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보며 내 삶을 반추
세상을 다르게 보기 위한 나무이야기
다름의 차이, 관점의 차이로 세상보기

나목 된 산벚나무를 바라보며 내 삶을 반추해본다.
나목 된 산벚나무를 바라보며 내 삶을 반추해본다.

 

식시무자재준걸(識時務者在俊傑)’의 무게

며칠사이 기온의 변화가 심하다. 낮에는 덥다가도 아침저녁으로는 찬바람에 몸을 움츠린다. 내내 가물었다가 비가 오니 마치 여름철 태풍마냥 사나운 바람을 몰고 세차게 창을 때린다. 중간 어디쯤은 없고 세상이 자꾸 극과 극의 두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한바탕 소란 뒤에 오랜만에 늦은 오후 산책을 나서며 맑은 공기와 모처럼의 맑은 물소리는 마음을 씻어내는 듯도 하지만, 축축하게 젖어 떨어진 낙엽과 벌써 나목 되어 쓸쓸한 풍경을 자아내는 나무를 보며 기분이 가라앉으면서 내 삶을 반추해본다.

가을풍경 - 잎 다 떨어지고 나목 된 벚나무
가을풍경 - 잎 다 떨어지고 나목 된 벚나무
가을풍경 - 모처럼 내린 가을비에 계곡의 맑은 물
가을풍경 - 모처럼 내린 가을비에 계곡의 맑은 물

 

세상을 가늠해볼 수 있는 특별한 잣대가 없기는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무엇인가 채 알기도 전에 그때는 왜 그리 조급했을까? 왜 빨리 나아가려 서둘렀을까? 그렇지만, 왜 지금은 이렇게 더딘가? 답도 없을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며 허공 아래 몇 이파리를 파르르 거리며 나부끼는 모습은 흡사 내 모습인 듯 더 착잡하게 다가온다.

그랬다. 그때는 청운의 꿈을 안고 떠나 나래를 펼쳐보려 동분서주하였다. 평범함을 거부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행보들은 이미 평범하지 않았고, 그 속에서 어떤 희열도 느끼며 스스로를 다른 존재라 인식했지만, 어느 속에서도 한 발을 뗀 채 주변을 서성거린 듯하다. ()은 아니지만, ()도 아닌 중간자였던 것이다.

사진 왼쪽부터 2006년 일본 소학교에서의 한국문화 강의 / 2007년 한국 청주시장과 일본 고후시장 접견 통역
사진 왼쪽부터 2012년 어린이 교육활동(역사학습) / 2013년 어린이 교육활동(자연학습)

 

바깥에서 홀로생활을 하던 대학생 어느 때 쯤 <삼국지>를 보다가 한 글귀에 꽂혔다. “시대의 움직임을 파악 할 수 있고, 시대의 급무를 찾아낼 줄 아는 사람은 재능과 인격이 훌륭한 사람이하며, 우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불가능하다.”식시무자재준걸(識時務者在俊傑)’은 곧 내 삶의 지침이 되었고,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나는 그 급무가 무엇일까 찾아나서는 무게를 스스로에게 얹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진 왼쪽부터 2019년 지역 초등학교 교육활동(목공교실) / 2020년 지역문화학습모임(현장 탐방)
사진 왼쪽부터 2021년 역사교육활동(원도심 탐방) / 2022년 지역문화학습모임

 

요사이 갖가지 행사가 많은 중에 여러 현장으로 발걸음하며 군상(群像)들의 모습 속에 목적지향의 현상들을 읽어 들인다.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 제 나름의 목적이 다 있겠지만, 내가 받아들이는 느낌은 대체로 누구보다 앞서’, ‘누구보다 높이같은 수직 지향의 목적이라 생각되었다.

한때 나도 그랬을 수직 방향의 목적지향 이었지만, 지금의 그 모습들에서 내 표정은 자꾸 경직되며 어색해진다. 수직으로의 목적지향이라 나쁠 것은 없다. 나의 경우는 그 수직 방향의 갈래가 어느 곳에 집중되지 못하고 여러 갈래로 분산되어 에너지의 결집이 빈약했기 때문 일테고, 그들은 그들 나름의 에너지를 수직으로 모아 나가는 것이겠거니 다름의 차이’, ‘관점의 차이라 받아들이자며 결론을 내려 보았다. 그래도 나의 어색함은 그 분위기와 잘 맞지 않고, 개운치가 않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더딘 것이 아닐까도 생각되어진다.

사진 왼쪽부터 2007년 미술대전 대상 수상(창원) / 2008년 한일어린이 교류전 기획(도쿄)
사진 왼쪽부터 2013년 교육활동(부모와 자녀의 교감) / 2019년 시민토론회 기획, 주관

 

이분법의 세상에서

사람의 삶을 이것이냐 저것이냐 두 갈래로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겠다. 나무의 생도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지만, 우선 그 생장에 초점을 두어 두 갈래로 고정형과 자유형으로 분류를 해보면 벚나무, 참나무처럼 대체로 더디게 자라며 단단한 고정형의 나무들이 있는 반면, 빨리 자라지만 목질이 단단하지 않은 버드나무나 다래나무 같은 자유형의 나무도 있다. 물론, 이 두 가지 말고도 다른 형태의 나무들도 있을 것이다.

사진 왼쪽부터 5월의 다래나무 꽃 / 8월의 다래나무 열매
사진 왼쪽부터 5월의 다래나무 꽃 / 8월의 다래나무 열매
사진 왼쪽부터 7월의 떨어진 상수리나무 열매 / 11월의 떨어진 상수리나무 열매
사진 왼쪽부터 7월의 떨어진 상수리나무 열매 / 11월의 떨어진 상수리나무 열매

 

사람 역시 타고난 기질도 있겠지만, 살아가는 환경이나 형편에 따라 강하고, 억센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온화하고, 유연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도 물론, 이 두 가지 말고도 다른 형태가 무수히 많이 있을 것이다. 대체로 사람을 평가할 때 이분법으로 나눠 이것 아니면 저것 하는 식이라 해 본 소리이고, 보통은 그 사람의 조건이나 지위, 결과를 보고 판단의 기준점을 잡는다. 나무를 대할 때도 그 나무가 달고 있는 꽃이나 맺은 열매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꽃과 열매를 품고 있는 때가 아니면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지금처럼 알록달록 단풍지는 시기가 지나면 더더욱 눈에서 멀어지고,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그게 세상의 이치인 것을 어쩌겠냐마는 세상을 다르게 보는 이야기를 해볼까 싶어 한 나무를 끄집어내어 본다.

4월의 꽃 떨어져가며 잎이 돋아나는 벚나무
4월의 꽃 떨어져가며 잎이 돋아나는 벚나무

 

11월 산행 길의 벚나무
11월 산행 길의 벚나무

 

관점을 달리해서 볼 나무는 봄철 꽃구경의 대명사 격인 벚나무인데 왜 이름표기를 할 때 이 아니라 이라는 받침을 쓸까? 그 이름의 정확한 유래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하는데, 열매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가령, 감이 달린다고 감나무라 하듯 버찌라는 열매가 달리기에 버찌나무라 하다가 버찌으로 변한 건 아니었을지 미뤄 짐작해본다.

6월의 익어가는 벚나무열매 버찌
6월의 익어가는 벚나무열매 버찌
2018년 4월 집 앞의 텃밭과 만개한 벚꽃천국
2018년 4월 집 앞의 텃밭과 만개한 벚꽃천국

 

전 세계에 200여 종의 자생하는 벚나무가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벚나무, 왕벚나무, 산벚나무, 겹벚나무, 올벚나무, 수양벚나무 등 10여 종이 있다 한다. 이런 벚나무도 꽃이 잎보다 먼저 피느냐, 잎과 함께 피느냐에 따라 구분 지어진다 하는데,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왕벚나무는 우리나라 제주도가 원산지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국화이다.

이런 왕벚나무는 다른 벚나무 꽃보다 크고 화려해서 주로 가로수나 조경수로 심어졌고, 그 대표적인 것이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혼을 말살하고자 창경궁의 주요 전각과 담장을 헐어버리고 일본식 건물을 짓고 일본의 상징인 왕벚나무를 조경수로 심은 것이며, 1980년대 창경궁 복원을 진행할 때 여의도의 윤중로 일대로 옮겨와 가로수로 심은 것이 국회 앞에서 아픈 역사는 뒤로한 채 해마다 봄이 되면 축제의 현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일제가 진해에 군항을 건설하면서 1910년부터 2만 여 그루의 일본 왕벚나무인 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そめいよしの)’를 심은 것이 진해군항제의 벚꽃축제이다. 꽃구경도 좋지만, 여의도와 진해의 벚꽃축제는 배경을 알고 달리 생각해 볼 문제라 여겨진다. 우리나라 기상관측소의 관측 표준목이 왕벚나무로, 한 나무에서 꽃이 세 송이 이상 완전히 피었을 때를 벚꽃의 개화로 인정해 발표한단다.

4월의 만개한 왕벚꽃
4월의 만개한 왕벚꽃
4월의 만개한 수양벚꽃
4월의 만개한 수양벚꽃

 

벚꽃은 무엇보다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빛으로 밝고, 꽃송이가 많으며 많은 꽃들이 거의 동시에 피어나 짧은 한 때를 화려하게 장식하다가 한꺼번에 사라진다. 이른 봄에 주변의 곤충들을 온통 자신 곁으로 많이 불러들이기 위한 벚나무의 생존전략이자 목적지향의 표현이다. 곤충들을 통해 꽃가루받이 확률을 높이는 것이 그에게는 생애 최대의 목적이자 행복일 것이다.

2018년 4월 법기수원지의 만개한 벚꽃을 배경으로 아이들과
2018년 4월 법기수원지의 만개한 벚꽃을 배경으로 아이들과
2019년 4월 벚꽃 아래를 달리는 아이들
2019년 4월 벚꽃 아래를 달리는 아이들

 

반면, 한여름 백일에 걸쳐 붉게 장식한다 하여 백일홍으로 불리는 배롱나무는 꽃이 번갈아 오랫동안 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그 역시 오랜 시간 조금씩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벌과 나비 같은 곤충들이 자신 곁으로 꾸준히 찾아와 꽃가루받이를 잘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 생의 방식이 다른데 결과적으로는 같은 목적을 이루는 셈이다.

여름을 붉게 장식하는 배롱나무 꽃
여름을 붉게 장식하는 배롱나무 꽃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오랫동안 붉은 배롱나무 꽃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오랫동안 붉은 배롱나무 꽃

 

나다운 것, 나다운 길

내가 하고 싶은 벚나무 이야기는 꽃 때문만은 아니다. 그 생의 관점에서 결코 빼놓지 말아야 하는 잎도 있다. 자세히 보면 잎자루 부분에 좁쌀만큼 작은 돌기가 두 개 있는데, 꿀이 나오는 샘이라 하여 밀선(蜜腺)이라 부르는 부분이 있다. 꽃은 벌과 나비 같은 곤충을 불러들이기 위해 그가 구사하는 전략적 표현이고, 잎의 밀선은 성충이 되기 전의 애벌레가 광합성을 해야 하는 자신의 잎을 갉아먹는 것을 막기 위해 애벌레의 천적이자 단물을 좋아하는 개미를 불러들여 자신을 보호하는 지혜로운 생존전략인 것이다.

잎자루 부분의 꿀샘(밀선)은 벚나무의 지혜로운 생존전략 중 하나
잎자루 부분의 꿀샘(밀선)은 벚나무의 지혜로운 생존전략 중 하나
광합성을 열심히 하고 있는 마지막 잎새
광합성을 열심히 하고 있는 마지막 잎새

 

또 하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벚나무의 수피이다. 나무들은 선이든, 점이든 어떤 무늬와 색깔로 자신의 몸을 장식하는데 대부분 세로형 수직의 무늬를 나타내는데 비해 벚나무는 중간 중간 특유의 줄이 있는 가로형 수평의 무늬가 보인다. 일찍 꽃을 피우고, 일찍 잎을 떨어뜨리는 벚나무는 어쩐지 해탈한 것처럼 자신을 내려놓고, 위로 향하기보다는 주변의 것들을 살펴보겠다는 듯 느껴지기까지 한다.

사진 왼쪽부터 왕벚나무 수피 / 산벚나무 수피
사진 왼쪽부터 왕벚나무 수피 / 산벚나무 수피
사진 왼쪽부터 도심에서 만난 오랜 수령의 벚나무 / 벚나무 껍질에서도 생의 깊이가 묻어난다.
사진 왼쪽부터 도심에서 만난 오랜 수령의 벚나무 / 벚나무 껍질에서도 생의 깊이가 묻어난다.

 

그래서 궁극에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어떤 학자의 말을 빌려 보겠다.

한 그루의 나무도 땅 위의 가지줄기, 땅 밑의 뿌리줄기의 전개 형태가 다르다. 땅 위의 가지가 전개된 방식이 연역법이고, 땅 밑의 뿌리가 전개된 방식이 귀납법이다.”

연역과 귀납의 어원으로 풀이해보면 연역(演繹)펼 연()’풀어낼 역()’의 합성이자, 영어로 deduction‘de(따로, 멀리)’‘duction(끌다)’의 합성어로 펼쳐서 풀어낸다.’라는 뜻이며 핵심으로부터 넓게 펼친다는 의미가 강하다. 일반적 원리로부터 개별적 원리를 이끌어내는 것이겠다.

귀납(歸納)돌아갈 귀()’들일 납()’의 합성이자, 영어로 induction‘in(안으로)’‘duction(끌다)’의 합성어로 돌아가고 들여다 놓는다.’라는 뜻이며 개별적 원리로부터 보편적 원리를 이끌어내는 것이겠다. 나의 경우라면 개별적 사실들을 관찰하고 보편적 법칙을 찾고자 하는 귀납법에 더 가까운 듯하다.

분리되기 전의 큰 가지를 파악하여 거기서 분리된 잔가지의 내용들은 자연히 파악된다는 연역법과 잔뿌리에서 다른 잔뿌리로 이동하려면 큰 뿌리라는 접점을 거치지 않고도 또 다른 뿌리가 생성되어 연결되어진다는 귀납법이라는 것인데, 이 빌려서 말한 이야기의 목적은 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일 수 있다는 리좀(Rhizome/이항 대립적이고 위계적인 현실 관계 구조의 이면을 이루는 자유롭고 유동적인 잠재성의 한 유형)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기실, 한 그루의 나무로 이야기하지만 가지나 뿌리만 가지고 온전한 나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있어야 나무가 되듯 어느 한 가지만 가지고 이야기하거나 어느 방 법이 더 우수하다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종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이겠고, 다름의 차이, 관점의 차이로 세상을 받아들여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이겠다. 리좀은 어느 것과 어느 것의 사이와 중간인 동시에 융합과 통섭이라는 것이다.

사진 왼쪽부터 2009년 4월 텃밭놀이터 정자 지붕작업(뒤로 만개한 벚꽃이 보인다) / 2019년 4월 일본 후쿠오카의 녹나무 아래에서
사진 왼쪽부터 2009년 4월 텃밭놀이터 정자 지붕작업(뒤로 만개한 벚꽃이 보인다) / 2019년 4월 일본 후쿠오카의 녹나무 아래에서
사진 왼쪽부터 2020년 지역문화 학습모임(나무 설명) / 2023년 6월 거창에서 산벚나무를 관찰하며
사진 왼쪽부터 2020년 지역문화 학습모임(나무 설명) / 2023년 6월 거창에서 산벚나무를 관찰하며

 

그래서 나의 삶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나다운 것일 수 있겠다 싶다. 그래서 나의 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일수도 있겠다 싶다. 빨리 가려 여러 길을 걸어오며 지고 힘들었을 나를 다독거리며 이제는 더디더라도 보다 나다운 길을 걸어가야겠다.

천성산 화엄벌의 억새
천성산 화엄벌의 억새

 

전이섭 문화교육연구소소장

 

로컬크리에이터, 양산시 산림조합 대의원, 양산시 제3기 주민참여예산 부위원장, 양산시 시민통합위원회 문화자치위원, 문화체육관광부 지역문화매력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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