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을 통해 풀어나가고, 엮어가며
다양하고 수많은 갈등 속에 살아가는 삶들
다름을 이해하고, 서로를 감싸 안는 포용으로

열매와 잎 떨어지고 덩굴줄기만 남아서도 서로를 감싸 안으며 함께 소통의 생을 이어가고 있는 다래나무와 키위나무
열매와 잎 떨어지고 덩굴줄기만 남아서도 서로를 감싸 안으며 함께 소통의 생을 이어가고 있는 다래나무와 키위나무

 

엮이고 이어져 있는 공부

지난봄부터 삶을 투영시켜가며 이런저런 나무 이야기로 이어오다가 어느덧 계절이 겨울의 문턱에 와 있다. 한창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나무의 모습에서 설레는 마음도 가지다가 빗방울 맺힌 초록의 싱그러움에서 청춘을 회상하기도 하고, 세찬 비바람에 꺾여나간 가지와 나뒹구는 잎들에서 시련의 한 때를, 맑은 햇살과 바람을 먹은 탐스러운 열매의 모습에서 절정의 한 때를 그리워하기도 해 보았다. 나목으로 또 내년 봄을 기약하며 긴 준비에 들어가는 모습에서는 다시 기대감을 품어보기도 한다.

내년 봄을 기약하며 겨울의 길목에서 준비를 하는 연구소의 나무들
내년 봄을 기약하며 겨울의 길목에서 준비를 하는 연구소의 나무들

 

주변의 나무를 바라보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그 찰나마다 내 삶을 반추하고, 계획하며 때로는 사회현상도 엮어서 생각해보는 시간들이었다. 단순히 나의 감상으로만 그치지 않고자 매주 연재를 자처하며 공감대를 만들어보려 애쓰는 시간들이 깊어간다. 나의 글이 큰 흥미와 감동을 주지 않겠지만 적어도 나무의 생을 통해 삶의 향취를 느낄 만큼이라도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공감대를 만들기 위한 시간이 깊어가듯 키위 열매도 숙성되어가고 있다.
공감대를 만들기 위한 시간이 깊어가듯 키위 열매도 숙성되어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날 어떤 선택의 갈림길에서 내적 갈등을 줄이고자 서둘러 선택했던 나의 행보는 더 큰 내적, 외적 갈등을 동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때문에 나는 나무라는 글을 쓰는 동안에는 또 다른 고민과 갈등이 이어질지라도 마음의 산책을 하며 스스로가 정한 목표에 도달하고자 애를 쓰기로 하였다.

이러다보니 매사에 나무와 결부시켜 현상을 읽어 들이고 바라보며 주변인들과의 대화에서도 줄곧 나무 이야기가 이어지게 마련인데, 가족들과의 식사 때도 나무는 흔한 화제가 되었고, 어린 아이들은 으레 아빠가 무슨 나무학자라도 되는 듯 인식하고 있다. “그럴 정성과 노력으로 진즉 논문 마쳐서 박사학위라도 받아놓든가 하지라며 아들의 생산성 떨어지는 고민과 글쓰기가 못내 아쉬운 듯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님들 생에서는 노력이 곧 생산성으로 귀결되어 부지런히 움직였던 덕분에 지금의 삶이 있는데, 아들의 생은 계속 분야를 바꿔가며 공부의 현장으로 이어지다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어느 분야의 끝맺음을 안 한 채, 또 다른 공부로만 이어지고 있으니 꽤나 답답해서 하시는 소리일테다. 한 주마다 계속 다른 주제로 이어지는 글 소재를 찾으려 나무를 관찰하고, 밤잠 설쳐가며 글을 쓰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상황을 다 헤아려 배려해주심에 감사하기 그지없다. 부모라서 원래 그렇다가 아니다. 원래란 없다. 여간 엮어진 부모자식 간의 애정이 아니고선 절대 그럴 수 없는 것이다.

그랬다. 어떤 진로가 맞을지 몰라 스스로 입문한 예술세계로의 공부는 고3 뒤늦게 입시미술을 배워 미대를 갔고, 그곳에서는 제대로 배울 수 없는 나무 다루는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밖으로도 나돌았다. 제대로 디자인을 배우겠다고 다시 유학길에 올라 공부를 하다가 자국의 역사에 대해 재인식하며 역사공부에 탐닉하기도 하고, 예술마케팅을 고민하다가 수요의 부재를 교육의 부재로 해석하고 교육학을 공부하다가 창작을 통한 국제교류와 교역도 모색했었다. 방법이 중요한 게 아니라 원인을 찾으려 궁리하다가 철학을 공부하게 되고, 사회로 나와 보니 원리만 대입해서는 안 되니 사회학 측면에서 공부하게 되고, 프로그램 기획을 하다 보니 사람을 위한 일이라 인문학을 공부해야 되고, 세상이 넓다 해도 돌아와 보니 지역을 제대로 알아가기 위해 지역학을 공부해야겠고, 자연에 기대어 사는 삶이니 주변의 산천에 있는 나무들로부터 삶을 읽어 들이는 공부를 하는 것으로 계속 바뀌며 이어져 온 현상학 공부의 현장이었다. 달리 말해 평생학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고민 없이, 노력 없이 그저 보내버린 시간들이 아니었기에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소중한 시간들이고 귀중한 배움의 시간들이다. 다 엮이고 이어져 있는 공부의 세계이. 그럼에도 쉬이 풀리지 않는 현실세계에서 나름의 해법은 제각각 나무들의 고귀함을 읽어 들이며 마음의 산책을 통해 나의 세계를 풀어나가고, 세상을 향해 나의 존재를 엮어 나가는 것이겠다 싶다.

2010년 작품 - 등나무 줄기를 엮어 만든 물고기 조명
2010년 작품 - 등나무 줄기를 엮어 만든 물고기 조명

 

 

갈등: 칡과 등나무

그랬다. 그동안 여러 갈등과 번민으로 점철된 삶이었지만, 비단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은 너 나 할 것 없이 갈등과 그 해결의 과정에서 현재 진행형인데 과연 갈등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사전적 의미는 칡과 등나무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서 다른 의견, 신념, 행동, 정서, 목표로 인해 서로 충돌하여 상충하는 방향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말한다. 더 풀이를 해보면, ()’과 등나무 ()’이라는 글자를 조합한 것으로 칡은 왼쪽으로 감고, 등나무는 제멋대로 감고 올라가는 습성이 있다. 왼쪽으로만 감는 칡은 고집스럽고 융통성 없는 사람에 비유되며, 제멋대로 감는 등나무는 소통 없이 자기 방식대로의 사람이어서 이 둘 사이가 얽혀 풀기 어렵게 된 상태를 갈등이라 한단다.

어린 층층나무를 휘감고 올라가는 칡 줄기
어린 층층나무를 휘감고 올라가는 칡 줄기
기둥을 꽉 잡아 감고 올라가는 등나무 줄기
기둥을 꽉 잡아 감고 올라가는 등나무 줄기

 

개인이 다양한 선택들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고민하는 내적 갈등부터 다른 성격이나 가치관의 개인과 대립하거나 사회의 제도나 관습, 조직 등과 대립하여 일어나는 외적 갈등, 말하자면 가족(부모와 자녀, 부부, 고부, 장서), 남녀, 세대, 이웃, 학력, 지역, 기업, 종교, 이념, 나아가 민족, 국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수많은 유형의 사회적 갈등 속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갈등이 지속되면 정신적, 신체적으로도 해로우며 많은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기도 하고, 조직, 나아가 국가 같은 큰 범위에서는 해체될 수도 있다든가 하는 엄청난 물리적 손해가 따르는 역기능도 있지만, 다른 견해들의 부딪힘으로 인해 갈등의 원인을 찾아 더 나은 해결책을 찾기도 하고, 화합의 계기를 마련한다든가 변화를 유도하기도 하며 갈등 방지와 관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도 하는 순기능도 있다.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갈등 상황에 당면하는데, 그럴 때 우리는 칡처럼 고집스레 자기만의 방식으로 휘어 감는 건 아닌지, 등나무처럼 소통 없이 제멋대로 엮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겠다. 갈등의 본질과 근본적 원인을 파악한 이해와 포용이 필요할 것이다.

갈등(葛藤)의 어원이 되는 칡과 등나무에 얽힌 추억을 끄집어내어 보면, 초등 1학년 겨울방학 때 즈음, 네 댓살 많은 동네 형들을 따라 삽과 곡괭이를 들고 계곡을 거슬러 산에 올라가서 칡뿌리를 캤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파내어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땅 속에서 뿌리가 보일 때 쯤 더 곡괭이질을 하고 모두 힘을 합쳐 굵은 칡뿌리를 당겨 뽑아내었다. 개울가로 내려와 얼음을 깨고 흙을 씻어낸 후 추운 날씨는 아랑곳 않고 질겅질겅 씹어 먹었었다. 씹을수록 시원한 단맛이 나던 칡뿌리의 맛과 즐거웠던 유년의 기억이 가물거린다. 간혹 나뭇짐을 하다 묶을 끈이 모자랐던 할아버지는 질긴 칡 줄기를 노끈처럼 사용하기도 하셨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학교 운동장에서 야영을 하고, 등나무 그늘아래 쉬면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났다. 쉬는 시간 때때로 연못의 잉어들에게 밥 주러 갈 때 간혹 들르던 그곳에는 보라색의 늘어진 꽃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앨범을 뒤졌더니 그 흔적이 남아있다. 앳된 청소년시절의 내 모습도 아련한 추억이고, 그때의 그늘을 제공해주던 등나무가 지금은 어떨까 중학교를 찾아가보았다. 30년 훌쩍 지난 등나무는 더 덩굴을 뻗어 울창한 그늘막이 되어 있음에 세월의 흐름을 실감해본다. 더 엮여있는 등나무의 덩굴처럼 내 삶도 그 세월만큼 이래저래 많이 얽히고설키어 왔을 것이다.

1991년 8월 중학교 3학년 때 학교의 등나무 아래에서
1991년 8월 중학교 3학년 때 학교의 등나무 아래에서
2023년 11월 - 32년 지난 중학교의 등나무 넝쿨(양주중학교)
2023년 11월 - 32년 지난 중학교의 등나무 넝쿨(양주중학교)

 

 

소통: 다래나무와 키위나무

앞에서는 칡과 등나무로 갈등이야기를 했다면, 뒤에서는 다래나무와 키위나무로 공생의 소통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다래나무와 키위나무의 공생
다래나무와 키위나무의 공생
서로를 감싸 안으며 열매를 매달고 있는 다래나무와 키위나무
서로를 감싸 안으며 열매를 매달고 있는 다래나무와 키위나무

 

다래는 중국에서는 원숭이 복숭아란 뜻의 미후도()’라 불리고, 일본에서는 원숭이 로 불리며 원숭이들이 즐겨 찾는 과실이었단다.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익(李瀷/1681~1763) 선생의 [성호사설(星湖僿說/천지, 만물, 인사, 경사, 시문 등 5문으로 분류한 실학서)] <인사문>편에 따르면 중국의 미후도를 조선에서는 달애(怛艾)’라 표기했다 하는데 이 달애가 변하여 지금의 다래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게 된 것이란다.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과일이라 알고 있는 키위는 원산지가 중국 양쯔강 유역이다. 청나라 말기에 서양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남경 일대에 덩굴식물이 많았는데, 당시 서양인들 사이에서 차이니즈 구스베리(chinese gooseberry)’라 불리던 이 열매를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때 옮겨가게 된 것이고, 1930년대 뉴질랜드의 원예가들에 의해 개량 되면서 열매 모양이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키위 새와 닮았다 하여 키위 과일(kiwi fruit)’로 불리게 된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에는 1970년대 말 소개되며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하는데, 당시 붙여진 첫 이름이 참다래였지만, 우리나라 자생의 진짜 다래가 있기에 양다래로 불리기도 한단다.

2008년 연구소 개소하고 이듬해 1년생 다래나무 두 그루를 심고 터널형 지주를 만들었으니 어느덧 15년생 되어 줄기를 뻗어 얽히고설키어 있다. 덩굴식물답게 지주를 타고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두 그루를 심은 이유는 암꽃과 수꽃이 다른 나무에서 열리기에 열매를 보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는데 비타민과 각종 미네랄이 풍부한 열매는 그 새콤달콤한 감칠맛이 좋다.

7월의 다래나무와 키위나무 덩굴
7월의 다래나무와 키위나무 덩굴
11월의 다래나무와 키위나무 덩굴
11월의 다래나무와 키위나무 덩굴

 

잘 커가다가 한 그루가 죽고, 몇 해 전 대신 역할을 하도록 키위나무 두 그루를 옆에 심었다. 터널형 지주 위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줄기들이 갈등관계라기 보다는 공생의 소통관계로 읽혀지는 건 나무를 심고 가꾸는 사람만이 느끼는 것일까?

봄의 신록과 함께 하얀 꽃들을 매달고 있는 모습이 다른 듯 닮아 있다. 다래는 꽃잎을 좀 오므리고 있다면 키위는 펼치고 있는데, 다래 꽃이 하얗고 옴폭한 치마에 검은 실로 자수를 놓은 것 마냥 한복의 단아함이라면, 키위 꽃은 하얀 드레스에 화려한 노란 무늬의 발랄함이랄까, 녹음 짙은 여름에 하늘거리는 줄기에 앙증맞게 송알송알 맺혀있는 다래 열매와는 달리 굵고 힘찬 줄기에 연갈색 솜털을 입고 주렁주렁 맺혀 있는 키위 열매는 분명 닮은 듯 다른 자태를 하면서도 제각각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가을 지나 열매와 잎을 떨어내고 줄기만 남아서도 서로가 서로를 감싸 안으며 함께 소통의 생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4월의 다래나무 새순, 4월의 키위나무 새순
사진 왼쪽부터 4월의 다래나무 새순, 4월의 키위나무 새순
사진 왼쪽부터 4월의 다래 꽃봉오리, 4월의 키위 꽃봉오리
사진 왼쪽부터 4월의 다래 꽃봉오리, 4월의 키위 꽃봉오리
사진 왼쪽부터 5월의 다래나무 꽃,  5월의 키위나무 꽃
사진 왼쪽부터 5월의 다래나무 꽃,  5월의 키위나무 꽃
사진 왼쪽부터 5월 꽃지고 맺은 어린 열매, 5월 꽃지고 맺은 어린 열매
사진 왼쪽부터 5월 꽃지고 맺은 어린 열매, 5월 꽃지고 맺은 어린 열매
사진 왼쪽부터 6월의 어린 다래 열매, 6월의 어린 키위 열매
사진 왼쪽부터 6월의 어린 다래 열매, 6월의 어린 키위 열매
사진 왼쪽부터 7월의 녹음과 함께 커가는 다래 열매, 7월의 녹음과 함께 커가는 키위 열매
사진 왼쪽부터 7월의 녹음과 함께 커가는 다래 열매, 7월의 녹음과 함께 커가는 키위 열매
사진 왼쪽부터 8월의 익어가는 다래나무 열매, 8월의 익어가는 키위 열매
사진 왼쪽부터 8월의 익어가는 다래나무 열매, 8월의 익어가는 키위 열매
사진 왼쪽부터 9월의 여물어가는 다래나무 열매, 9월의 여물어가는 키위 열매
사진 왼쪽부터 9월의 여물어가는 다래나무 열매, 9월의 여물어가는 키위 열매
사진 왼쪽부터 11월의 다래나무 가지, 11월의 키위나무 가지
사진 왼쪽부터 11월의 다래나무 가지, 11월의 키위나무 가지
사진 왼쪽부터 11월의 다래나무 수피, 
사진 왼쪽부터 11월의 다래나무 수피, 11월의 키위나무 수피

 

갈등의 연속인 우리의 삶에서 다래나무와 키위나무가 보여주는 생의 모습은 봄여름가을겨울 아름다운 모습이다. 얽히고설킨 생이라도 서로를 의지하며 이어가는 그 모습은 갈등의 해결을 위한 삶의 자세를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얽힌 관계를 갈등이라 하지만, 또 달리 얽힌 관계 속의 적극적인 공생을 소통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어떤 현상에 직면했을 때 생각하기 나름, 받아들이기 나름, 풀어가기 나름 아니겠는가?

풀어가기 나름(얽힌 관계 재해석) - 등나무 엮음으로 만든 조명을 아이들 놀이방에 매달아주었다.
풀어가기 나름(얽힌 관계 재해석) - 등나무 엮음으로 만든 조명을 아이들 놀이방에 매달아주었다.

 

전이섭 문화교육연구소소장

 

로컬크리에이터, 양산시 산림조합 대의원, 양산시 제3기 주민참여예산 부위원장, 양산시 시민통합위원회 문화자치위원, 문화체육관광부 지역문화매력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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