전달되어 장례를 준비하던 아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고, 재판부는 45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전보와 비슷한 서비스가 우정사업본부의 '경조 카드 서비스'다. 메시지와 돈을 같이 보내는 일종의 전신환 서비스인 '경조금 배달 서비스'도 밀려날 위기에 처했다. 요즘은 대개 문자메시지로 경조사를 전달받는다. 경조사엔 '마음을 전할' 계좌번호가 찍혀있어 이용량이 줄 수밖에 없다. 소중한 추억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나도 세상에서 떠밀리는 느낌이 들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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