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암의 관산청수(觀山聽水) 현판이 있는 전각 처마끝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와 뒤쪽 담벼락에서 흘러내리는 약수의 물소리를 함께 들으며 저 멀리 천성산의 풍경을 마음껏 보는 호사를 누렸다. 관산청수 현판은 경봉 대선사의 글씨이다.
비로암 북극전. 북두칠성 신앙을 반영한 북극전이다.

 

'한류(korea wave)'는 세계적인 단어가 되었다. 이제 한류는 생소한 단어가 아니라 세계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문화의 주류로 핵심 단어(key word)가 된 것이다. '대장금', '겨울연가' 등 드라마를 비롯하여 최근의 'BTS', '싸이'까지. 그리고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발효음식 김치는 미국의 각 주(州)에서 '김치의 날' 제정을 할 정도로 관심을 받고 있는 중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다른 문화를 모방하지 않고 우리 고유의 문화와 특성을 살린 문화의 요소요소들이 세계인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장 '한국적인 것'의 근간에는 불교문화가 상당한 부문 자리하고 있다. 한국인의 정서에 불교적 정취가 일상생활 곳곳에 자리하고 있음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용어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도로 아미타불, 건달(乾達), 곡차(穀茶)의 유래, 면목(面目) 없다, 무진장(無盡藏), 사자후(獅子吼), 야단법석(野檀法席), 이판사판(理判事判) 등을 보면 우리의 생활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불교문화를 좀 더 현대화함으로써 한국의 불교를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다. 아울러 지방화시대를 맞으면서 한국불교적 소재의 세계적인 상품개발에도 끊임없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템플스테이와 사찰음식을 통한 불교문화의 세계화는 이미 상당히 이루어져 있다.

양산은 불지종가, 국지대찰인 통도사와 불교의 성지인 천성산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소중한 문화자산을 온존히 보존함은 물론 세계화하는데 관심을 가질 때이다. 현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는 얼마 전 '지방시대 선포식'을 개최, '지방시대 비전과 전략'을 발표했다. "지역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라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정책은 지방시대 비전과 전략을 통해 '지방주도 균형발전, 책임있는 지방분권'의 지방시대를 열어 가는데 관심을 가지겠다는 것이다.

지역의 경쟁력이 곧 세계의 경쟁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지역이 가지고 있는 문화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비로암 경심당.

■비로자나불의 비로암

'도'는 도대체 무엇이며 '깨달음'은 또한 무엇인가.

부처인 석가모니는 열반에 들면서, '법(佛法)과 스스로에게 의지하지 석가모니 부처 자신에게 의지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이것은 모든 중생들 각자가 깨달음의 주체이며 누구나 깨달을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경전에는 부처의 몸은 법 자체로 되어 있는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중생과 같은 몸을 빌려서 온 것이라고 한다.

비로자나불은 불교의 진리를 상징하는 부처이다. 석가모니불의 몸 자체를 색신(色身)이라고 하고, 석가모니불이 말씀하신 불교의 진리(佛法)를 법신(法身)비로자나불이라고 한다. 그러니 석가모니불과 비로자나불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그러므로 부처와 불법은 하나이므로, 석가모니 부처의 열반 후에 사람들은 부처가 남긴 불법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으로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부처가 비로자나불이고, 법신이라고 한다.

비로자나불은 만물을 창조하거나 없애거나 하는 존재가 아니다. 법신 비로자나불은 우주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으로, 이를 누가 창조하거나 없앨 수가 없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근본적인 원리 그 자체이다. 또한, 비로자나불에 의해서 정화되고 장엄되어 있는 세계는 특별한 부처님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를 의미한다는 큰 특징을 갖는다.

비로암은 이름처럼 비로자나불을 모신 암자다. 극락암에서 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 자리한 암자로 고려 충목왕 원년(1345) 영숙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 후 선조 11년(1578) 태흠대사가 중건하였고 다시 근래에는 영축총림 2대 방장을 역임하였던 원명 스님이 중수를 하였다. 비로암에는 1899년과 1904년에 조성된 아미타구품탱· 독성탱·산신탱·조왕탱 들이 경남 유형문화재 제354호로 지정되어 있어 당시 많은 불사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법당과 더불어 북두칠성 신앙을 반영한 북극전이 있으며, 현재 성보박물관으로 이운 되었으나 북극전에 봉안되었다.

비로암 전각은 우리나라 단청 양식을 골고루 보여준다. 본당과 극락전은 금단청으로 화려하게 꾸몄지만, 요사채인 무진장(無盡藏)은 무늬 없이 단색으로 칠한 가칠 단청 위에 선만 그은 긋기단청 양식을 보인다. 부처가 머무는 곳과 사람이 있는 곳을 단청을 통해 구분한 셈이다. 또한, 본당 오른편에 종무소와 함께 있는 누각은 부재 끝머리에만 문양을 그려 넣은 모로 단청 양식을 취하고 있다.

비로암의 근래 암자 모습은 감원인 원명 스님이 불사한 것이다. 활수교를 지나 오르막 끝에 자리한 비로암은 영축산을 등지고 있다. 비로암으로 오는 중간에 있는 연꽃단지에서 보면 영축산 기운이 능선으로 세 갈래 나뉘어 이어진다고 한다. 그 가운데 두 개의 기운이 모이는 지점에 비로암이 있다. 나머지 하나는 자장암으로 이어진다. 영축산 기운이 모이는 이곳에는 예로부터 큰 스님 2명이 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스님들은 비로암이 수좌(首座)절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통도사 방장(方丈, 선원·강원·율원을 갖춘 총림의 최고 어른)을 지낸 원명 스님이 바로 경봉 스님의 상좌이기 때문이다. 원명 스님은 1952년 경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 후 군대 생활 3년을 제외하곤 60여 년 동안 산문 밖 출입을 자제하며 수행에 전념해왔다. 스님은 그동안 28번의 안거(安居, 출가한 스님들이 한곳에 모여 외출을 금하고 수행하는 제도)를 했을 정도로 평생을 참선과 공부에 몰두해왔다.
 

비로암 요사채. 요사채인 무진장에 걸려 있는 간부진(看不盡,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풍경), 연화승(蓮花勝, 훌륭한 좋은 인연) 편액 역시 경봉 대선사의 글씨다.

■비로암의 관산청수(觀山聽水)

비로암은 모든 생명의 근원인 '물'과 인연이 깊은 암자다. 청류동으로 흐르는 계곡에는 통도사 8경인 비로폭포(毘盧瀑布)가 있다. 필자가 비로암을 찾았을 때는 겨울인지라 계곡의 물도 말라 비로폭포의 청쾌한 물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러나 비로암의 관산청수 현판이 있는 전각 처마 끝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와 뒤쪽 담벼락에서 흘러내리는 약수의 물소리를 함께 들으며 저 멀리 앞산의 풍경을 마음껏 보는 호사를 누렸다. 아마 저 멀리 보이는 산이 천성산이리라.

1920년 천성산을 '신금강산'이라고 선포를 했던 경봉 대선사의 친필현판인 '관산청수(觀山聽水, 멀리 산을 보고 물소리를 듣는다.)'가 걸려 있는 전각 아래에서 천성산을 바라보며 풍경소리와 약수의 맑은 소리를 듣고 있는 이 순간이 곧 적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달 처음으로 진행되었던 천성산생태숲길전국걷기축제의 감흥을 되새기며 한참을 서 있었다.

비로암을 둘러보면 곳곳에 경봉 스님의 글씨가 보인다. 여시문과 누각 외에도 요사채인 무진장에 걸려 있는 간부진(看不盡,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풍경), 연화승(蓮花勝, 훌륭한 좋은 인연) 편액 역시 스님 글씨다. 원명 스님은 은사였던 경봉 스님을 경애하는 마음을 암자 곳곳에 남겨두고 싶은 마음인가. 암자 전각 전체가 경봉 스님 글씨로 가득하다.

특히 본당 주련에 새긴 글은 경봉 스님이 극락암에 있을 때 원명 스님에게 직접 준 시를 보관하고 있다가 옮긴 것이라고 한다.

聲前一句圓音妙(성전일구원음묘)
소리 전 일구의 원음이 묘한데

物外三山片月輝(물외삼산편월휘)
물질 밖의 삼산에는 조각달이 빛난다

風吹碧落浮雲盡(풍취벽락부운진)
바람이 허공에 부니 뜬구름이 다 흩어지고

月上靑山玉一團(월상청산옥일단)
청산에 오른 달이 한 덩어리 옥일런 듯

棒喝齊施猶未宗(봉할제시유미종)
방과 할을 퍼붓더라도 오히려 종을 이루지 못하고

三玄三要絶孤踪(삼현삼요절고종)
삼현과 삼요라 하지만 여기는 그런 자취마저 끊겼도다

擊目相傳起念刻(격목상전기념각)
눈을 마주쳐 서로 전함은 생각 일어나기도 전일세

영축산을 병풍삼아 자리 한 비로암에서 때마침 불어 주는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를 맘껏 들었다. 풍경소리와 함께 비로암의 산정약수는 한 치도 어김없이 흘러내리고. 동쪽 저 멀리 남북으로 뻗어 있는 천성산의 줄기는 영축산과 어우러져 온 세계를 감싸고 있었다.
 

통도사 국제 템플스테이관 입구
비로전 가는 길에 만난 솔밭. 서로 서로를 지켜 주고 있는 모습에서 또 하나의 느낌을 얻는다.
비로전 가는 길에 만난 솔밭. 서로 서로를 지켜 주고 있는 모습에서 또 하나의 느낌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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